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랄라 유사프자이

최근 편집: 2023년 3월 3일 (금) 21:18
말랄라 유자프자이
국적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직업사회운동가
현직UN 평화대사 (2017.04~)
상훈필라델피아 자유상·세계어린이상·노벨평화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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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수정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 사회 교육 운동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국제 공산주의, 반제국주의, 반전주의 성향 활동가이다.

생애

아프가니스탄이 영국 전쟁으로 지쳐갈때, 소녀가 산으로 올라가 "사자로 사는 하루가 노예로 사는 100년보다 낫다." 고 외친다. 소녀 외침으로 아프가니스탄 군사들은 힘을 내고 큰 승리를 거두지만, 소녀는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아들이 태어나면 축포를 쏘고 딸이 태어나면 커튼 뒤에 숨기는 나라”에서 다행히도 교육·인권 운동가였던 아버지가 있던 덕분에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파키스탄으로 돌아오면 살해하겠다" 는 탈레반 위협에도 사회 인권 활동을 펼쳤다. 지속적인 교육 사업을 위하여 말랄라 펀드를 조성하여 교육 중요성을 호소하였다. 2013년 7월 12일 [[UN[]]에서 연설하였는데, 말랄라의 날로 지정하였다. 그러면서 300만명이 청원하였고, 반기문 이 받아들여 성사됐다. 2013년 타임지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됐다. 자서전 <총 말고 책>에서 "한 명 아이, 교사, 책, 연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파키스탄이 발전하려면 소녀들이 배워야 한다" 는 내용을 담았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중이다 .

발언

"사회주의가 유일한 해답이다."[1] -2013년 파키스탄 마르크스주의자 대회에서

"나는 서방의 꼭두각시가 아니다."[2]

“나는 교육을 받을 권리, 노래할 권리, 시장에 갈 권리,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가 있다.”[3]

“테러리스트들은 총탄으로 우리를 침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틀렸다. 탈레반의 총격은 나를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지금, 나는 두려움 대신 희망을 본다. 분쟁지역의 모든 어린이들의 교육권 실현이라는 제 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4]

“모든 어린이들이 배움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모든 어린이들이란, 나에게 총격을 가한 탈레반 테러리스트의 아이들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나는 내게 총을 쏜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사람들 마음 속에 증오 대신 평화가 자라야 하고, 이것이 내가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다.”[5]

그 소녀의 이름이 ‘말랄라이’ 였고, 말랄라의 아버지 지아우딘 유사프자이는 이 이야기 속 소녀의 이름을 따 ‘말랄라’라는 이름을 지었다.[6]

프레스 클럽 연설

축제나 결혼식이 있어 헤나로 손을 장식할 때면 미적분이나 화학공식을 그려 넣는 것을 즐기던 말랄라는 배우는걸 좋아했다. 하지만 2008년 탈레반의 점령이 시작되자 여성의 교육이 금지되었고 그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그해 유사프자이는 지역 프레스 클럽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탈레반이 내 기본적인 교육권을 박탈했다”


BBC 우르두어 익명 연재

2009년 1월 3일, 유사프자이는 영국 BBC의 우르두어(파키스탄 3대 공용어) 홈페이지에 익명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탈레반 치하의 파키스탄에서 소녀들이 학교에서 사라지고 마침내 자신이 다니던 학교도 폐교되었음을 세계에 알렸다.

단 3개월의 연재였지만 반향은 거대했고, 마침내 ‘뉴욕타임즈’의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신분이 노출되자 살해 위협이 따라왔다.

2012년,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유사프자이는 탈레반 무장대원의 총격을 받는다. 머리와 목, 어깨에 총상을 입은 그는 영국 버밍엄으로 이송되었고, 수차례의 수술 끝에 마침내 눈을 떴다.

이 사건으로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문제가 국제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고, 탈레반의 억압에 짓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파키스탄 여성들도 나선다.

“내가 바로 말랄라다(I am Malala)”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여성들이 파키스탄의 거리를 가득 메운다. “내가 말랄라다”라는 발언은 소녀에게 총격을 가한 탈레반이 버스에 올라 “누가 말라라냐?”라고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자, 탈레반의 위협으로 교육받을 기회를 잃은 1만 2천여 명의 파키스탄 소녀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연대의 구호이다.[7]

또한 200만명이 여성 교육문제 관련 서명운동을 해 파키스탄 정부는 교육권리 법안을 통과시켰다.[8]

비판

공산주의

말랄라 유자프자이는 자신을 이용하는 시각을 일관적으로 비판하였다. 말랄라 유자프자이는 "국제 공산주의자로써 사회주의가 해답이다"는 주장으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말랄라 유자프자이는 버락 오바마에게 초청을 받은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파키스탄에서 벌이는 드론 공포가 지역 평화를 망친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버락 오바마와 대립 구도를 세웠다. 서방 인권담론이 개발도상국 유색인 여성을 구하여주는 민주화 백인 남자 시각으로 다루어지는 식민주의자들 침략을 정당화 하는 명분으로 남발되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하지만 서구 주류 언론에서는 말랄라 유자프자이를 의도적으로 베재하고, 순진하고 서구 이익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는 소녀로 묘사하여, "나는 서방 꼭두각시가 아니다" 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자료

  • 마음 속 사람 <“총 말고 책” 말랄라 유사프자이>, 국가인권위원회. 2018. 05
  • <나는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크리스티나 램, 문학동네, 2014.
  • <내 이름은 말랄라>,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2016.
  • “탈레반에 맞선 파키스탄 소녀…6년 만의 귀향”, MBC 뉴스데스크, 2018.04.01.

출처


  1. Ben Norton (2014년 10월 15일). “THE MALALA YOU WON’T HEAR ABOUT”. 《Socialist Worker》. 2020년 9월 7일에 확인함. I am convinced Socialism is the only answer and I urge all comrades to take this struggle to a victorious conclusion. Only this will free us from the chains of bigotry and exploitation. 
  2. “I am no Western puppet: Malala”. 《The Express Tribune》. 2013년 10월 13일. 2020년 9월 7일에 확인함. 
  3. “말랄라 유사프자이 “한 명의 어린이가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 2013년 7월 17일. 2019년 12월 23일에 확인함. 
  4. “말랄라 유사프자이 “한 명의 어린이가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 2013년 7월 17일. 2019년 12월 23일에 확인함. 
  5. “말랄라 유사프자이 “한 명의 어린이가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 2013년 7월 17일. 2019년 12월 23일에 확인함. 
  6. “2014 노벨평화상 수상 17세 여성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네이버 지식백과》. 2019년 12월 23일에 확인함. 
  7. “말랄라 유사프자이 “한 명의 어린이가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 2013년 7월 17일. 2019년 12월 23일에 확인함. 
  8. “말랄라 유사프자이 UN 청소년의회 연설영상”. 《네이버 블로그》. 2015년 1월 5일. 2019년 12월 2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