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ASEC

최근 편집: 2019년 5월 9일 (목) 00:01
Yonghokim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5월 9일 (목) 00:01 판 (→‎민족학교)

NAKASEC미국에서 유일하게 한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전국 규모의 진보적 이민자 권익 단체이다. 5·18 민중 항쟁의 정신을 해외에서 알리고 이어나가는 활동을 한국청년연합과 공동으로 펼치던 미국 내 각 지역 마당집들이 1994년에 설립했다. 현재 이민자 권익 보호, 이민 개혁, 드림 법안 등의 캠페인을 주도하며 아시안계 커뮤니티를 대표 하는 단체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며, 매 선거 시즌마다 30만명이 넘는 한인 및 아시안 유권자들의 교육 및 선거 참여를 이끌며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활동 소개 영상 (2012)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위치한 하나센터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한 민족학교가 회원단체이다. 사무실은 상황에 따라 약 4년 간격으로 옮기고 있으며, 현재는 시카고에서 하나센터의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 버지니아에 지부가 있으며, 이 지부를 독립적인 신규 회원 단체로 재정립하는 것을 고려 중에 있다. 세 단체는 총합 60명의 유급 활동가, 1,000여명의 자원봉사자, 그리고 600만 달러의 예산을 운영하고 있다.[주 1]

자매 단체로 법안 활동 전문인 NAKASEC Action Fund 가 있다. 민족학교도 민족학교-정치펀드라는 자매 단체가 있다. 전국적으로 APIA Vote!, FIRM, WAAA, RWG, NCAPA, HROP, RI4A, NPNA 등 수많은 진보적인 이민 개혁 연합 구조, 시민 참여 연합, 소수 민족 권익 연합, 아시안계 사회 정의 연합 등에 참여했거나 참여 중이다.

나카섹이라는 이름은 약어이다. 전체 영어 이름은 National Korean American Service & Education Consortium 이고, 우리말 이름은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이나, 둘 다 너무 길어서 거의 쓰이지 않으며 주로 NAKASEC이나 나카섹으로 통한다. 미교협이라는 약어도 이따금 쓰이기는 한다.

역사

한국 광주에서 학생 운동, 수감자 지원 등의 활동을 펼치면서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던 윤한봉 활동가는 5·18 민중 항쟁 당시 주변인들의 만류로 시 외에 있다가 주동 인물로 현상 수배되어, 지인들의 도움으로 몰래 무역선의 바닥에 숨어 미국으로 가서 망명을 신청한다. 그는 1982년 광주수난자돕기회 등의 활동을 시작하며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에 힘이 될 조직을 구상하고 지역 홍기완, 이길주, 최진환, 전진호 등 뜻있는 이들과 함께 1983년에 LA에서 민족학교를 설립하고 다음 해에 한국청년연합(한청련)을 조직한다. 이후 전국적으로 조직 활동을 벌여 시카고의 한인교육문화마당집, 산호세의 민족교육봉사원, 뉴욕의 청년학교, 필라델피아의 청년마당집, 토론토의 민족교육문화원, 호주 시드니의 민족교육문화원 등 마당집 단체를 설립하고 이 지역 외에도 미국 전역의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덴버, 달라스, 뉴잉글랜드, 해외 독일 등 한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한청련을 조직, 워싱턴 DC에 코리아홍보교육원을 설립한다.

한청련은 꾸준한 청년 교육을 통해 활동가를 모집하고 5·18 민중 항쟁의 실상을 알리며 전두환 군사정권의 인권 탄압을 폭로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한청련은 1988년에는 한국지원연락망(KSN) 단체들과 함께 한반도에 배치된 주한 미군 핵무기 철거를 요구하는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150마일을 걷는 평화 행진을 거쳐 워싱턴 DC에서 연방 의회에 전달하고, 국제평화대행진에 회원 120명과 해외 지지자 30명이 참가하는 등 해외 진보적인 한인 운동의 한 축을 구성했다. 다음을 참고할 것 한국청년연합

한청련이 청년들의 정치 의식화 교육, 회원 모집, 군사정권에 맞서는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마당집 단체들은 비영리단체로 등록하고 사무실 공간을 갖추어 역사 교실, 태권도 교실, 세금 보고 무료 봉사 등 외연을 확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일부 마당집들은 운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고, 1994년에 이르러서는 로스앤젤레스, 산호세,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의 5개 마당집들이 남아있었다. 이들 단체들은 1990년대 들어 LA시민 소요 사태, 주민발의안 187과 "복지 개혁"으로 대표되는 반이민 공세에 직면하여 조국의 민주화 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의 운동에도 참여를 할 필요를 깨닫고 활동을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 일환으로 1994년에 마당집 단체들은 전국 차원의 사회 운동 조율을 위해 나카섹을 설립한다.

복지 삭감 등의 정책을 발표하는 깅그리치 공화당 하원의원

나카섹이 설립되자마자 추진한 것은 반이민 공세에 대응하는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빈민, 흑인, 라티노, 이민자들을 미국 경제를 좀먹는 존재로 지목하며 보수 물결을 일으키면서 하원을 장악했다. 그리고는 미국의 복지 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축소 및 삭감을 추진했다. 민주당의 주류는 이에 동참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는 소셜 시큐리티 제도[복지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자주 회자되는 연설을 남겼다.

1994년 미연방 선거 직후 공화당이 이끄는 의회는 반 이민자 정치로 전국을 뒤흔들었다. 이민자들은 실업, 범죄, 복지에서부터 미국 사회 구조의 붕괴에까지 이르는, 많은 사회 문제의 이유, 그리고 비난 받는 희생양이 되었다. 대표적 반이민 정책안을 보면, 저소득층 생활 보조금(SSI)과 식료품 구매권에 비시민자 영주권 이민자의 자격 조건 박탈, 이들 대부분의 해당자는 저소득층 은퇴 이민 연장자 및 극빈 가정 이민 아동 이었다. 당시 미국 내 이민자 지역 사회 내에서는 불안정, 충격과 공포의 분위기가 압도하고 있었다. 재미 동포 연장자들은 특별히 지원과 해법을 찾고 있었다. 심지어 유일한 생활 수단에 없어진다고 생각한 연장자들은 자살까지 고려 했었다.

1995년 이민자 정의 캠페인 TV 보도 내용

미교협과 지역 마당집 단체들은 "이민자를 위한 정의"라는 캠페인 아래 대규모의 풀뿌리 모금 신문 광고, 집회, 의원들에게 2만건의 편지 보내기, 유권자 등록 및 선거 참여 등의 활동을 펼쳐 1997년에 이민자의 SSI 자격 복원,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CAPI 프로그램 신설, 푸드스탬프 자격을 복원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다음을 참고할 것 미주 한인 사회의 정치적 각성

1997년 나카섹 전국 심포지움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에서 추진한 풀뿌리 차원의 캠페인이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승리를 기점으로 마당집 단체들은 운동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이후 본격적으로 이러한 분야에 뿌리 내리는 활동을 전개했다.

나카섹은 2000년대 초반에는 한인 사회의 드림법안 캠페인을 주도하여 이민 신분이 없는 이민자 학생 및 청년들과 함께 학습, 조직, 권익 옹호 활동을 펼치며, 2004년에는 전국 규모의 워싱턴 DC 드림법안 행동의 날을 주최하고 전국의 한인 유권자에게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자료를 배포하고 독려 활동을 펼쳤다. 2005년에는 액션펀드가 2주 동안 전국 수천명의 개인들에게서 1달러, 5달러 씩 소액을 풀뿌리 차원에서 7만 달러를 모금 해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에 이민 개혁을 주장하는 전면 광고를 개제했다.

2006년 반이민법안 반대 행진

2006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반이민법안 H.R. 4437 에 반대하는 수백만 규모의 집회에 참여하고 각지 집회 조율 집행부에 참여했다. 2007년에는 SEIU 노조 등과 함께 이민자들의 꿈을 기차를 타고 전국 각지를 방문하며 전하는 캠페인을 추진하고, 2009년에는 전국 차원의 한인 및 아시안 태평양계 이민자권익 행동의 날인 "시민권의 날"을 주최했다. 2012년에는 아태계 이민자들이 자신의 가족의 사진을 통해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캠페인을 추진했다. 2012년 DACA 정책이 시행에 들어간 이후 전국 수천명의 청년들이 DACA 를 신청할 수 있도록 신청서 작성과 법적 상담 등의 도움을 제공했다.

2018년 정의를 향한 여정 캠페인

2013년에는 서류미비 이민자 추방을 막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SEIU 노조와 함께 워싱턴 DC 의회 앞에서 계속되는 추방을 규탄하는 34일 단식을 주도하며, 이에 호응하는 전국 각지의 단식 및 집회 캠페인을 조율했다. 2013년, 2015년, 2018년에는 DACA 정책 도입 후 드디어 취업허가증과 운전면허증을 따고 자신의 꿈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된 서류미비 청년들 주도로 서부 LA부터 동부 워싱턴 DC까지, 북부 시애틀부터 남부 샌디에고까지 차량 또는 자전거로 여행을 하며 각지 도시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민개혁과 드림법안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미국을 가로지르는 꿈의 여정" 캠페인을 주최했다.

2016년에는 입양인 중 이민 신분이 없어 추방 된 이들의 신분 부여를 촉구하는 입양인 정의 캠페인을 추진하고, 2017년 트럼프 당선 이후 DACA 폐지 움직임이 있자 백여명의 청년, 학생 및 연장자들과 함께 이를 저지하는 21일 24시간 릴레이 집회를 백악관 앞에서 벌였다.

민족학교

5·18 민중항쟁 관련 로스엔젤레스 지역 활동일지
1980 광주시민을 돕기 위한 헌혈운동과 함께 미적십자사 농성을 통해 광주의 진상을 널리 알림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가 한인타운에서 벌어짐
5•18민중항쟁을 계기로 남가주호남향우회가 결성됨.
1981 5•18민중항쟁 수배자 윤한봉 미국 망명
박관현 열사 옥사 항의 10일 단식 농성
1982 광주수난자돕기회 발족



5•18민중항쟁의 진상을 밝힌 "아! 광주여" 발간

1983 5•18민중항쟁을 계기로 민족학교 설립

1984 5•18 민중항쟁을 계기로 재미한국청년연합 설립

1985 5•18광주의거 기념사업및 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 결성 (1986년 해체까지 총 3만 5천불 송금)

1986 전두환 방미 규탄시위

전두환 파쇼 만행 규탄 궐기대회

민주통일운동탄압 저지대책위원 결성대회

5•18광주민중항쟁혁명 6주기 위령제 및 기념 강연회 (버클리시에서 행사일을 "광주시민의 날"로 선포)

1987 5•18광주민중봉기 7주년 범동포 기념식 및 '분단과 5•18' 강연회

1988 노태우 방미 규탄시위

5•18광주민중항쟁 제 8주년 범동포대회

대한민국 국회에서 5•18청문회 열림

1989 5•18민중항쟁 제 9주년 기념 남가주 동포대회

1990 광주민중항쟁 제 10주년 기념 동포토론회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대한 법률제정

1991 5•18광주민중항쟁 제 11주년 기념 남가주 동포대회 – 기념식 및 '어머니! 당신의 아들' 영화상영회

음악극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공연

1992 5월 관련 단체들과 개인들이 모여 "오월제 추진위원회"결성

1993 13주년 기념행사 – 기념식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의와 올바른 해결 방안' 강연회

5•18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결성

5•18 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선생 국내로 귀국-'민족미래연구소'를 광주에 설립

1994 14주년 기념행사- 기념식

5월 항쟁 정신 계승 걷기 대회

극단 토박이 초청 '모란꽃' 공연

대한민국 광주에서 5•18기념재단 설립

1995 15주년 기념행사 –기념식

5월항쟁 정신계승 걷기대회

박문옥,오창규 초청 '광주여! 우리의 노래여!' 공연

대한민국 검찰의 5•18불기소에 항의하는 영사관 앞 시위

5•18특별법 제정 해외동포 서명운동 (2만여 서명 전달)

대한민국 정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1996 16주년 기념행사 – 기념식

광주항쟁기록 비디오 '그 날이 다시 오면' 상영회

강정구 교수 초청 강연회

5월 항쟁 정신계승 걷기대회

극단 토박이 초청 '금희의 오월' 공연

1997 5•18묘역 민주나무 헌수운동 참여

17주년 기념행사 – 기념식 및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민군 윤상원' 상영회

대한민국 대법원이 전두환, 노태우 피고인에 대한 반란 및 내란죄 확정

5•18묘역 완공 5•18국가기념일 제정

1998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 결성

제 18주년 기념행사

5•18묘역 참배

1999 19주년 기념행사-기념식 및 영화 '붉은 벽돌' 상영회

2000 20주년 기념행사 – 기념식 및'5•18과 미국의 역할'에 대한 한용섭 교수 강연및 토론회, '다큐멘터리 5•18' 상영회'

5•18민중항쟁 20주년 기념 컨퍼런스 UCLA에서 열림

2001 21주년 기념행사 – 기념식 및 '5•18정신과 민족화해'에 대한 김만흠 교수 강연 및 토론회, '다큐멘터리 5•18' 상영회

2002 22주년 기념행사 – 기념식 및 '5•18민중항쟁 22주년과 올바른 한미관계의 정립' 토론회

'5•18민중항쟁' 사진 전시회

2003 23주년 기념행사 – 기념식 및 심포지엄 '광주를 기억하며: 평화, 민주주의 그리고 커뮤니티'를 타민족 활동가들을 연사로 초청하여 이중언어로 진행함

2004 24주년 기념행사 –기념식

장태한 교수의 '5•18투쟁 연대의 회고와 앞으로의 역할' 양필승 교수의 '5•18미국적십자사 점거와 헌혈압박'등의 강연과 토론회

2005 25주년 기념행사 – 기념식

UC RIVERSIDE 장태한 교수와 민족학교 윤대중 사무국장이 '우리 사회의 실천과 모색'이라는 주제로 강연함

2006 26주년 기념행사-'한미진보운동과 한인 커뮤니티의 과제'라는주제로 Glenn Omatsu UCLA 교수와 미주 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이은숙 사무국장이 강연함

2007 27주년 기념행사-'80년 5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미주에 살면서 5•18을 경험했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때의 기억을 나누고 5•18의 과제에 대해 토의함

5•18민중항쟁의 수배자 이고 미국에 망명후 민족학교와 재미한국청년연합, 한겨레동포연합을 창설하신 윤한봉 선생 지병으로 타개하심(6월 26일)

2008 28주년 기념행사-5•18민중항쟁 28주년과 민족학교 설립 25주년을 기념하여 심포지엄 "The Movement of People"를 개최하여 미주에 있는 운동가들의 학습과 토론의 장을 마련함

2009 29주년 기념행사-5•18 민중항쟁 시민참여 및 백범 김구 선생 순국 60주년 "내가 원하는 동포/미국사회" 정신 계승과 우리의 과제"로 강연회를 갖고 김구 선생의 글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영어 번역 및 이 글을 읽고 느낀 에세이 모집과 장학금 지급

웹사이트

부연 설명

  1. 예산: 나카섹 (2016), 하나 센터 (2015), 민족학교 (2017)

참고 문헌

  • 운동화와 똥가방. 윤한봉, 1996.
  • 미주 한인 사회의 정치적 각성, 2005, 이은숙,  Koreans in the Windy City: 100 Years of Korean Americans in the Chicago Area. Pp. 337-350
  • 임을 위한 행진: 윤한봉 전기, 황광우, 오월의봄, 2017
  • 윤한봉: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 안재성, 창비, 2017
  • 민족운동가 합수 윤한봉 선생 추모문집, 문규현, 임재경, 유홍준 공편, 한마당,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