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또

최근 편집: 2019년 10월 20일 (일) 15:03

마니또는 한국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역할 놀이이다. 여러명이 모여서 각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제비를 뽑고, 거기서 이름이 나온 상대가 자신의 "마니또"가 된다. 참가자는 자신의 마니또에게 여러가지 형태로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참가자들은 마니또가 진행되는 기간을 함께 정한다. 2-3일이 될수도 있고, 한달이 될수도 있다. 마니또 기간이 끝나는 날에는 흔히 하나의 이벤트를 진행하며, 여기에서 각자가 자신의 마니또에게 선물을 전달하며 "내가 너의 마니또였어"라고 밝힌다. 좋아하는 상대가 걸리면 잘하면 썸도 탈수 있는 그런 두근두근한 기회를 만들어도 주기 때문에 나름 인기가 있다.

서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놀이가 있으며, "비밀 산타" (영어: secret Santa)라고 부른다. 마니또와 한가지 다른 점은 마니또 놀이에서는 잘해주는 사람의 대상이 "마니또" 역할인 반면, 역으로 비밀 산타에서는 잘해주는 사람 본인이 "산타" 역할이라는 점이다. 크리스마스 전야를 최종 이벤트로 진행할수도 있지만, 고등학교에서 학기의 마지막 날을 마지막 이벤트로 삼고 진행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마니또가 스페인어로 "애인", "애인처럼 생각하고 아껴주는 친구", "친밀하다"라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만들어졌고, 원래 남미의 카톨릭계 전래 행사라고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다. 마니또의 의미가 잘못 전달된 점도 한국에서 흔한 해외 문화 타자화 및 대상화의 전형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잘 알지 못하는 (미국 등이 아니라) 제3세계의 문화를 레퍼런스하는 것이 "있어보이고", 맞는 정보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애초에 그게 맞는지에 관심도 없다) 그냥 감수성을 자극하니 잘 팔리는 것이다. 나무위키[1]에도 딱 이 정도 수준으로 기술되어 있다.

마니또의 의미는 아마 이렇게 잘못 전달되었을 것이다 - 먼저 누군가가 멕시코를 여행하다가 얼추 비슷한 경험을 한다 (아마 비밀 산타를 목격하거나 현지 버전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여행수필 같은 곳에 쓰면 잘 팔리겠다고 생각한 여행자가 적당히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점을 채워넣어서 판다. 그후 이를 보완하면서 어중간한 스페인어 실력, 또는 미국에서 백인에게 이에 대해 물은 후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더 잘할테니) 거기서 전해주는대로 그게 사실인양 기록한다. 이런식으로 감수성 팔이를 하는 문화 코드들이 많다.

사실은 '매우 가까운 친구, 친밀하다'의 뜻을 갖는 스페인어 'manito'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페인어에선 '도와주다'는 뜻의 'echar una manito'라는 표현도 있다. Collins Spanish Dictionary와 스페인 왕립 아카데미(Real Academia Española)에서 제공하는 Diccionario de la lengua española에는 이 말이 특히 '멕시코에서 친구 간에서 표시되는 친밀감이나 매우 가까운 친구를 뜻한다'고 나와 있다.[2]

나무위키의 상기 기술에는 "기술적으로" 맞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놓친 정보와, 아예 잘못된 정보가 혼재되어 있다. 정리를 해보자. 서구에서는 친한 사람에게 "형제여"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 일부 서클들이 있다. "나는 이 사람과 절친이다.. 형제 같은 관계이지" 같은 표현도 쓰인다. 이를 역이용하여 길거리에서 구걸 할 때 "이 형제를 돕지 않겠습니까?" (come on, help a brother out) 라고 자극할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스페인어권[주 1]에서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주 2] 길 가다가 만났을 때 "야! 우리 형제!" (¡hola hermano!) 하면서 얼싸안거나 할 때가 있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운동하는 사람이 "동지" 같은 느낌으로 서로 형제라고 부를때도 있다. 형제는 hermano 이다. hermano 가 너무 성숙한, 진지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가볍게 하기 위해 크기를 줄이는 어미 -ito 를 덧붙여, hermanito 라고 부른다.[주 3] 이 단어에 다시 스페인어에서 한 단어를 자주 쓸 때 앞 몇 마디를 줄여버리는 패턴을 적용해 ~~manito! 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hermanito 에서 유래한 ~manito 와 mano (손) 을 응용한 echar una manito (손 좀 덜어주기 - "도와주기"라는 의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누가 저걸 연관된 지식이랍시고 끼워넣었는지는 몰라도..

끝으로 Urban Dictionary 에서 manito 가 spanglish 라는 지적[3], 그리고 상기에 나와있다 시피 RAE 사전에서는 manito 가 멕시코에서 자리잡은 표현[4]이라고 기술한 점을 종합해볼 때 hermanito 를 줄인 manito 가 미국 서남부의 멕시코 계열 라티노 인구 (어쩌면 치카노 또는 Tex-Mex 도 일부 포함할수도) 및 멕시코 북부에서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표현이라는 것을 유추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원을 이해 못한 영어권 백인들이 이렇게 사용되는 것을 멀리서 보고 "아 뭔가 친한 사람들끼리 쓰는 표현인가보군"이라고 겉핡기 식으로 이해한 다음, 이것이 한국에 전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카톨릭 전래 행사라는 말은 그냥 뻘소리고, 마찬가지로 백인들의 시각을 통해 잘못 전달된 정보이다.

멕시코 북부의 멕시코 인구 및 미국 서남부의 라티노 인구 사이에서 비밀 산타 놀이가 "마니또"라고 불린다는 것은 가능성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그런 정보는 전무하다. 이 또한 백인들의 시각을 통해 잘못 이해되고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까 백인들이 비밀 산타 놀이를 하는 라티노 젊은이들을 보면서 서로 "hermanito! manito!" 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아 저 친구들은 마니또 어쩌구라는 놀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군?" 이라고 대충 이해했다거나.[주 4]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이 놀이를 마니또라고 부르지 않으며, 비밀 산타 (Santa secreto) 라고 부른다.[주 5]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만일 멕시코에도 이 놀이의 이름이 마니또가 아니라면, 결국 한국의 젊은이들은 제3세계에 대한 무관심, 타자화 및 대상화가 대충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에[주 6] 한국에서만 통하는 이름을 붙여가며 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

부연 설명

  1.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 경향이 더 강하려나?
  2. 주로 청년들이 쓴다. 십대가 쓰기에는 조금 "성숙한" 표현에 속한다.
  3. 따져보자면 "형제여!"가 아닌, 가족 관계에서 쓰일 때 hermanito 는 "동생"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지만, 그건 별개의 경우이다.
  4. 한국 전쟁 당시 주둔하던 미군 병사들이 한국인들에게 "너희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라고 물었을 때 "한국(hangook)"이라는 답변을 듣고, 뒷부분만 대충 기억해서 이후 한국인에 대한 비하 표현으로 "gooks"이라는 밑도끝도 없는 표현이 자리잡았다는 비화가 비교된다.
  5.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이 놀이를 직접 해봄..
  6. 이게 처음 유포된 1980년대에는 마니또 관련 상품을 팔아서 돈 좀 번 회사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만일 그렇다면 상업화도 한 다리 보탬..

출처

  1. “마니또”. 《나무위키》. 
  2. “마니또”. 《나무위키》. 
  3. “Manito”. 《Urban Dictionary》. 
  4. “Manito”. 《Real Academia Españ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