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콜론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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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출생1872년 3월 31일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1952년 3월 9일 ()
소련 소련 모스크바
국적소련 소련
별명어릴적 이름은 슈라(shura), 본명은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도몬토비치(Aleksandra Mikhailovna Domontovich, Александра Михайловна Домонтович)
학력스위스 취리히 대학 경제학부 국민경제학 전공
경력정치인, 혁명가, 사회운동가, 외교관
정당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러시아공산당
종교러시아 정교회무신론
배우자블라디미르 루트비코비치 콜론타이(이혼), 마슬로프, 파벨 드이벤코(동거혼, 1922년 결별)
자녀아들 미하일 콜론타이
부모아버지 미하일 도몬토비치, 어머니 알렉산드라 미살리나 마라빈스키 도몬토비치
정보 수정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슈라' 콜론타이(Alexandra Mikhailovna 'Shura' Kollontai (러시아어 : Александра Михайловна Коллонтай) 1872년 3월 31일 ~ 1952년 3월 9일)는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 사회주의 혁명가, 소설가, 세계 최초의 여성 외교관, 맑시스트 페미니스트 활동가다. 그의 반대파들은 콜론타이를 혁명의 발퀴레라 부르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주요 혁명가 중 한 명으로,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의 정부인 인민위원회의(Совнарком)와 러시아 공산당에서 주요 관료이자 간부로 활동하였다. 1917년 10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사회복지 인민위원이었고, 1920년 10월부터 1922년까지 러시아 공산당 여성국(젠오트젤: Женотдел)의 국장직을 맡았다. 1922년 노르웨이 대사를 맡은 이후로 여러 국가의 대사직을 역임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여성의 문제들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자신이 꿈꾸던 사회 속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이론가이자 혁명가이다. 그는 여성의 문제를 개인화하지 않고 사회화하여 이론적으로 정립하였다. 그의 사상은 매우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늘날까지도 논의되고 있는 여성의 사회적 노동과 모성 문제, 아동양육과 가사노동의 문제 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품고 있다.[1]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고, 웅변가로도 알려져 있으며, 여성해방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 가운데 《붉은 사랑 VasilisaMalygina》(1923)은 한때 독서계를 풍미하였다. 후속작으로 《위대한 사랑》(1932)이 있다. 이외에 노동문제를 다룬 《경제진화에 있어서의 노동 Trgdzhenshchinyv Evolyutsii Khozyaistva》(1928)이 대표작으로 꼽힌다.[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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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날개달린 에로스

알렉산드라는 부르주아적 연애 도덕과 프롤레타리아적 연애 도덕을 구분하며 날개달린 에로스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일찍이 가족의 해체와 여성의 성의 권리를 주장했던 그였기에 사생활에서도 그는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려 노력하였다.

『새로운 도덕과 노동계급』(1918)에서 알렉산드라는 에로스적인 동지애를 통해서 성의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소유'하는 관계가 아닌 평등한 동지애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여성을 '소유하고자' 하는 일부일처제야말로 남성 중심 성 관념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부르주아적 도덕 안에서 불평등한 성적 관계를 기초로 이뤄지는 조건을 거래하는 결혼, 성매매 등을 '날개없는 에로스'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동지애적 사랑을 '날개달린 에로스'로 분류하였다. 콜론타이의 날개달린 에로스 개념은 배타적인 일부일처제를 배격하고 동지애 속에서 자유롭고 우연한 성적 결합이 가능하리라는 폴리아모리적 주장으로 나아간다.

알렉산드라는 그러한 날개달린 에로스는 육아의 완전한 사회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여성이 불평등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데에 많은 경우 육아와 재생산 노동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육아를 사회가 책임지게 되면 여성의 종속이 끊길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일반이 공동체로서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를 육아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알렉산드라는 당대의 관념에서는 무척 급진적으로 여성이 '순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함께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자유로운 성애의 해방을 요구하였다.

여성의 성욕에 대한 당대 콜론타이의 급진적 사고는 소문건 『혼인관계 영역의 공산주의 도덕에 관한 테제』 속 "성욕은 배고픔이나 목마름처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는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콜론타이의 급진적 주장은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물 한 잔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되고 비판당한다.

성욕은 배고픔이나 목마름처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이른바 ‘날개 달린 에로스’라고 스스로 명명한 바 있는 남녀의 성적 결합에 대한 대단히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은 레닌과 스탈린남성 공산주의자들에게 조롱당했으며 심지어는 정치적 공세거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정치적으로 위기상황이었던 1922년 콜론타이는 함께 살고 있던 17세 연하의 애인 디벤코의 어린 애인으로 인해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1]

여성의 해방과 경제적 자립

알렉산드라는 여성해방의 조건으로 경제적 자립을 주장하였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결혼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억압적 상황에서 여성들이 떨쳐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가족이 ‘보호’하는 소유물이 아닌,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소비에트 구성원으로서 여성이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과 동등한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알렉산드라는 여성의 노동권 보장안을 인민위원회에서 통과시켰을 뿐 아니라,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18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1차 '러시아 여성 노동자·농민대회'에서 알렉산드라는 여성이 경제력을 갖추고 가정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남성에게 기댈 필요도, 남성들에게 예속될 필요도 없는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에 마음을 여십시오. 가정은 여성을 종속시킬 뿐 아니라 비생산화함으로써 집단의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노동자 국가는 남성과 여성, 두 평등한 노동자가 자유롭게 결합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국가는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고 아이를 돌볼 것입니다. 유치원과 탁아소에서 집단 활동은 아이들로 하여금 ‘내 것’ ‘네 것’보다 ‘모두의 것’을 깨쳐 사유재산 관념을 갖지 않도록 해줄 것입니다.

콜론타이가 주장했던 ‘자립적인 여성’은 종국에는 전통적인 결혼에서 자유로운 여성상이었다. 남성의 부속물이나, 가정의 부속물이 아닌 소비에트 사회 노동력의 일부이자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민으로 취급되기 위해서는 일부일처제 결혼 관계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알렉산드라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근대적 관념이 여성 일반이 남성 일반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사회적 토대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남성의) 외도 및 실연이 경제적인 손실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 큰 절망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콜론타이에게 있어 질투는 동지애에 기반해서 극복해야 할 부르주아적 정서였다.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

알렉산드라는 기존의 부르주아 여성운동에도 비판적이었다.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요구하는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해 '위선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부르주아 여성들은 공동체의 복지보다 일부 여성만의 자아실현을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여성들은 날마다 기아의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으며, 그 문제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남성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이 콜론타이의 주장이었다.

그는 여성운동이 계급투쟁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 운동보다는 노동 운동에 함께 참여하여 이를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참다운 해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은 조건에서 노동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남성의 부속물, 노예로 전락할 것이라고 봤다.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1908)는 부르주아 여성운동을 비판하기 위해서도 쓰여졌다. 여성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여성이 종속된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뒺비어야 하고, 부르주아 여성운동가들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운동에 뛰어들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부르주아 여성들이 노동계급 남성을 짓밟는 데에 가책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노동계급 남성들에 대한 연대를 표하기도 한다.

꾸준하게 주장해 온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은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해서도 적용되었다. 부르주아 여성운동이 주장하는 '부르주아적 도덕'은 경제적 이익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사랑이 존재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고리를 끊지 않으면 균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여성들은 '남성의 성욕 충족, 아이의 재생산, 가사 노동'이라는 삼중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작

정치서

  • 『여성문제의 사회적 기초』(1909)
  • 『사회와 모성』(1913)
  • 『새로운 도덕과 노동계급』(1918)
  • 『공산주의와 가족』(1920)
  • 『성적 관계와 계급투쟁』(1927)
  • 『경제진화에 있어서의 노동』(1928)

소설

  • 『붉은 사랑』(1925)
  • 『삼대의 사랑』(1925)
  • 『위대한 사랑』(1927)
  • 『자매들』(1927)

논문

  •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에 대해서』

출처

  1. 1.0 1.1 인물세계사, 김정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Alexandra Mikhailovna Kollantai] -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핵심주자”. 《네이버 지식백과》. 2019년 12월 22일에 확인함. 
  2. 두산백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네이버 지식백과》. 2019년 12월 2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