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신화

최근 편집: 2023년 1월 6일 (금)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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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신화 혹은 모성 숭배는 여성 찬양의 형태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여성혐오이다.

비판

신화화

모성애는 부성애와 다른 특별한 것으로 대상화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모성애는 오랫동안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숭고하고 신비한 것,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아버지됨'의 의미는 여전히 남성과 무관한 채로 애매하게 남아 있다. '아버지'가 보기에 아이는 '생겨난' 것, 즉 무엇보다도, 난자를 수정하게 만드는 정자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어머니'에게 아이는 지속적으로 '있음', 적어도 아홉 달 동안 지속하고, 흔히 몇 년 동안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첫째, 강렬한 신체적·정신적 통과의례—임신출산—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본능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양육에 대한 학습을 통해 얻어진다.[1]

이를 통해 남성은 육아로부터 문화적으로 해방되며, 여성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이상적 어머니'에 미치지 못할 경우 사회적으로 지탄받는다. 또한 아이를 돌보고 목숨 바쳐 지키는 것은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암수를 구분하기 어려운 어떤 동물이 자녀 개체를 보호하는 영상을 보며 사람들은 손쉽게 모성애를 떠올리고 그 동물이 암컷이라고 유추한다.

낸시 초도로우어머니를 어머니이게끔 하는 '어머니 노릇'이 매우 특수한 분석을 요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어머니 노릇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었다거나 본성에 의한 것이라는 근거가 없음에도 여성이 어머니 노릇을 자신의 것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머니 노릇이 여성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 활동이 아니라 대인관계적으로 충만하고 애정어린 관계에 참여하는 것이자 성격과 관계 속에서 자기-감에 새겨진 어떤 관계적 능력을 요구하는 매우 특별한 역할이기 때문이다.[2]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편견 조장

모성 신화는 또한 여성이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이미지를 노출함으로써 여성이 위급한 상황에 이성을 찾지 못하고 감정에 휘둘린다는 성편견을 조장한다.

에서 2년차 펠로우 의사가 둘째아이가 열경기를 일으켰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본 의사들의 반응.

모성 숭배

모성 프레임에서는 '어머니의 숭고함'을 찬양한다. 하지만 그 찬양받는 모성이란 사실 현실 세계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경지)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진정한 어머니'는 절대적인 희생을 행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무한한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자기희생이 동반된다. 따라서 이 어머니라는 성역할에 숭고의 프레임이 덧씌워지며 이러한 역할을 해내는 여성들이 찬양받을수록 오히려 모성을 가지게 되는 여성들의 마음에는 왜곡된 자기 혐오와 여성 편견이 자리잡게 된다.

즉 모든 모성은 사회가 만들어낸 왜곡된 이념에 지나지 않으며 여성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남성들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을 위하여 여성들이 행하게 하는 일방적인 봉사를 일컫게 되는 것이다.

또한 모성 신화를 반박하는 사례로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라는 책에서 과학자 이은희는 임신을 하면 산모와 태아가 생존경쟁을 벌인다고 말한다.

모체는 절반이 타인의 유전자로 이루어진 태아를 자신이 받아들여 키울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이후에 임신을 유지하면서도 태아의 엄청난 식욕과 성장욕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에 관심을 가진다.[3]

같이 보기

출처

  1. 에이드리언 리치 (2018).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모성의 신화에 대한 반성》. 김인성 옮김. 평민사. 9쪽. 
  2. 낸시 초도로우. 《모성의 재생산》. 65쪽. 
  3. 이은희,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궁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