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5일 (일)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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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1876년 8월 29일~ 1949년 6월 26일)는 대한제국, 대한민국의 항일운동가이다. 해방 이후에는 남북한의 통일된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으나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키는 180cm으로 매우 큰 편이었다. 이 사진은 임시정부 시절 사진이다.

조선시대~대한 제국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동학농민운동을 하였다. 동학군이 연패하는동안 김구는 안중근의 아버지인 안태훈의 집에 숨었다.

일제 강점기

김구는 일제에 대하여 꽤나 강경파였으며 민간인을 죽인 적도 많았다. 3.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 건립에 참여하였다. 그는 의정원 의원과 초대 경무국장을 지낸다. 1939년 그는 한국광복군의 전신인 한국독립당 당군을 만들었다. 1940년엔 임시정부 주석인 이동녕이 서거하여 주석에 선출되었다. 1940년 9월엔 한국광복군의 건군이 정당함을 중화민국 정부에 알렸으며, 중국 정부의 지원이 줆에 따라 임시정부를 미국으로 옮겨 독립전쟁을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941년 건국강령을 제정하고 대일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다음년 김원봉 등의 좌익 계열 무장독립운동 세력을 포섭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18일 미국과 함께 일본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항복 및 해방으로 무산되었다.

해방 이후

김구는 해방 이후 극우 성향을 가졌었으며, 남북의 통일된 정부를 주장하였어서 남한 단독의 정부를 주장하였던 이승만과 대립하였다. 이 때 백색테러를 하여 좌익 세력의 정적들을 제거하였었다.

김구의 여혐 논란

이러한 악형을 당하면 나도 악을 내어서 참을 수도 있지마는 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굶기는 벌이다. 밥을 부쩍 줄여서 겨우 죽지 아니할 만큼 먹이는 것인데, 이리하여 배가 고플 대로 고픈 때에 차입밥을 받아서 먹는 고깃국과 김치 냄새를 맡을 대에는 미칠듯이 먹고싶다.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들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난다. 차입밥! 얼마나 반가운 것인가. 그러나 왜놈들이 원하는 자백을 아니 하면 차입은 허하지 아니한다. -백범일지

옥중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으로 보아 아내가 다름 아닌 순사에게 몸을 팔아 차입밥을 넣어줬으면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아내가~생각까지도 난다"와 "차입밥!"사이의 내용을 교묘히 없앤 글이다.

배가 고픈 때에 차입밥을 받아서 먹는 고깃국과 김치 냄새를 맡을 때에는 미칠 듯이 먹고 싶다. 아내가 나이가 젊은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들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난다. 박영효의 부친이 옥중에서 선거적을 뜯어 먹다 죽었다는 말이며, 옛날 소무가 전을 씹어 먹으며 한나라의 절개를 지녔다는 글을 생각할 때에 나는 사람의 마음은 배고파서 잃고, 짐승의 성품만이 남은 것은 아닌가하고 자책하였다. 이후 생략

보다시피 논란이 되는 문장이 나오자 마자 바로 자신을 짐승이라 자책하는 내용이 나온다. 김구 선생이 정말로 아내가 몸을 팔기 원했다는건 억지에 가깝다. 즉, 당시 고문이 굉장히 힘들었고, 그때문에 자신이 피폐해졌다는 것을 말하는 내용이다. 여성시대의 어느 이용자가 이 내용을 악의적으로 조작하여 퍼트렸다.


백범일지의 저자

김구는 지금으로 따지면 초졸의 학력으로서, 그 다지 지적능력이 뛰어나지 않다. 백범일지 역시 김구의 치하포 살인사건 등은 사실이지만, 그의 발언 등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백범일지는 당연히도 조선 제일의 글쟁이였던 춘원 이광수의 도움 없이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즉, 백범일지는 좋게 말하면 이광수의 각색과 윤문이 있었던 것이다[1].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의도적으로 백범을 우상화하면서 백범의 '문화 국가' 등을 운운하지만, 문화국가의 개념들은 백범의 생각이 아닐 확률이 높다.

  1. 백승대 (2014년 9월 14일). “박정희가 띄운 김구, 어떻게 진보의 아이콘 됐나”. 《오마이뉴스》. 2020년 3월 2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