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최근 편집: 2023년 8월 22일 (화)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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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출생1947년 2월 12일(1947-02-12)
대한민국 전라남도 영광군
국적대한민국
소속CH.DIA
종교불교
가족슬하 2남 1녀
김유라 (손녀)
상훈(2017년) 유튜브 실버 플레이 버튼·29초 영화제 장려상 (2018)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 ·11월 대한민국 광고대상 특별상 (2019) 유튜브 골드 플레이 버튼 (2021) 대한민국마케팅대상 대한민국파워인플루언서
활동 영역유튜브, 인스타그램
정보 수정

한국의 유튜버로 요리, 일상생활, 쇼핑, 드라마 등등 다양한 주제로 활동하고 있으며, 채널의 프로듀서는 손녀이다. 1백만 이상의 팔로워가 있는 유튜버로 한국의 유튜버와 관련된 행사가 있으면 꼭 선정되는 분이기도 하다.

행보

  • 교보문고 팬사인회

박막례 할머니는 책을 펼치며 "편들아 드디어 내 책이 나왔구나. 나 살아왔떤 과거가 다 담겨있다. 이거 진짜 내 팔근육이야. 쌀 들어나르고 설거지한 근육이야. 엿·꽃·떡장사, 파출부… 내가 살아왔던 삶이 여기 다 들어있다. 여성이라고 나 글도 안 가르쳐주고, 이름도 막내딸이라고 대충 지어놓고… 배움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내가 눈물이 나와. 살아온 과거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 박막례도 이리 살았는디 왜 희망을 버리냐. 니네들도 힘들면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하고 버텨. 이 악물고 버티면 이날이 오더라." 라며 여성으로서 차별받은 일화를 전하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전한다. 생애 첫 팬사인회는 19년 6월 7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싸운회 한다고 하면 심장이 뛴다. 싸인이 없거든, 밥 먹고 영수증 싸인도 잘 못하는디 어찌쓰까.. 영수증 하는 싸인으로 기냥 하기로 하였다. 100명까지밖에는 못하여준다. 노는 친구들만 온나. 일 빼지는 말아라" 라는 당부를 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후기로는 "입장하자마자 보게된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카메라 세례·환호·당황+얼음되신 막례쓰. 자신 인기를 모르는자" 라는 후기가 있었다. [1]

  • 상품 출시

21년 7월 출시된 제품은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에서 1,500만 조회수를 기록한 비빔국수 만들기 영상 조리방법을 그대로 구현하여낸 제품이다. 영상에서도 느껴지는 손맛과 거침없이 넣은 풍부한 식재료 덕에 인기를 끌었던 영상으로, 정량화된 조리법이 언급되지 않아, 많은 구독자들 궁금증을 유발하여 집에서 직접 구현하고 싶다는 요청이 빗발쳐 프레시지와 함께 제품을 출시하였다. 박막례 비빔국수 밀키트는 특제소스, 야채 구성, 박막례쓰팁, 박막례 묵은지 비빔국수로 박막례 간장 비빔국수 2종으로 구성됐다. 프레시지 손희진 상품기획자는 "박막례 할머니 편들 열화 성원에 힘입어 할머니 손맛을 그대로 구현하여낸 이번 밀키트를 출시하게 됐다. 이번 박막례 비빔국수 제품처럼 누구나 좋은 조리방법만 있으면 간편식을 생산·유통할 수 있게 돕는 사업을 통하여 다양한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라고 밝혔다. [2]

  • 계기·현황

17년 71세 벼락유명인이 탄생하였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할머니가 드라마 장면을 패러디한다. 예측불허 진행에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지만, 할머니가 생전 처음 스파게티를 먹어본다는 장면에 안타까움을 선사한다. 7남매 막내 박막례 할머니는 언니 셋과 우애가 좋았다. 그러나 셋째 언니가 얼마 전 치매 판정을 받았다. 평소 두통약을 달고 사는 박막례 할머니는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하는 걱정에 김유라씨는 할머니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치매 걱정을 떨쳤으면 하는 마음에 호주여행을 계획하였다.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할머니와 여행을 떠났다. 재미 삼아 페이스북에 올린 호주여행 동영상 조회수가 100만건을 돌파였다. 온도차에 "거기는 우리랑 틀랴? 이런" 라고 구수한 욕을 퍼붓는다. 손녀 유라씨는 뜨거운 반응에 할머니 재미있는 일상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개설하였다. 기획·촬영·편집은 유라씨가 담당한다. 대본은 따로 없다. 편들은 띄어쓰기,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희한하게 뜻이 통하는 할머니 글에 막례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이래서 손님들이 밥 나온 줄도 모르고 하였구나, 내가 느끼겠더라고" 라고 하였다. 하루에도 수차례 오는 섭외·광고 제안에 할머니 영상을 무단으로 재가공하여 게재하는 사례가 발생하여 보호에 대한 부담이 커져 MCN DIATV와 계약을 맺었다. 3살에 전쟁을 겪었고, 친구들은 다 곱게 컸지만, 20살에 결혼하여 남편이 집을 나갔다. 남편 빚쟁이들이 식당으로 찾아와 버는 족족 빚을 갚았다. 일본으로 떠나려고 하였으나 취업사기를 당하여 돈을 날렸다. 그러면서 42년째 식당을 운영하며 3남매를 길러낸 할머니는 요즘도 오전 4시면 일어나 오후 9시까지 가게를 지킨다. 식당 문을 닫는 날은 1년에 3일뿐이다. 영상 촬영으로 가게를 비우더라도 반찬은 손수 만들어놓고 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유라씨는 할머니가 살면서 못하여본 경험을 함께하기 위하여 시작하였기에 상업적으로 큰 욕심은 없다고 밝혔다. 할머니 광고가 더 많이 붙기를 바라는 것은 시청자들이다. "시청자들이 할머니가 광고도 찍고 돈도 벌어서 재밌는 거 많이 누리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타 유튜브 광고는 건너뛰기 하는데, 할머니 광고는 끝까지 본다고 하시더라고요. 진짜 고마워요" 라는 입장을 밝혔다. 할머니 친구들이 "너는 손녀하고 같이 살면서 출세하였는데, 우리는 무엇을 출세하냐" 라고 부러움을 산다. [3]

  • 서사

박막례 할머니는 "딸이 식당을 하는데, 우리 편들이 먼 데서 나를 찾아와요. 내가 다리가 조금 아파서 안 갈라 그러믄 엄마, 부산서도 대구서도 왔다 그래요. 1주일에 서너번은 가서 편들 만나요. 너무 예뻐요 하면서 손을 놓고 안 놔.. 너무 고마운데 표현을 못하겠어. 편들이 할머니 건강 조심하라고 하고 외국 간다고 하면 어디 가서 드시라고 하고. 우리 딸 아들보다 진짜 더 착허다. 큰아들을 21살에 낳고 23살에 올라왔어요. 비극적인데, 우리 시골에 진짜 저녁 끓일 것도 없었어요. 남편이 노동직을 하려고 온거야. 내가 한복학원을 나왔거든요. 나는 미싱을 하였어. 내가 그 미싱을 팔아서 아저씨한테 방 얻으라고 보냈어요. 얼마나 속이 없는가. 큰아들을 업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방을 안 얻어놨다는거야. 오매 환장하겄대. 내가 결혼할때 보리 한 섬 값을 가져가서 동네 사람에게 맡겨놓은 게 있었어요. 2만원짜리 방 전세를 얻었지. 유라네 할아버지가 우리 막내 낳아놓고 집을 나갔어요. 그래서 내가 자녀들 대학교를 못보냈어요. 내가 성격이 원래 남 집을 가면 창피하여 밥도 못먹었어요. 경문고등학교 앞에 리어카를 끌고 엿을 팔러 갔어요. 한마디도 안나오더라고. 한 가락도 못 팔고 그냥 와서 아이들만 실컷 먹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일 비극적이었어. 둘째 낳고는 파출부를 다녔어. 원래 아이가 있으면 못하게 하는데, 반찬솜씨가 좋다고 아이 데리고 오라고 하더라고. 나주엥 주인이 내가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연락이 왔어요. 그러면서 떡장사를 한번 하래요. 세는 안 받을라니까 가게를 한번 살려보라고 하더라고. 그때가 20살때인데. 하루에 많이 팔면 6개 팔고 남은건 집에 가지고 왔어요. 엿팔던 니아까에다가 과일·오징어를 팔고 한두달씩 하였는데 다 못하겠더라고. 내 친구가 여의도 식당이 있는데, 돈을 빌려줄 테니까 사촌동생이랑 하라고 하더라고. 그때 63빌딩 지을 때라 공사하는 사람들이 오는 식당이었어요. 백반집을 하였는데 잘됐어. 거기서도 우리 아저씨 때문에 못하였어. 우리 식당 의자에 발을 올리고 안나가. 내가 처음으로 일수라는 걸 빌려서 주었어요. 100만원 쓰면 100일동안 2만원 찍으라고 하더만. 여의도에서 10년에서 한 달 못되는 동안 식당을 하다가 그만두었어. 장사가 힘드렁 일본을 갈라고 하였어. 우리 육촌 언니네 아들이 사기꾼인데 모르고 집까지 정리하여서 돈을 넣은거야. 그때 삐삐가 있었는데 갑자기 삐삐가 안된더라고. 지금까지 그 돈은 못 받았어. 용인으로 오라고 한 분이 1000만원 들여서 가게를 얻어준거야. 은인이야. 처음에는 방도 없이 식당에 창고에서 자면서 3년인가 하였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돈을 번거지. 내가 혼자 작은 동네 병원에 갔어요. 우리 언니 세 명이 다 치매가 왔는데, 의사가 내 손을 만져보고, 눈도 막 뒤집에 까보고, 입을 벌리더만. 박막례씨도 치매 신경 써야 돼요 그러는거야. 치매는 형제간이 제일로 가깝대요. 내가 깜짝 놀랐어. 나느 하고잡은 말은 다 하고 살거든요. 그러다가 아들이랑 밥 먹으면서 유리가 옆에서 그걸 들었어." 라고 밝혔다. 김유라씨는 "치매예방을 하려고 하였는데 할머니 표정을 보니까 억지가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더 슬펐어요. 재미없는데 치매 때문에 하여야 한다는게. 인터넷으로 치매 예방법을 찾아보았더니, 가장 중요한 건 즐겁게 웃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는 거더라고요. 휴가를 내려고 하였는데 휴가를 줄 수 없다길래 사표 쓴거죠. 할머니랑 친구같이 지냈는데, 치매에 걸린다고 하니까 무섭고 정말 말이 안되는거예요. 우리 할머니처럼 열심히 산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너무 억울하겠는거예요. 저도 그때 각성을 한거죠. 인생에서 중요한 게 일이 아니구나. 나도 열심히 살지만 나중에 크게 남는 게 있을까. 할머니를 위하여 관둔게 맞지만, 저에게도 인생 전환점이었어요." 라고 밝혔다. 박막례 할머니는 "호주 가서는 계속 사진을 찍더라고요. 유라가 화장실을 갔을 때 들어본 게 카메라가 엄청 무거워. 계속 들고다는거야. 나는 욕부터 하여지.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나이 들면 다 증상이 오니까 허지 말라고. 그런데 "할머니는 화투도 못 치고, 술도 못 마시잖아. 내가 영상이랑 사진 많이 찍어놓을 테니까 잠 안 올때 많이 보래." 그 말도 참 기특하잖아요. 며칠 뒤에 가족 단체 대화방에 올려주더라고. 분명이 카메라로 찍었는데 휴대전화로 다 건너왔대? 신기하더라고." 유라씨는 "(얼굴이 알려지는게) 별로 걱정되지 않았어요. 저는 순기능을 체감한 세대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 가족들이 모으면 정말 재미있거든요. 지금도 할머니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하여 찍는 영상이 아니면 안하고 있어요. 자유여행 제안이 들어오면 1순위로 하고 있어요. 할머니가 행복한게 제일 중요합니다." 라고 밝혔다. 인생은 71살부터 영상은 29초 영화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4]

  • 방문

19년 4월 21일 박막례 할머니와 유튜브 CEO 수잔 워치즈키가 인사를 하며 선물을 교환한 뒤 함께 김밥을 만들었다. 할머니는 자개 장식과 수제 향초를 선물하였고, 워치즈키는 유튜브 모양이 들어간 앞치마를 선물하였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 이야기를 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 이야기를 하고, 전 세계에 있는 팬들과 소통할 수도 있다. 자신이 관심있는것에 관하여서 이야기할 수 있다. 요리, 취미, 언어, 특별한 상황에 관하여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할마넘이 유튜브만드신 게 저는 너무 기쁘다. 유튜브를 통하여 할머니 꿈을 실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동영상을 만드시지 않나." 라고 밝혔다. 경력에 대하여 "엄마로서 항상 일하고 있는데, 가정이랑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어렵다. 밤늦게까지 장난감을 줍고 물건을 고치고 있다. 심지어 지금도 아이들이 저한테 숙제를 물어보며 문자를 보낸다" 라고 밝혔다. [5]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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