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최근 편집: 2023년 7월 25일 (화)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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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高句麗)는 한국의 역사 중 원삼국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한반도 북부 지방 및 남만주 일대를 지배한 나라이다.

"고구려"는 초기의 이름이고 장수왕 이래로는 "고려"라고 불렸으나, 후대에 왕건이 세운 고려와 구별하기 위해 후대에는 관습적으로 고구려로 칭하게 되었다.

연혁

초기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이 건국하였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압록강의 지류인 훈장 강 유역의 졸본(환런) 지방이었다. 이 일대는 산악 지대라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건국 초기부터 주변의 작은 나라를 정복하며 평야 지대로 진출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압록강 가의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5부 연맹을 토대로 발전했다. 그 후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쳤다.

태조왕 때 요동 지방으로 진출을 도모했고, 부전고원을 넘어 옥저를 복속하여 경제 기반을 확대했다. 왕권이 크게 강화되어 계루부 고씨가 왕위를 독점적으로 세습하게 되었다.

2세기

  • 신대왕: 국상제 도입, 명립답부를 초대 국상으로 함
  • 고국천왕: 부족적 전통의 5부를 행정적 5부로 개편했고, 왕위 계승이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뀌었다. 을파소 등용, 진대법 실시

3세기

  • 동천왕: 위나라 장수 관구검의 침공으로 환도성이 함락되고 왕은 옥저 지역으로 피난하였다.

4세기

  • 미천왕: 이 때에는 중국이 5호 16국으로 나뉘어 혼란한 상황이었다. 왕은 이 틈을 타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다. 중국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대동강 유역을 확보했다.
  • 고국원왕: 전연(선비족)과 백제의 연이은 공격으로 평양성에서 전사하여 고구려가 위기에 처하였다.
  • 소수림왕: 전진과 수교하여 대외 관계를 안정시키고, 불교를 수용하여 국민들의 일체감을 높였다. 또한 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였다.

소수림왕의 개혁으로 고구려는 안정을 되찾았다.

5세기

  • 광개토 대왕: 정복 활동이 활발하였다. 광개토 대왕은 백제를 압박하고 신라를 도와 왜를 물리쳤다. 거란과 후연 등을 격파하며 요동과 만주 일대를 장악했다. 광개토 대왕은 독자적 연호인 ‘영락’을 사용하며 높은 위상을 드러냈다.
  • 장수왕[주 1] :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남북조와 동시에 교류하고 북방 유목 민족과도 폭넓은 관계를 유지했다. 적극적인 남진 정책으로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백제를 밀어내 한강 유역을 장악했다. 고구려의 사실상 최전성기이다.
  • 문자명왕: 부여를 완전히 복속하며 최대 강역을 지배했다.

말기

  • 평원왕: 온달이 북주의 군사를 격퇴하였다.
  • 영양왕: 신라에 빼앗긴 죽령 이북을 되찾으려 온달이 출정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수나라의 침공을 받았다. 살수 대첩이 일어났다.
  • 영류왕: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 축조를 개시하였다. 연개소문의 정변으로 사망하였다.
  • 보장왕: 고구려의 마지막 군주로, 실권자는 연개소문이었다.
    645년 안시성 전투를 승리하였는데, 당나라가 이후 전략을 국지도발을 통한 소모전으로 정하고, 이때쯤 연개소문이 죽으며 권력쟁탈전이 일어나 연남생은 당에 투항하고 연정토는 신라에 투항하였다.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며 고구려는 멸망하였다.

사회상

계루부·절노부·소노부·순노부·관노부의 5부족이 귀족을 이루었고 그 중 계루부가 왕위를 세습했으며, 절노부는 왕비족이었다.

부여처럼 왕 아래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고 그 아래로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를 거느렸다.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열어 사형에 처하고 처자는 노비로 삼았다.

풍속으로는 서옥제가 있었는데, 남자가 혼인을 한 뒤 일정 기간 처가에서 살다가 가족을 데리고 남자 집으로 돌아가는 혼인 형태였다.

건국 시조인 주몽과 그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겼고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치렀다.

부연설명

  1. 고대의 군주들은 간혹 기록의 실전, 또는 신화적 과장 등으로 인한 부정확한 기록 때문에 수백년, 수천년을 살았다고 알려지게도 되었는데, 장수왕은 실제로 오래 살았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