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최근 편집: 2023년 1월 4일 (수) 08:29

설탕단맛을 내는 가루 형태의 조미료이다.

개요

설탕은 요리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조미료다. 사탕수수로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사탕무 등으로 제조하기도 한다.

설탕은 비건이 아닐 수도 있다

여러 이유로 을 먹지 않는 경우, 설탕을 사용한다. 설탕 그 자체는 식물성으로 비건이기 때문이다. 또 꿀과 달리 설탕, 그중에서도 정제설탕은 그 맛이 강하지 않아 요리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곤 한다. 사탕무로 만드는 정제설탕은 항상 비건이지만, 사탕수수로 만드는 정제설탕의 경우, 비건이 아닐 수 있다. 정제 과정에서 사용되기도 하는 탄화골분(bone char) 때문이다. 탄화골분은 숯으로 태운 동물의 뼈로, 설탕 산업에서는 주로 소를 이용한다. 설탕은 본래 갈색이지만, 소비자들이 하얀색 설탕을 선호하면서, 자당의 색조를 빼내기 위해 동물의 탄화골분을 이용해 정제를 시작했다. 페타에 따르면 탄화골분을 사용하는 설탕제조사의 경우, 황설탕 역시 비건이 아니다. 황설탕의 경우 정제설탕에 당밀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

국내 설탕은 제조 과정에서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지 않아 대부분 비건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한 확인을 위해서 아래에 고객센터를 통해 문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비건 설탕을 소개한다.

국내 제품 목록

  • 백설(CJ제일제당) - 정제과정에서 탄화골분 등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주 1]
  • 큐원(삼양사) - 정제과정에서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주 2]

설탕은 기호식품이자 당 공급, 열량 공급원. 커피와 차는 전형적인 기호식품. 향신료와는 또다른 즐거움을 얻는 식품들. 중상주의 무역을 이끄는 대표적 상품들.

설탕(사탕수수): 단맛, 당 인간에게 주요 에너지원이 되는 당분은 열량원과 함께 굉장히 중요한 게 당분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뇌. 세균, 모든 생물, 유기체는 당분을 좋아하게 되어있음. 기본적으로 당을 먹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발효 등등 효소 대부분의 동물들이 좋아하는 성분. 단맛은 뇌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몸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먹게 되어 있음 단맛을 추구하면서부터 새로운 시대로의 길을 가게 된것이다. 단맛의 근원을 독자적으로 추출해서 이것만 먹는 방법은 굉장히 오래됐음. 예를 들어 꿀 같은 것. 기원전 2000년 3000년 전부터 양봉을 했었다. 단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는 원초적인 것이다. 그 중에서 식물성 당을 채취해 정제한 설탕 결정 형태의 당분을 얻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섭취는 오래되었지만 전지구적 일반화는 비교적 최근이고 산업화된 당분의 생산과정이 생기면서부터 대중이 새로운 당분원을 널리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설탕도 꿀과 마찬가지로 매우 고가의 상품이었다. 그러나 대량 생산 대량 정제 대량 판매 유통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지금과 같은 식생활을 즐기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식품에 당분이 안 들어간 것이 없다. 밥을 비롯한 모든 식품에 다 설탕이 들어간다. 당분이라고 하는 걸 이렇게까지 많이 소비한 적이 없다. 지금과 100년 전 지금과 200년 전이 너무 다르다. 설탕하면 사탕수수만 생각을 하는데 당을 얻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탄수화물을 오래 끓이면 당이 된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 분해와 증발을 거치면 다들 당이 될 수 있다. 자연상태의 당인 꿀을 얻는 법도 있다. 우리는 사탕수수 설탕을 얻는 다고 생각하지만 사탕무 단맛이 나는 무 를 통해서도 설탕을 얻을 수 있다. 붉은 색 결정의 설탕. 적설탕. 원당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천연상태의 당분은 대부분 사탕수수에서 얻는다. 왜냐면 생산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당분의 대부분은 옥수수이고, 화학 성분의 당분 사카린도 있다. 단맛이 설탕의 100배 먹으면 오히려 쓴 맛이 느껴진다.원래 몸에 안좋다고 해서 제한을 했다가 다시 괜찮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다시 먹고 있다.

17~18세기의 세계를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킨 상품이기 때문에 설탕이라는 상품을 선택했다. 유럽인들이 단맛에 길들여지게 된게 바로 이 설탕 때문이다.

설탕을 만드는 과정

  1. 수확
  2. 분쇄(롤러 이용)
  3. 압착
  4. 정제 : 대여섯차례의 가열 및 불순물 제거- 수분을 날리고 당분만 남긴다.

산업적인 설탕 생산 방법이 나오기 전까지 사탕수수의 수확, 분쇄와 압착은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밀림 처럼 나있는 사탕수수를 대규모로 수확하고, 위험한 분쇄기에 사탕수수를 분쇄하고 몇십 시간 동안 거대한 구리 솥에 그것을 끓여 내 설탕을 얻어야 했다. 사람들은 세로 줄기의 사탕수수에 베이고, 분쇄기에 손이 빨려들어가고, 가열 과정에서 화상을 입기가 일쑤였다.

설탕의 세계 전파 과정

필리핀과 인도는 기원전 6000년 전에 사탕수수가 전파된 것으로 추정하며, 기원전 500년 전부터 설탕 결정을 만들어 소비했다고 추정한다. 그 이후 전세계적으로 사탕수수가 소비되게 된 것은 기원전 3~400년 정도이다. 기원전 326년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인더스 강 유역까지 진출하였다. 네아르코스 해군제독이자 장군의 기록에 따르면 인더스 강의 인도인들이 꿀이 나오는 갈대(사탕수수)를 씹어먹는다고 하였다. 서양인들과 그리스인들이 설탕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350년 굽타 왕조 시기에는 결정체 형태의 설탕 정제 방법을 고안한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원년 500년대, 6세기에는 아라비아반도, 이집트, 레반트 지역으로 사탕수수 재배법과 설탕 제조 방법이 전파된다. 하지만 전파에는 제약 조건이 많았다. 사탕수수는 기후와 토양 등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고 물이 많이 필요했다. 아라비아 지역은 사막, 고원 지대가 많아서 따뜻하긴 하지만 기후가 건조하고 일교차가 커서 사탕수수 재배 가능지역과 재배 불가능 지역이 뚜렷하게 갈렸다. 특히 가능한 지역은 매우 드물었다. 이처럼 인도까지 사탕수수가 전파된 것은 빨랐지만, 아라비아와 지중해까지 전파되는 속도는 재배 여건 때문에 매우 느렸다.

이슬람 세력과 설탕의 전파

지중해권과 서양에 설탕이 전파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슬람 세력이었다. 622년(헤즈라) 이슬람교가 처음 등장한 이후에 무함마드가 메카를 버리고 메디나로 거점을 옮겨서 움마(이슬람 종교 공동체)를 만들고 메디나에서 메카로 돌아온다. 622년부터 750년까지 이슬람교 세력이 계속된 팽창과 확장을 하였다. 무함마드 사후 정통 칼리파 시대에 이집트와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리아와 소아시아의 일부까지 이슬람이 영역을 확장을 한다. 그 이후 우마이아 시기에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까지,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까지 영역을 확장한다. 굉장히 전래 없는 속도로 100년만에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거대한 종교 집단이자 정치 집단으로 성장한다.661년까지 후계가 잘 이어지다 무함마드의 유일한 후계자 알리, (딸 파티마의 남편)이 남고, 우마이아 왕조와 알리 사이에 칼리파 계승을 놓고 분쟁이 벌어졌다. 알리를 따르는 무리가 시아파이고, 우마이아 왕조를 따르는 이들이 수니파(순나파)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구분은 이때 시작되었지만, 아직 종교 교리 상의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이 투쟁에서 이긴 것은 우마이아 왕조이다. 그런데 우마이아 왕조가 쇠퇴하면서 바그다드나 시리아 지역 등의 중심부에서 우마이아 왕조의 지배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생겨난다. 이들은 정통 후계자가 알리와 후세인이라고 주장한다.(그런데 알리는 죽고 후세인은 행방이 묘연했다)그래서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바로 압바스 왕조이다. 우마이아 왕조는 영토적 팽창은 했지만 지역별로 지배체계가 달라 분열기에 임해 있었다. 아불 압바스가 (정통 칼리파의 후손, 알리를 따르는 무리들) 우마이야 왕조를 몰아내고 나라를 건설한다. 압바스 왕조 시대에 적극적으로 사탕수수 재배와 정제 방법을 도입해서 지중해 지역까지 확산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국제 무역을 담당하는 캐러반 대상이 이 지역을 오가면서 다양한 상품을 혼종시켜놓았다. 이들이 인도 지역을 여행하면서 받아들인 것이 사탕수수이고, 이를 압바스 왕조 내에 심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750~1000년대에 이르는 시기동안 지중해권까지 사탕수수 재배 방법이 전파된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최초로 트리폴리 지역에 사탕수수를 재배한다. 750년대 남부 유럽까지 이슬람이 영역을 확장한다. 750년대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 820년대 후반에는 크레타 섬에서, 사탕수수가 재배되고, 900년대가 되면 시칠리아와 몰타, 터키와 그리스 사이 키프로스 에서 사탕수수가 재배된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남부에 사탕수수 재배 기법과 설탕 정제 방법이 퍼져나간다. 이슬람교의 확장은 이 전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9c,10c까지 이슬람에는 사탕수수 재배와 관련한 많은 기록이 있다. 세금의 품목 중 하나가 사탕수수였기 때문이다. 이슬람권에서 설탕을 많이 활용을 하다가,유럽 사람들이 그것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건 십자군 원정 때였다. 유럽 본토로 직접 들어가고 이들이 사탕수수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사탕수수라는 식물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1차 십자군 때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트리폴리의 꿀 갈대에 대한 십자군의 언급이 있었다. 서양에서는 본래 백후공남의 위계가 없었다. 십자군 원정 시 4개의 십자군 왕국이 건설되면서 안티오피아 공국이 사라지는 1280년까지 십자군 왕국이 유지되었는데, 이는 주로 중세적인 형태의 국가들이었다. 자체 군대도 없고 유럽에서 충원되는 군사력도 없어서 나라 유지가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성지와 왕국, 기독교도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여러 기사단들이 만들어지면서

(병원,(성요한,구호) 기사단,) 그러나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끊임없이 공격을 하는 비적 집단과 같은 이들이었다. 병원 기사단들은 병자들을 호송해주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역할을 잘 해내지는 못했다(무장 집단이었기 때문에) 이후에는 비적집단으로서 근대 국가 건설에 가장 방해가 되는 역할을 했다.

성전 기사단은 빨간 십자가를 두른 기사단이었다. 이슬람 세력에게는 악몽과 같은 이들이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영화에서 그려진 성전 기사단과 실제 성전 기사단의 모습은 차이가 있다. 유럽의 귀족인 위그 드 파앵이 추종자 12명을 모아놓고 성지 순례자 보호 활동을 시작했다. 이에 예루 살렘 왕 보두앵이 이들의 근거점을 마련해준다. 이들의 소식을 듣고 기사들이 모여들어 성전 기사단이라는 거대한 기사단이 생겨난다. 그 당시 왕을 따르는 기사들도 3~400명이 넘지 않는 시기였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성전 기사단은 내부에 성직자, 수도사, 전사, 생산자가 갈라져 있지 않고 기도, 싸움, 생산을 동시에 해냈다. 이들은 성직자, 수도사, 전사, 생산자 사이에 위계를 두지도 않았다. 이들은 나중에 금융업에 종사하게 된다. 이유는 명분이 성지순례자들을 보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재산을 처분해 들고온 성지순례자들이 여러 세력에 의해 재산과 생명을 위협받았다. 따라서 성지순례자들의 재산을 맡아주고 성전기사단이 발급하는 어음을 지급해서 성전 기사단 내부에서 어음으로 통용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와중에 성전기사단은 수수료를 수취했다. 근대로 이행하는 데에 가장 먼저 금융업의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이 성전 기사단이었다. 이 돈으로 성전 기사단은 엄청난 규모의 (2000명) 기사단을 운용했다. 또한 성전 기사단은 설탕을 생산해서 생업을 유지했다.

성전기사단은 유럽의 프랑스 지역으로 옮겨갔다가 위계의 문제를 일으켰다. 왕권이나 중앙집권적 세력에게는 위협이었다. 돈이 많아서 세력화가 쉬웠고, 수도자,전사, 생산자를 가르지 않아 교황 눈에 이상하게 보였다. 그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필립 2세와 교황이 힘을 합쳐 한날 한시에 진압을 하고, 성전 기사단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선진적 금융 기법은 그대로 유럽에 남게 된다.이러한 금융 기법은 이슬람 세력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슬람은 이미 보험, 금융 등의 산업을 행하고 있었다.

설탕에 눈을 뜬 베네치아

이 시기, 티레를 비롯한 키프로스, 크레타 지역의 설탕 생산지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베네치아가 빼앗아서 설탕의 대부분을 유럽에 공급하는 역할을 베네치아가 하게 된다.

위신재, 사치재로의 설탕

중세 유럽의 설탕은 위신재이자 사치재의 역할을 했다. 설탕을 입힌 조각들을 결혼식, 연회에서 사용했으며 이는 나중에 케이크의 기원이 된다.

부연 설명

  1. 2018년 4월 6일 CJ제일제당 본사 고객센터를 통해 전화상으로 문의, 답변 받음. 설탕 생산 제조 관련 부서 통한 답변.
  2. 2018년 4월 6일 삼양사 본사 고객센터를 통해 전화상으로 문의, 답변 받음. 설탕 생산 제조 관련 부서 통한 답변.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