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

최근 편집: 2023년 3월 9일 (목) 10:03

구한말 신문

독립협회에서 발간한, 한국사 최초의 민영 출판언론으로, 1896년 4월 7일부터 1899년 12월 4일까지 발간했다.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갑오개혁으로 사면되면서 돌아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며 주필로서 관여했는데, 정부의 친러 성향을 비판하고 고위 관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등 대립하다 1897년 12월 중추원 고문에서 해임되고서는 윤치호가 운영을 이어받았다. 독립협회가 근왕파의 음해로 1898년 12월 해체되고는 운영이 불안정해졌다가 1899년 12월 4일 정부에 시설이 인수되어 폐간되었다.

한문이 권위있는 문장의 지위를 차지하던 시절에, 독립신문은 한글학자 주시경의 관여로 순한글 문장을 채택하고 띄어쓰기를 최초로 사용하였으며, 형태론을 고려한 표기법의 초기형을 제시했다. 반면에 현대에 쓰이지 않는 표기법들도 있는데, 아래아는 18세기에 이미 음가를 잃었으나 형태론적 일관성을 위해 계속 쓰였고(아래아는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으로 폐지가 결정되었다), 인명이나 단체명에 한줄 밑줄, 지명 및 국명에 두줄 및줄로 고유명사를 강조하는 표기가 있었다. 또 군주정의 전통에 따라 고종 황제를 지칭할 때마다 줄바꿈을 했다.

독립신문은 대한제국의 사정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 <The Independence>라는 이름의 영문판으로도 만들었다.

제국주의 성향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서재필이 주필이었던 만큼 당시 개화파 인사들의 세계관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그 면면을 보면 2차대전 이후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근대 문명개화론 및 제국주의적 세계관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몇십 년 앞서 근대화를 이끌고 구습을 타파하며 서구 제국주의의 실체를 분석한 일본의 개화 지식인들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나던 성향이다.

1896년 8월 4일자 논설

(전호 연속)청국 사람들이 몇천년을 생각하기를 청국이 세계 중에 제일 개화한 나라요 제일 강하고 제일 부요하고 제일 큰줄로 생각하야 몇천년 전의 모든 법률과 풍속과 정치를 오늘날까지 숭상하다가 영길리와 싸움하야 북경을 모두 불지르고 배상을 여러 천만원을 물고 향항을 영국에게 빼앗기고 그런 후에도 종시 구습을 고치지 않고 문명 개화한 나라 사람들을 보면 오랑캐라 하고 귀족들은 외국에 가기도 싫어하고 새 학문 배우는 사람을 천히 여기고 그저 몇천년 된 풍속으로 나라를 다스리는고로 나라가 점점 약하야져 백성이 도탄에 있고 국중에 완고 당이 점점 성하야가더니 불란서가 싸움하야 안남을 빼앗기고 섬라국이 청국 조공을 보내지 않고 자주 독립이 되어도 청국 정부에서 감히 한 말을 못하고 일본류구국을 뺏어가도 다시 꿈쩍을 못 하고 또 작년에 일본과 다시 싸워 일본 군사가 조선 청국 등뒤에서 백전백승하고 필경 북경을 범하게 되는고로 청국 정부에서 리홍장씨를 일본에 보내어 빌면서 싸움을 그쳐달라 하는고로 일본 정부에서 청국더러 배상 8억8천만원을 바치고 대만을 일본으로 붙이면 싸움을 그치겠노라 한즉 청국이 너무 감지덕지하야 그렇게 약조하고 겨우 목숨을 도모하였으니 청국 사람들이 만일 사람의 자식들 같으면 일본에게 이렇게 망한것을 분히 여겨 문물을 주워먹고라도 아무쪼록 진보하야 이왕에 있던 풍속과 제도와 정치와 법률을 개정하야 사람마다 이 수치를 씻으려는 마음이 있으련마는 그저 꿈들을 못 깨고 그저 구습으로 나라를 다스리니 청국 사람은 세계에 웃음거리요 아무 나라에 가도 청인이라면 천대가 무수하니 조선 사람들이 이 본보기를 곁에다 놓고 보면서 꿈을 아니 깨고 세계에 제일 천대받고 세계에 제일 약한 청국을 본받으려 하니 이런 조선 사람들은 관민간에 다 원수요 나라를 망하랴는 사람들이라. 이런 사람들은 화륜선에 모두 실어 청국에다 갖다 버릴것 같으면 친구들을 많이 만날터이요 조선에는 큰 경사라.

만일 조선 사람들이 꿈을 깨어가지고 문물을 주워먹어 가면서도 진보하야 공평하고 정직하고 편리하고 부국강병하는 학문과 풍속을 힘쓰거드면 조선사람도 영길리나 미국 사람만 못하지 않을 터이요 조선도 청국을 쳐 요동만주를 차지하고 배상 8억 만원을 받을 터이니 원컨대 조선 사람들은 마음을 크게 먹어 십년 후에 요동, 만주를 차지하고 일본 대마도를 찾아올 생각들을 하기를 바라노라. 하면 될터이니 결심하야 할 생각들만 하고 못 되려니와는 생각지 말지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1919년부터 1943년까지 발간했다. 위의 독립신문과 달리 국한문 혼용체에 띄어쓰기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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