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테일러 밀

최근 편집: 2017년 11월 3일 (금)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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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테일러 밀은 1세대 페미니스트 중 한 명으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 밀은 울스턴크래프트보다 100년 뒤에 글을 쓰면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합리성을 찬양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자율적 도덕적 측면뿐 아니라 분별적인 측면에서 합리성을 고찰했다. 울스턴크래프트와 달리 그들은 총체적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밀과 테일러는 또한, 울스턴크래프트와 달리 만일 사회가 성적 평등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그 사회는 여성에게 남성이 향유하는 것과 똑같은 교육뿐만 아니라 똑같은 정치적 권리들과 경제적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리엇 테일러와 밀은 결혼과 이혼에 관한 초기 에세이들(1832)를 함께 썼으며, 해리엇 테일러는 여성의 해방(1851)을 저술하고 밀은 여성의 예속(1869)를 저술하였다. 밀과 테일러는 종종 의견을 달리했다. 테일러는 아버지와의 유대관계보다 어머니와의 유대 관계가 더 강하다는 전통적 관점을 받아들여, 이혼할 경우 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 때문에 여성들에게 아이를 적게 낳을 것을 충고했다. 반대로 밀은 부부들에게 대가족 내지 공동체적인 생활을 영위해 이혼 시 아이들의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아버지에게 일정 역할을 부여하였다. 테일러는 여성들이 경력이나 직업보다 결혼이나 어머니 역할을 선호한다고 추정하는 사회의 가설들에 이의를 제기했다.테일러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반자가 되어 노동과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밀은 여성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고 해방된 후에도 주로 사적 영역에 남기를 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일러는 여성에게 세번째 선택, 즉 가정과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직업적인 면을 추가하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여성의 경제적 평등이 경제를 위축시키고 따라서 임금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는 밀의 1832년 주장에 대해 테일러는 여성들이 일을 하는 것이 효용성을 극대화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응수했다.간단히 말해서 여성은 남편의 종이 아니라 동료로서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테일러는 이 과정에서 계급상의 편견을 무심코 드러냈다. 자식이 딸린 근로 여성은 "한 떼의 집안의 하인들"이 필요하다고 말하였고, 비평가 질라 아이젠스타인은 테일러의 이러한 말이 그녀가 특권층 여성, 중상계층 여성이라는 사실을 잘 나타내 준다고 평가했다.

테일러는 울스턴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특권적 지위를 가진 일부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글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일러의 글들은 모든 여성이 공적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밀의 글도 마찬가지였다.밀은 여성의 예속에서 만일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시민의 자유와 경제적 기회를 누릴 자격을 갖춘 완전히 이성적 존재로 인정된다면, 사회는 여러 가지 이득을 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사실상 여성의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진다해도 여성 해방의 이익은 크나큰 것이었고, 이에 밀은 여성 해방을 크게 옹호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밀은 예외적인 여성들을 이용하여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한다고 주장되는 모든 차이점들이 평균적 차이라는 주장을 강화시켰다.

저서

배우자

남편이 존 스튜어트 밀이다.이들은 1830년에 만났는데, 이 떄 해리엇은 이미 결혼한 상태로 존 테일러라는 남편이 있었다. 테일러와 밀은 즉시 서로에게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매료되었고, 20년 동안 친밀하고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존 테일러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결혼했다. 남편이 죽기 전에도 해리엇 테일러와 밀은 규칙적으로 만나 식사를 하였고 주말에는 자주 영국의 해변가에서 함께 지냈다. 존 테일러는 해리엇이 "그의 집에서 주부로서" 살아가면서 행하는 "대외적인 형식적 행위"에 대한 대가로서 이러한 조처에 동의했다.[1]

  1. 페미니즘 사상 -종합적 접근- .로즈마리 퍼트남 통. 한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