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여혐

최근 편집: 2017년 10월 24일 (화) 14:44
낙엽1124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10월 24일 (화) 14:44 판 (첫 번째 문단을 다른 문단에 분산하였습니다. 이 중 일부 문장은 강간(78522판)과 박유천 성폭력사건(78525판)으로 이동했습니다.)

언론계의 여성혐오.

사건을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풍토

남성연예인 박유천의 성폭력 논란이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을 때 특히 많은 언론은 이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거나, 네티즌들은 박유천을 '박WC', '토일렛박', '변기유천' 등으로 부르면서 이 사건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였다.

그 중에서도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의 자극적 방송 태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2차를 가려면 그 테이블에서 빠져 나간다 이런 (종업원의) 얘기도 있는데, 그러니까 종업원과 손님이 서로 대가를 치르고 주고받고 하면 나가서 할 수도 있다 뭐 이런 얘기 같아요", "여성이 속옷을 제출했잖아요? 그러면 우리 솔직하게 톡 까놓고 이야기 할게요. 쉽게 말하면 박유천씨 관련한 체모가 나온다던지 아니면 체액이 나온다던지 그 증거를 본다는 거에요?"

문제의식의 부재

박유천 사건에서 방송사들은 성폭행 여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성매매 행위에 대해서는 마치 아무 문제도 아닌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 이를테면, TV조선 <윤슬기의 시사Q>는 "성폭행은 아닌 거 같아요. 왜냐하면, 성폭행은 소리만 질러도 화장실을 저희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소리 지르면 저희가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에"라는 종업원의 인터뷰를 그대로 전하였다. 이는 곧 성매매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이다.

현행법 상 불법인 성매매 행위를 다루면서도 이에 대한 비판적 안목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방송에서 앵커가 '돈을 주고 2차를 나가는 성매매는 괜찮고, 화장실에서 적절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성행위를 했으니 성폭력일 것이다'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이들의 낮은 인권 감수성을 반영한다.[1]

반대의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성매매가 문화적으로 여성이 성을 팔고 남성이 돈을 지불하는 유형으로 각인되어 있다. '남성이 여성의 성 처분권 갖는다'는 것이 성매매 문제의 본질이 된다. 성매매 금지 시도 자체가 부계 사회를 유지하려는 남성 위주의 정조 관념이 여러 남자에게 성을 제공하는 여성을 부도덕한 존재로 낙인 찍으면서 시작됐다. 그 예로 한국도 성매매 방지 특별법 도입 전 '윤락 행위 방지법'이 있었다. 이때 윤락의 의미는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짐'이다.[2] 성 풍속 법률 논쟁에서 자주 인용되는 성적자기결정권은 여성을 위한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산아 제한과 임신중절 등 여러 쟁점에서 여성만이 법적 규제의 대상이 돼 왔고,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이를 남성이 대가를 지불하고 여성의 성적 자유를 살 수 있는 권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3]

조선일보 페이스북은 박유천 성폭력 사건을 두고 "아 빨리 좀 나와요.", "화장실을 몇 시간을 쓰는 거야 대체"로 각각 제목과 사건 상세 설명을 대체했다.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완곡한 어조

대중매체는 관음증적인 시선을 바탕으로 여성을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지만 유독  여성혐오 범죄자를 다룰  때는 한결 부드러워진 다. 예컨대, 강간 대신 이를 '몹쓸 짓'이라고 지칭하거나, 여성을 상대로 한 여성혐오성 범죄(이를테면, 강남역 살인 사건)를 묻지마 범죄로 가리키는 것이다.  강간을 '강간'이라는 말 대신  '몹쓸 짓'이라고 가리키는 것은 마치 '여자에게는 권리가 없다는 생각'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제스처와 같다.

남성 가해자가 아닌 여성 피해자의 정보 노출

대개 성범죄 사건 명명에서 남성 범죄자가 아닌 여성 피해자의 정보가 유출되는 경우가 주를 이룬다. 이를테면, 밀양집단성폭행사건 대신 밀양여중생성폭행사건이라고 한다거나 조두순 사건이 아닌 ㅇㅇㅇ(피해자 여아 이름) 사건이라고 지칭 하는 것 등이다.

피해자를 'XX녀'라고 부르는 관행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 'XX녀'라고 부르며, 가해자의 성별은 적지 않는 경우가 많다.[4]

대장내시경 검진 중 여성 고객들을 성추행의사가 구속된 사건에는 '대장내시경녀', 납치 살해된 뒤 자동차 트렁크에서 시체로 발견된 여성에게는 '트렁크녀', 가방에 담긴 채 발견된 여성의 시신에는 ‘가방녀’(SBS모닝와이드)라는 지칭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피해자를 "XX녀"라고 지칭하며 온갖 내용을 덧붙이지만, 가해자를 "XX남"으로 지칭하거나 별다른 정보를 표기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 트위터리안이 비판하자 연합뉴스 공식 트위터 계정은 "그런다고 해서 욕하고 저주할 일인가요?[5]"라는 희대의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6][7]

가해자의 미래와 피해자의 과거에 주목하는 태도

다음을 참고할 것 강간 문화 피해자에게서 피해 원인이 있는 것처럼 사건과 관련 없는 과거 행적이나 평판에 집중하고, 가해자에게서는 "촉망받는 인재였던 ㅇㅇ씨는...", "창창한 젊은이[8]", "성욕에 그만",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실수로", "술을 먹고 홧김에" 등 행동의 주체성을 제거하고 마치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외신을 왜곡하여 선정적이고 편향적인 내용으로 소개하는 관행

외신을 거의 그대로 번역한 후 제목과 내용 일부를 선정적이고 편향적인 내용으로 고쳐서 발행하는 관행 또한 문제이다.

"페미니즘 운동, 여성 노동자 삶의 질 개선 못해"

2013년, 영국의 공공정책연구소는 지난 50년 간 페미니즘이 이뤄낸 성과와 미흡한 점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젠더 문제 개선을 위해 공공 정책을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해야하는지 제안하는 보고서[9]를 발표하였다.

영국의 '더 텔레그래프'지는 "페미니즘 50년사 - 여성은 여전히 집안일을 하고 있다"라며, 보고서의 내용에 비해 약간 더 페미니즘 운동에 부정적 느낌을 주는 제목의 기사로 이 보고서를 소개하고 있다.[10]

국내의 한 언론은 이 기사를 거의 그대로 번역한 후, "페미니즘 운동, 여성 노동자 삶의 질 개선 못해"[11]라는 더 부정적 제목으로 변경하여 소개하고 있다.

게다가 번역 기사에 실린 인용 중 "유리 천장 깨기식 접근은 이사회에 있는 여성들만 승진시켰을 뿐 평범한 여성들을 위한 가정친화적 직장과 기회 제공에는 실패했다"라는 인터뷰 내용은 오역이며, 인터뷰어가 지적하는 문제점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바꿔 버렸다. 적절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그저 '이사회에 앉아 있는 여성들'의 모습만을 조장할 뿐인 '유리 천장 깨기' 접근은 가정친화적 직장 문화로의 변화 창출이나 다른 분야 여성들에 대한 기회 제공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주 1]"

'유리 천장 깨기'라는 구호는 젠더 격차 문제에 있어서 그저 더 많은 여성들이 회사 고위직에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라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발언이다. 이를 오역하여 '유리 천장 깨기'가 고위직 여성만 더 승진시키고 있어서 문제라는 식으로 엉뚱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2차 가해적인 기사 이미지

언론들은 삽화를 이용해 성범죄 등을 전달할 때 범죄 내용을 최대한 자극적인[12] 방향[13]으로 묘사한다. (‘조회수·클릭수·광고수익 올리기’ 등의 1차적 목적만으로 선정적인 이미지를 이용한다는 비판이다.) 한국의 많은 언론들은 젠더폭력 피해자를 이미지화하고 있다. '피해자상'을 고착화시키고 성적 이미지로 소비[14]한다. 언론은 피해자의 무력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동화적 관점을 반영한 이미지를 제작·유통·확산한다. 이는 피해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자아낸다.

-- 셰도우 핀즈[15]

외부 링크

부연 설명

  1. "The 'break-the-glass-ceiling’ approach that simply promotes 'women in the boardroom’ has not been as successful in changing family friendly working culture or providing opportunities for other women to advance."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