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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다시 만난 미디어위키
2018년 6월 10일
처음 위키라는 물건을 접한 것은 2004년 경 위키백과를 통해서였습니다. 각 위키에 글도 조금 써보고, 편집 권한이 무명 사용자에게 열려있다는게 개념적으로 신선하기도 하고 뭔가 관리자 본인에게도 로그인도 필요없으니 스팸만 방어가능하다면 참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후 위키 프로젝트를 세 개 열었습니다. 먼저 개인 웹사이트를 미디어위키로 구현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주제를 몇개 열었지만, 현실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몇 번 하면 글 쓸 시간도 없는..
두번째 위키 프로젝트는 대학 학생 동아리에 추진했습니다. 당시 대학생 사회운동이나 그룹들이 서로 더 촘촘한 연계가 필요하다, 누가 언제 졸업하든간에 항상 서로 적시에 연락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요즘도 이런 이야기를 할겁니다) 그런데 기술방면의 경우 폐쇄된 이메일 보다는 (이메일이 몇번 돌고 나면 2-3년 이후 온 학생들은 그 이야기의 맥락을 전혀 모르게 됨) "단일 위키로 구현하면 수월한 정보 교환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제가 활동하던 학생단체를 중심으로 오지랖 넓게도 범주를 지역 전체 사회 운동들을 주제로 한 위키를 2005년에 개설하고 최대한 정보를 취합해서 올렸습니다. 취지에 동조하는 학생들도 조금 있었고.. 2005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지역을 떠났지만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계속 했고, 놀랍게도 저와 연락이 전혀 닿지도 않고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그 후 5년이 넘게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약 900개의 문서를 만들어낸 후 그 사이트는 점점 사용이 줄어들다 2011년에 서버의 DB가 고장이 나고 고치지 않은채 방치하며 잊혀졌습니다.
세번째 위키는 사회운동단체에 유급 활동가로 활동을 시작 한 뒤, 2006년에 웹사이트 전면 개편을 맡으면서였습니다. 웹사이트 전체를 워드프레스+미디어위키의 조합으로 구성하고, 양 사이트에 동일한 커스텀 스킨을 제작해 그 위에 덮어씌웠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CCL 저작권 정책으로 전환과 위키 권한 오픈을 제안해 놀랍게도 승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호응은 안 가져왔고 다른 업무와 병행하다보니 오픈 위키를 체계적으로 홍보하고 활용할 시간은 없었고, 2016년에 드루팔로 전환하며 그 프로젝트도 막을 내렸습니다.
2005년을 전후해서 이 세 프로젝트에 설치한 미디어위키 소프트웨어는 나름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아직도 세세한 부분은 다음어지지 않았던 느낌입니다. 시각편집기도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이야기였고, 두세개의 실험적 시각편집기 플로그인이 서로 경쟁하는 구도였고, 편집 버튼을 누르면 코드 같이 생긴 위키문법이 잔뜩 보이는 당시 상황은 새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신기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좀 공포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나무위키는 자유한국당을 욕하는 것 외에는 진보적인 시각을 찾아볼 수 없어서 점점 더 거부감이 들고 있었습니다. 가끔 총대를 메고 균형잡힌 시각을 서술하는 문서가 있을때도 있지만 그것도 기존에 쌓인 문서량이 많지 않을때나 그렇지, 우격다짐으로 독자에게 강요하는 한국중산층30대남성 중심의 서사, 친 트럼프, 반 흑인, 반 이민자, 반 무슬림, 반 소수민족 서술에 페미니즘을 "착한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으로 분리한 후 진행하는 마녀사냥에.. 거기서 유저들하고 논쟁하다가는 인생 다 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결국 페미위키에 덜컥 가입한 것 같습니다. 한남들 원하는 정보가 페미니스트 위키에만 나올 때 그걸 참조하며 절망감 느껴봐라라는 심뽀로 다른 곳에 안 나오는 문서를 중심적으로 서술해보겠습니다. 페미니스트 잡학외에 진보적 운동들의 공개 DB 같은 기능성을 페미위키로 대동단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8년만에 돌아온 미디어위키 너무 새롭네요. 위키백과도 시각 편집기가 기본 옵션이 되었고, 한국어 위키백과는 1만 문서에서 40만 문서로 성장했고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 같지만), 페미위키에 적용되어있는 커스터마이징과 게시판 느낌의 기능을 위키로만 구현한 것도 놀랍고..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