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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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조선국(大朝鮮國)은 1392년 8월 5일 고려 왕조가 멸망하면서 건국된 나라이다. 한반도와 제주도, 울릉도 등의 부속 도서를 지배하였다.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워 백성의 신망을 얻었던 무신 이성계가 고려 대신 건국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우리 민족이 처음 세운 나라인 고조선을 계승하는 의미를 담아 국호를 조선으로 하였다. 고조선도 본래는 조선이지만 두 국가를 구분하기 위해 옛 조선은 고조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태조 때의 수도는 개경[주 1]이었으나 이후 한성부[주 2]로 옮겨진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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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신분 제도

여성의 지위

조선 시대 여성의 지위는 현대보다 나은 부분이 있는가 하면, 조선 시대 전기에 비해 후기로 갈 수록 열악해졌다.

조선 전기 여성의 지위는 고려 때와 비슷했다. 재산의 상속이 성별과 상관 없이 균등했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도 돌아가며 지냈다. 아들이 없어도 딸이나 사위가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결혼식을 신부의 집에서 하였고, 재혼에 제약 없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17세기 중엽(조선 후기)부터 점차 가부장적 질서가 강요되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에 나가기 위한 교육을 받는 남성과 달리 여성에 대해서는 시집살이를 중시하였다. 신부의 집에서 하던 결혼식을 이제는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와서 하였다.[주 3] 남성들이 집에서 먼 곳에서 일할 경우 도시락을 싸갔는데, 대부분 여성들이 집에서 일터까지 음식을 날랐다.

재산 상속에 있어서도 장남을 우선시하게 된다. 장남이 가장 차지하고 나머지는 형제들 몫으로 하며, 딸에게는 나누지 않았다. 제사도 전적으로 장남이 맡았다. 예전에는 친가와 외가, 딸아들 모두 적었던 족보를 친가쪽 아들만 기록하고, 아버지가 없으면 아들이 갓난 아기일지라도 어머니 대신 아들이 호주가 되었다.

또한, 고려 말부터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일부다처제를 부정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처의 자식은 적자, 첩의 자식은 서자라고 하여 서자는 과거 응시를 못 하게 하고 제사를 지낼 때 서자는 적자의 뒤에서 절을 해야 하는 등의 차별을 법제화했다. 이렇듯 한 집에서 한 사람만 처로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복 자식들끼리 싸우게 되었다. 첫째 부인이 아닌 둘째 부인과의 자식만 있는 경우 첫째 부인과는 이혼을 하여 둘째 부인과의 자식을 적자로 삼아 과거를 보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문제가 안정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때도 남자가 육아에 참여하는 등 현대에 비해 남녀 간 동등한 모습을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18세기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면 남성들이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 사대부였던 이문건은 양아록이라는 일종의 육아일기를 썼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의 가사노동과 젠더를 참고.

부연 설명

  1. 한양. 현재의 개성. 교통과 외교에 좋은 지리적 이점, 경제적 이점, 방어 요새에 좋은 형태를 갖추었다는 군사적 이점이 있다.
  2. 현재의 서울.
  3. 조선 전기에 태조가 이 방식을 하도록 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종 때에는 결혼식을 여전히 신부 집에서 하지만 4개월 정도 있고서는 신랑의 집으로 오는 것으로 양쪽 방식을 타협하려 하는 방식이 잡혔다. 허나 임진왜란 이후 17~18세기부터 이와 같은 시집살이로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