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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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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사건,''' 약칭 '''여순사건''' *발생: 1948년 ==전개== === 시작과 종결 ===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국군]] 14연대 내 [[남조선로동당]] 소속 하사관들이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한때 여수와 순천을 비롯한 [[전라남도]] 동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10월 말 정부 진압군이 여수와 순천을 다시 점령하고 사건 주도 세력이 산악 지대로 숨어들면서 여순사건은 종결되었다. === 민간인 학살 === 사건 전개 및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는데, 시민단체 조사에 따르면 진압군과 경찰에 의한 학살이 민간인 학살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ref name=":0">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선인, 2009</ref>{{Rp|41쪽}}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일면적으로 여순사건을 좌익 세력의 국가 전복 기도로만 규정하였고, 정부 측이 행했던 민간인 대상 범죄는 드러나지 않은 채 수면 아래로 잠기고 말았다.<ref name=":0" />{{Rp|387쪽}}{{Rp|580~581쪽}} 이어서 정부는 반공 이념을 중심으로 사회 전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ref name=":0" />{{Rp|508~552쪽}} ==의미== === 반공국가화의 시작 === 여순사건은 한국의 반공국가화 프로젝트가 급속하게 추진되는 시발점이 되었다.<ref name=":0" />{{Rp|43쪽}} 국가의 중심 가치가 곧 반공이 된 사회에서 정부의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를 부정하는 ‘[[빨갱이]]’로 몰리곤 했고, 공식적인 정치과정에서의 자유로운 토론은 불가능해졌다. ‘[[자유]]’라는 개념마저도 [[반공]]과 동의어인 것처럼 왜곡되었다. 이렇게 반공이란 단어는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간 강력한 권위를 행사해왔다. ==기타== 당시 사건이 시작된 곳은 14연대이다.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육군]] 예하부대의 고유명칭{{주|'00사단'같은 표기를 일컫는다.}}에는 숫자 4가 붙지 않는 것은 여순사건의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다. ==부연 설명== {{부연 설명}} ==출처== <references /> [[분류:성격/사건]] [[분류:발생/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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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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