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 운동

최근 편집: 2019년 5월 22일 (수) 15:25
Yonghokim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5월 22일 (수) 15:25 판

박정희의 독재 정치에 저항하던 한국의 민중은 1979년 박정희 암살 후 희망을 보고 전국적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 중 광주에서 1980년 5월 18일부터 학생 집회를 필두로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자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공수여단을 투입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발포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경찰서에서 얻은 총으로 무장하고 군인들을 쫓아냈다. 이후 광주는 며칠간 군부의 개입 없이 시민들이 자립적으로 운영하는 "해방 공간"으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5월 27일 군부는 대규모로 군대를 투입해 시민군을 살상하고 시위대를 소탕했다. 200명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당했다. 무자비한 고문과 언론 조작, 사실 은폐가 뒤따랐다.

이 열흘간의 운동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또는 5·18 광주 민중 항쟁이라고 부른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이 신군부의 민주주의 파괴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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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군부는 광주 시민들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으며, 학살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한국 국군의 존재목적은 국토를 방위하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5월 광주에서는 군이 자신이 보호해야 할 시민에게 총을 겨누었다.

사건 당시 군부는 광주를 폐쇄하였고 5.18을 날조하여 사회적으로 선전하였으나,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완전히 숨기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특히 이때 많은 광주의 여성들이 계엄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게 문재인 정부 때 밝혀졌고(심지어 미성년자도 피해자였다.), 이로 인하여 5.18 민주화운동에서의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