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멀린 팽크허스트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9일 (목) 10:34
Emmeline Pankhurst(1913)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년 7월 15일 ~ 1928년 6월 14일)는 영국의 급진적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던 파시스트 시민운동가이다.

생애

맨체스터의 급진주의자 가정에서 태어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지지하는 조력자인 변호사 리처드 팽크허스트남편으로 맞아들였다. 세 딸 크리스타벨, 실비아, 아델라 팽크허스트와 함께 참정권 운동에 투신했다.(이 중 실비아와 아델라는 후에 어머니와 노선이 달라지게 된다.) 여성으로서 공적 능력을 증명해 보이라는 자유당의 요구에 따라 빈민구제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지자체에서 봉직하는 동안 남성 위주의 세상의 불공평함을 직면하고 여성의 정치적인 지위가 낮음을 확인했다. 1903년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설립하여 독자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지도했고, 서프러제트(suffragette)라는 명칭을 얻었다. 그는 농장 노동자들이 건초 더미를 불태우고 위협을 하여 투표권을 얻어낸 것에 영감을 받아 남성들이 만든 에 저항하는, 과격하며 비합법적인 무력저항을 시도하였고, 가두시위와 연설, 유리창 깨기, 방화, 단식투쟁 등을 서슴지 않았다. 서프러제트의 참정권 운동의 영향으로, 1918년 30세 이상의 영국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1928년 팽크허스트 사망 직후, 영국 정부는 투표권을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확대했다.

다음은 그녀가 한 유명한 연설의 일부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기 위해 왜 타인의 사유재산을 공격하는 방법을 택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 서프러제트가 유일하게 함부로 다루는 목숨은 자신의 목숨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건대, 우리의 정책은 결코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위태롭게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우리의 적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은 전쟁을 벌이는 남성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 일은 여성들이 취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대중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투쟁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정부가 사람의 삶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재산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산을 통해서 적을 공격할 것입니다. (p. 343)[1]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폭력운동으로 재판을 받을 때 다음과 같이 자기변론을 했다.[2]

“참정권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1천명이 넘는 여성이 감옥에 갔다. 우리는 옳건 그르건 현재의 투쟁 방식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을 바꿀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다”

비판: 친 제국주의 정치노선

자신의 딸 아델라 팽크허스트가 호주의 파시스트 조직을 결성한 것과 더불어 애멀린 팽크허스트는 제국주의적인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영국 제국의 입장을 옹호함으로써 여성의 권리가 국가 내에서 보장된다고 여겼다.

이는 서프러제트가 식민지 인도 여성들을 동원했으면서도 식민지 여성들의 권리는 무시했던 것과 비슷한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주의 운동이 현실의 정치 문제에서 어떻게 접목될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억압으로 만들어진 국가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게 된다.

저서

The Life of Emmeline Pankhurst: The Suffragette Struggle for Women's Citizenship [3]

에멀린 팽크허스트 저.〈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김진아, 권승혁 공역. 현실문화연구. 2016

관련 작품

  • 서프러제트(영화) : 영화 서프러제트는 여성 참정권 운동과 관련한 실화와 실존인물 에밀린 팽크허스트를 그려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