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최근 편집: 2023년 1월 6일 (금)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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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아랍어: الإسلام al-islām)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로 전 세계 16억이 넘는 사람들의 종교이며, 세계 3대 보편 종교이다. 회교(回敎)라고도 한다. 아브라함 계통의 일신교이다. '알라'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며, 경전은 꾸란(코란)이다. 알라는 신을 의미하는 아랍어 보통명사이다. 아랍어권 국가에서는 기독교도들도 신을 알라로 호칭한다. 한국 이슬람계에서는 알라를 그대로 쓰지 않고 개신교와 같이 하나님으로 호칭한다.

정치

이슬람 회의기구(OIC)

이슬람 국가들의 협력을 위한 국제기구. 회원국은 57개국이며 여기 가입한 국가들을 보통 이슬람 국가라 한다. 국민 중 30% 이상이 무슬림이면 OIC에 가입 가능하다. 이슬람 국가는 상당부분 빈곤한 국가인데, 빈곤한 국가일수록 인구 증가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출처 필요] 그래서 2060년에는 기독교 인구와 같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1]

차이나는 클라스 54화

종교

이슬람교 신자를 칭하는 말로 무슬림이라는 단어가 있으며 발음에 따라 모슬렘으로 불리기도 한다.[2] 여성 신자를 칭하는 무슬리마 라는 단어도 따로 있으나 한국어에서는 성별 구분 없이 무슬림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파

개신교와 유사하게 이슬람은 다양한 종파로 나뉘어지나, 크게 수니파시아파로 나누어지며 대부분의 하위 종파는 시아파에 속한다.

  • 수니파

수니파는 순나(모범, 규율)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경전인 쿠란을 비롯, 무함마드와 측근의 언행을 모은 하디스를 중심으로 율법을 해석하는 고증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전체 이슬람 신자의 90% 가량이 수니파에 속한다.

  • 시아파

시아파는 '알리를 추종한다'는 의미인 '시아트 알리'라는 아랍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후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추종자를 중심으로 생겨난 종파로 혈통주의, 신비주의적 성향이 비교적 강하며 예언자에 대한 신성화를 보다 추구한다. 하디스와 같은 문헌적 근거보다 개인의 판단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이슬람 공동체의 법적 관행을 중시하는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는 정치 및 교학적 지도자인 이맘을 따른다. 이맘은 신과 교신을 하는 정치 지도자로 최고 통치자이자 성직자다. 시아파는 수니파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처형과 박해를 당했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신앙을 숨길 수 없는 수니와는 달리 시아는 신앙을 숨겨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박해를 피해 이슬람의 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수피파
  • 수니파와 시아파의 다툼

무함마드 사망 이후 무함마드 뒤를 잇는 이슬람 사회의 지도자를 뜻하는 칼리프가 생겼다. 1대 칼리프는 아부 바르크, 2대 칼리프는 아부 우마르, 3대 칼리프는 오스만, 4대 칼리프는 알리다. 종파는 알리의 후계자를 선정하며 나뉘게 되었다. 알리에게는 당시 두 아들이 있었는데, 시아파는 알리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계자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여 소수의 알리 추종자 무리를 이뤘다. 수니파에서는 공동체 원로들끼리 후계자를 뽑자는 주장을 하였으며, 이때부터 다수파 수니와 소수파 시아의 다툼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니파가 승리하였다.

이슬람 교리의 원천[1]

  • 코란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집대성한 이슬람교의 경전.

  • 순나

예언자들의 언행을 기록. 코란은 큰 방향을 제시하는 반면 순나는 코란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그 중 하디스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인 순나를 직속 제자들이 기록한 언행록이다. 하디스는 예언자의 언행을 들은 사람마다 다르게 기록하였기 때문에 하디스학이라는 학문도 생겼다. 어떤 하디스가 진짜인지 논쟁이 생기기도 한다.

  • 샤리아

이슬람법을 말한다. 아랍어로‘지켜야 할 것’이라는 뜻으로, 무슬림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이슬람 법체계이다. 이슬람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규정한 법률이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하다. 재밌는 일화로 TV가 처음 보급이 되었을 때 사람 얼굴이 나와 논란이 되었다. TV가 도입되자 “사람의 얼굴이 나오다니 불경하다”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파이잘 왕이 “TV에서 코란도 읽어주지 않느냐”고 이야기해 TV 도입이 가능했다. 이렇게 샤리아법은 보완, 절충을 통해 적용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은 '간음을 하면 돌로 쳐 죽임.', '도둑질을 하면 손을 절단함.'과 같은 샤리아를 국법으로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는 세속법과 같이 보통 국가들과 유사한 법을 집행하고 있다.

오행육신[1]

오행은 무슬림이 행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의무를 말한다.

  • 신앙의 고백: 샤하다(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IS 깃발 등에 샤하다와 같은 신앙 고백이 적혀 있다.
  • 하루 5번 예배
  • 성월 기간 중 단식하기: 라마단(이슬람력의 아홉 번째 달로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는 기간)
  • 자카트(구빈세) 내기: 수입의 2.5%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 1순위는 가까이 있는 가난한 사람이며, 2순위는 이슬람 지도자를 통해 구빈세를 낸다.
  • 메카 순례 다녀오기: 하지(무함마드의 출생지 메카를 순례하는 것), 평생에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몇 년씩 걸리는 힘든 여정이다.

육신은 무슬림이 믿어야 하는 여섯 가지 믿음을 말한다.

  • 유일신에 대한 믿음
  • 성전에 대한 믿음 - 구약, 신약, 코란
  • 예언자에 대한 믿음 - 아담, 노아, 아브라함, 예수, 모하메드 등
  • 천사에 대한 믿음 - 가브리엘, 이스라펠 등(알라의 말씀을 전함)
  • 최후의 심판에 대한 믿음
  • 정명에 대한 믿음 - 내세와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믿음(알라가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

위에서 나열된 바와 같이, 해야할 의무가 다양함에도 신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이슬람 신자들은 코란 2장 256절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 속으로부터 구별 되니라”고 설명한다.

종교의 단일화

원칙적으로 코란은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고 되어 있으나, 이슬람 국가 안에서는 이슬람교가 선택이 아닌 운명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랍세계는 정치단위와 종교단위가 일치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예를 들어 칼리프는 정치 행정의 세속적인 수장이면서 종교적 수장이고, 물라는 학자이면서 종교지도자이고 종교의 신성한 의무에 기여한 세속군주를 뜻한다.[3]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왕이 종교지도자, 국왕, 최고 족장 3개의 지위를 가진다.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의 비교

세 종교는 기본적으로 뿌리가 같다. 기독교는 성부, 성장, 성령 삼위일체를 주장하며, 이슬람교, 유대교는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서양과 아랍세계는 전통적으로 아브라함계 종교가 득세하는 문화권으로서, 즉, (국가의) 공적 종교와 (개인의) 사적 종교가 구분되지 않고 일치해야 했다. 동양에서는 공적 종교에 대한 위협적인 도전이 없는 한 사적 종교의 실천이 허용되었던 반면, 유럽과 아랍사회는 새로운 종교적 의미체계를 즉시 정치공동체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박해했다. 이후 서구기독교 국가들은 점차 세속과 종교를 분리하는 추세이지만, 이슬람의 경우 기존 신정일치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3]

할랄과 하람

할랄은 이슬람에서 허용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하람은 이슬람에서 금지되는 것이다. 할랄과 하람은 대체로 음식을 말할 때 사용한다. 대표적인 할랄 음식은 과일, 채소와 이슬람식(물을 먹이고 기도한 후 다비하 방식으로 도축)으로 도축한 소, 닭, 양 등이다. 대표적인 하람 음식은 돼지고기와 술이다. 이슬람 인구는 16억 명이나 되므로 대형 식품 기업에서는 이슬람 전용 식품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초코파이는 원래 돼지고기가 원료인 젤라틴이 들어가는데, 우뭇가사리 초코파이가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슬람 국가가 아닌 나라에서는 이슬람교도들이 음식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는데, 그 이유가 할랄 때문이다. 애초에 할랄 음식점이 많지 않은 데다가, 할랄 음식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속여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슬람 여성의 베일

"믿는 남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들의 시선을 낮추고 정숙하라할지니 그것이 그들을 위한 순결이라." - 코란 24장 30절

"믿는 여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녀들의 시선을 낮추고 순결을 지키며, 밖으로 드러내는 것 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리고 가슴을 가리는 머릿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녀의 남편의 아버지와 그녀의 아들과 남편의 아들과 그녀의 형제와 형제의 아들과 자매의 아들과 여성 무슬림과 하녀 외에는 드러내지 않도록 하라. 또한 여성은 발걸음소리를 내어 유혹함을 보여서는 아니 된다." - 코란 24장 31절

베일(veil)은 이슬람 신자인 여성이 착용하는 가리개 전반을 가리키는 단어이나 지역에 따라, 신자 개인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베일을 착용하며 착용하지 아니하는 경우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전쟁이 잦았던 민족 특성상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착용하기 시작했다는 유래가 유력하다.

여성 신자의 베일 착용은 여성 인권에 있어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며,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베일 착용, 적정 기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머리카락부터 가슴까지 가리는 히잡을 제외한 나머지 의복에 대해서는 쿠란과 하디스 모두에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슬람계 지식인들의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남성들에게도 여성들을 유혹할 수 있는 근육이나 다리 등의 노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국가들도 그 기준이 여성에게 더 엄격하다.

히잡

히잡

'가리다'라는 의미의 아랍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무슬림 여성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착용하는 베일이다. 쿠란 제 24장 31절의 구절에서 근거가 유래되었다. 스카프와 같은 천으로 머리카락과 목덜미, 가슴 정도까지 덮어 가리며 다양한 색과 무늬를 가지고 있다.

부르카

부르카

눈을 포함한 전신을 가리는 베일로 가장 보수적이다. 눈 부위는 얇은 천을 사용하여 앞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장갑을 껴서 손을 가리기도 한다. 색은 옅은 파란색이 보편적이다.

탈레반 집권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지역 일부 여성들이 주로 착용한다.

여성탄압의 도구라는 거센 비난을 받는 의복이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상당수 국가에서 여성 인권 및 범죄 악용 등을 이유로 법적으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려 시도하는 추세이다.

니카브

니카브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복장으로 색깔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예멘 등 중동의 이슬람권 국가에서 대부분 착용하며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란 등의 국가에서도 일부 보수적인 사회에서 착용한다. 부르카와 마찬가지로 얼굴을 가려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EHHKcnM508

차도르

차도르

검은 천으로 된 전신을 덮는 의복으로 얼굴은 가리지 않는다. 히잡과의 차이점은 히잡은 가슴 정도까지만 천이 내려오지만 차도르는 전신을 가린다. 그러나 속에는 일반적인 서구식 양장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이란 여성들이 주로 착용한다. 이란에서는 '아바야'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히잡(베일)에 관한 오해

Q. 히잡을 착용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나요?

A.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히잡 착용을 법제화하여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Q. 씻을 때도 히잡을 착용하나요?

A. 머리카락을 보여주면 안 되는 보수적인 이슬람국가에서 나온 샴푸 광고를 보고 그런 오해가 생긴 것입니다. 당연히 씻을 때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습니다.

이슬람 페미니즘

20세기 초반 이슬람 사회는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인한 대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근대의 민족 지도자들은 터키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같은 급진적인 세속주의, 탈아입구적 사상을 기반으로 이슬람의 관습과 중동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서구적 여성주의 담론을 비판 없이 수용하거나, 이란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같이 서구와 미국을 배격하고 가정에 예속된 순종적인 무슬림 여성의 모습을 부활시키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여성의 억압을 가져오게 되었다. 세속화된 터키 공화국의 경우 여성의 교육 받을 권리, 사회 활동을 할 권리가 크게 신장되고 인권과 모성이 보다 보호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 역시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다루어짐을 피할 수 없었다. 강한 세속주의 정책 하에서 종교적 신념을 드러낼 기회는 성별을 불문하고 박탈되었으나 여성은 베일 착용이 엄금됨으로써 보다 가시적으로 이 정책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또한 세속화 과정에서 탄생한 터키의 신여성들은 국가가 바라는 유능하고 개방적인 여성 인재로서의 삶과, 가부장적 사회가 바라는 순종적이고 성적으로 순진한 여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해야 했다. 이란에서는 다시 여성은 자유로이 외출하고 자기 표현, 주장을 할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4]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8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이슬람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역할, 지위를 신장하는 것에서 이슬람교를 완전히 배제하는 대신, 관련된 종교 텍스트를 재해석함으로써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이슬람 사회 내에서 널리 수용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목적을 추구한다.

이슬람 페미니즘에대한 정의는 학자들마다 다르나, 모든 이슬람 페미니스트는 기본적으로 "이슬람의 기본 교리는 성차별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지만, 문헌을 해석하는 가부장적 율법학자들의 오독과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이슬람의 여성의 지위가 격하되었다"고 해석한다. 또한 더 나아가 성차별을 조장하거나 정당화 하기 위해 이용된 여성혐오적인 쿠란 및 하디스 해석 전통을 해체하고자 한다.

이들은 무함마드의 부인 중 한 명이었던 아이샤가 여성에게 불리한 하디스를 자주 언급해온 아부 후라이라는 자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하여 정정한 것을 예로 들어 본래의 이슬람은 여성 억압과 혐오의 종교가 아닌 여성 권리의 신장을 추구하는 종교였음을 주장한다. 모로코 출신의 이슬람 페미니스트 파티마 메르니시는 비록 하디스가 많은 고증을 거쳤고 이슬람 사회에서 쿠란 다음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신뢰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메르니시는 "무함마드 알 부카리와 같은 가장 권위있는 자가 썼다 하더라도 그 신뢰도가 의심되는 이야기를 하디스 문헌에 수록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만큼 우리 스스로가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출처 필요]

서구 및 세속주의 진영에서는 이슬람과 페미니즘 자체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이므로 이슬람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그러나 이슬람 페미니즘은 이슬람 지역의 세속주의 페미니즘이 '공적인 영역'에서의 평등만을 추구하였고 '사적인 영역'에서는 결국 남성의 보조자로 머물러 있기를 긍정했었다는 점, 서구 페미니즘을 유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때로는 윤리적으로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어 개인적인 파국을 맞은 운동가들이 많았다는 점을 들며 세속주의 페미니즘의 이 같은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종교와 가정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보다 래디컬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5] 한편으로, 기독교 페미니즘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데 이슬람과 페미니즘만이 유난히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Q. 평등이나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로 알고 있는데, 여성 인권 운동이 필요했던 이유는?

A. 예언자 무함마드 시대에 여성은 보호해야 할 존재였다. 이는 무함마드 겪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다. 7세기 부족 간의 전쟁이 빈번했던 시대, 가장 위협을 받았던 사람들이 여성과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베일도 사실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무함마드는 고아가 돼 할아버지와 삼촌 손에 자랐는데, 이 때문에 여성과 고아에 대한 배려를 주장했다. 명예살인과 같은 문제는 보편 인권 시각에서 보면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1]

이슬람 혐오

일반적으로 '이슬람'이라 하며 테러, 전쟁, 난민, 빈곤, 저개발, 독재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것을 떠올린다. 북유럽에서는 이슬람 존재 자체를 혼란의 근원으로 보기도 한다.[1]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서구인들의 동양관을 비판한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문학 평론가다. 대표 저서로 <오리엔탈리즘>이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을 뜻한다. 미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충돌론을 발표하면서 서구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간 충돌을 예언했다. 이후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이슬람 공포증은 확산되었다.

18~19세기 유럽은 이슬람권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았는데,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양의 이슬람 세계를 왜곡하고 비하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유명 프로그램 WWYD에서는 무슬림 혐오를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다. 이 영상은 번역되어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l_BOx0cXvo&t=87s

Q. 보편 종교이자 전세계 16억 이슬람, 협력을 위해도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나?[6]

A. 경제 협력을 위해 이슬람을 알아야 한다는 도구적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 시민으로서 이슬람을 이해하는 목적론적인 시각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시리아는 전쟁 중인데도 K팝 파티가 열린다. 차이나는 클라스 54화 자히드 후세인은 파키스탄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한국인은 이슬람을 잘 모른다. 문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관심의 대칭을 유지해야 관계가 오래 간다.

이슬람 분쟁과 테러리즘

역사[7]

테러의 근본적 원인을 알려면 1400년 전, 이슬람을 돌아봐야 한다. 이슬람은 4대 칼리프 시대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슬람 개교 100년 만에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 서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으니 말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력을 넓혔고, 중세 유럽이 암흑기일 때 무슬림 학자들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연구하고 전달했다. 그만큼 이슬람 세계는 학문도 발달했었다.

오늘날의 이슬람은 과거와 사뭇 다른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이슬람 국가의 민주주의는 없다.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빈부 격차가 심각하다. 2015 세계은행 빈곤국 대부분이 이슬람 국가(57개국)다. 이스라엘과 싸움만 하면 깨진다. 이슬람권 국가들은 군사적 패배주의에 빠졌다. 이슬람 문명은 서구에 의해 와해되었고, 과거에 비해 엄청난 자괴감과 인지부조화가 왔다. 이슬람이 어려워지면서 코란과 순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는 집단이 나타났다. 첫 번째 집단 유형이 개혁적 모더니스트이고, 사우디, 예맨, 이란 포함해서 이슬람 전통인 코란과 순나를 지키자는 전통계승파가 두 번째 유형이다. 전통계승파와 같은 원리주의자 중 일부는 과격파다. 원리주의자는 하나님과 예언자의 언행만 따르길 원한다. 이 중 과격파는 세속 정권에 반대하고 순수 이슬람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이슬람 전체 인구 16억 중 10%는 1억 6천만이다. 과격파의 10%(1천 6백만)이 샤히드(순교자)다. 샤히드는 이슬람교를 위해 자살폭탄 테러 등으로 싸우다 죽은 이들을 칭한다. IS,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단체들도 샤히드가 되고 싶은 사람이 참여한다. 이들은 더 낮게 잡아 1%로 잡아도 1백 6십만 명이므로 어마어마한 수다.[8] 이슬람 테러리즘은 이렇게 과거 중세의 영광을 찾기 위한 이슬람 부흥주의 중 하나로 나타났다.

  • IS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이슬람권을 비롯한 전 세계 젊은 청년들이 IS에 가담하여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IS에서 홍보 영상을 만들 때 할리우드 영화를 방불케하고, SNS 계정까지 만들어 젊은이들을 현혹하였다. 우리나라도 김 군이 IS에 가입하는 일이 있었다. IS는 교육기회와 일자리가 부족한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기회와 꿈을 잃은 청년들을 노렸다. 고임금과 기회를 준다며 포섭했다. 이 때문에 이슬람 문화권 밖에 사는 무슬림 청년들이 IS에 가입하기도 했다. IS는 서양에서 차별받으며 살지 말고 들어와 같이 싸우자고 했다. 서구 사회 내 차별과 암담한 미래에 현혹되기 쉬운 상황에 놓인 청년들의 취약한 부분을 공략한 것이다. IS는 현혹된 청년들을 자살폭탄테러와 총알받이로 이용했다.

IS가 생겨난 사회구조적 이유가 있다. 2003년 테러 진압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25년간 독재를 했던 수니파 사담 후세인이 몰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침공 후 시아파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시아파와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들이 수니를 후세인 지지 여부와 관계 없이 무차별 탄압했다. 수니파 내에서도 사담 후세인 반대 세력이 많았지만,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탄압을 피해 도망간 세력이 IS가 되었다. 이라크가 실패한 국가가 아니고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국가였다면 IS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동 국가에 대한 외세의 침략과 내부 갈등으로 태동한 IS는 내전을 발판삼아 막강한 군사세력으로 성장했다. 국제 사회는 최근 IS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외쳤지만,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IS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부활할 수 있다.

Q. 신의 뜻이라면서 테라를 자행하는 테러리스트. 전쟁과 평화에 대한 내용이 코란에 명시됐는지?

A. 코란 5장 32절 “오 이즈라엘의 자손들이여, 무고한 자 한 사람을 해하는 것은 전 인류를 해하는 것과 같다” 테러를 비판하는 근거가 되는 코란의 구절이다. 같은 코란을 보면서도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Q. 과격파 테러 단체는 원리주의자가 아닌가. 코란에 따르면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말라 했는데, 왜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변질되었나?

A. 코란을 자기 편의대로 과도하게 해석하며 테러를 정당화한다. 대부분의 이슬람 학자들은 테러 행위는 반이슬람적인 것이라며 비판한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코란의 평화관을 중시한다.

  • 이슬람 분쟁과 유럽의 책임

1. 시리아 내전

유럽은 난민 문제를 현상적으로 다루는 데만 관심이 있고, 그 근본적 원인인 중동 분쟁을 해결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 중동 문제 해결보다는 난민 유입 차단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난민이 못 오게 막을까, 만약에 온다면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다. 애초에 난민이 생기지 않도록 그 국가의 정치 구조를 어떻게 바꿀까에 대한 논의가 너무 적다.

난민 문제는 대부분은 결국 식민지의 유산이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는 아랍국가를 식민 지배했다. 시리아는 원래 오스만 제국 산하에 있었다. 산레모 회의(1920년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중동지역을 갈라 지배하기 위해 열린 국제회의)에서 북아프리카 지역, 시리아, 레바논은 프랑스로,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 지역은 영국이 갖기로 했다. 1차 대전 후 중동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철수하며 시리아가 독립을 한다. 독립 전에는 시리아라는 국가가 없었다. 원래 시리아는 알레포, 라카, 하마, 홈스, 다마스쿠스 등 도시 중심으로 흩어져 살았다. 따로 살면 평화로웠을 사람들인데, 서구 열강이 떠나며 도시들을 억지로 통합해 국가를 만든 것이다. 12%밖에 안 되는 알라위파가 세속 정당 바트당과 연합해 정권을 잡으며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정치구조가 만들어졌다. 2010년 말, 아랍의 봄(튀지니에서 시작돼 중동국가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의 통칭) 시기에 알 아사드 대통령을 비롯 알라위파의 독재에 시리아 국민이 투쟁하기 시작했다. 알 아사드 대통령과 알라위파 정부는 반대 세력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했다.

온건 수니, 강경 수니, 세속주의자, 쿠르드 등이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알 아사드와 알라위는 러시아,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강경 수니파는 카타르의 지원, 온건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 세속주의 세력은 미국과 프랑스가 지원, 쿠르드 족은 미국이 지원하고 있으며, 외세의 이해관계가 얽혀 탄압받는 국민들도 서로 싸우게 되었다. 결국 시리아에서는 알 아사드 정부의 무차별 폭격에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다. 정부도 민간인을 신경쓰지 않고 있고, 반군의 테러 단체들은 민간인을 방패로 이용하고 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무고한 민간인인 것이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중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일부에서는 식민지 유산인 난민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Q.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설 사실인가?

A. 원래 시리아는 2013년 화학무기금지협약에 가입하고 화학무기 폐기에 합의했지만, 정부측 주장과 달리 화학무기 사용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제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공습 결정을 내린 것도 화학무기 사용 증거가 보였기 때문이다. 시리아 정부가 화학 무기를 사용했다면 그것은 용서의 여지가 없다.

2. 레바논 내전

1975~1990년 종파 갈등으로 15년간 이어진 내전. 종파 내, 종파 간 갈등이 얽히고 설켰다. 레바논도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 하에 국경 개념이 없었다. 레바논 서쪽은 마론파인 기독교도들, 남쪽은 드루즈라는 시아파들이, 북쪽에는 수니파 등 각기 다른 지역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1920년 산레모 회의로 프랑스가 레바논을 지배하면서 통합되었다. 1895년 레바논 종교별 인구 구성은 마론파 23만, 수니파 만6천, 시아파 만3천 정도였다. 1943년 레바논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프랑스가 떠나자 국민 협약이 만들어졌다. 1943년 정계 및 종교지도자 간, 각 종파 간 권력 배분을 위한 국민 협약이다. 이때 각 종파별 인구 비율로 권력을 배분했다. 마론파는 대통령, 수니파는 국무총리, 시아파는 국회의장을 맡았고, 각 종파 간 세력의 균형을 이뤘다. 시간이 흐르고 각 종파의 인구 비율이 바뀌었다. 시아파의 인구가 가장 많아졌고, 마론파의 인구가 가장 적어졌다. 바뀐 인구 분포에 맞춰 권력 재분배가 필요했지만, 기득권인 마론파에서 거부하는 상황에서 내전이 발생했다.

기독교를 믿는 마론파는 레바논 민족주의를 주창하고, 수니파와 시아파는 아랍 민족주의를 주창한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기독교와 이슬람 갈등이 생겼다. 수니는 "팔레스타인인은 아랍의 형제다. 우리가 이스라엘레 쫓기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마론파는 "팔레스타인인이 왜 우리 땅에 들어오냐."고 주장한다. 결국 심화된 종파 간의 갈등으로 레바논 내전이 격화, 이 과정에서 마론파는 마론파끼리, 수니파는 수니파끼리, 시아파는 시아파대로 같은 종파끼리 또 분열했다.

3.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전쟁

이 전쟁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전쟁이 아니다. 서기 113~133년 유대민족은 로마에 패배하며 전 세계로 흩어져 유랑한다. 국가 없이 박해받으며 살아온 2천여 년의 세월, 유대인은 전 세계를 떠돌며 어렵게 사는 이유는 자신들의 땅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시오니즘'을 주창한다. 유대이즘은 종교적 목적이지만, 시오니즘은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많은 제3세계 국가와 아랍 국가들이 제국주의와 같은 맥락(시오니즘은 나치즘과 다르지 않다.)에서 시오니즘을 반대했다. 여기에 영국의 농간이 들어간다. 1차대전 당시 1916년 영국은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였다. 영국 고등 판무관 맥마흔이 아랍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아랍 지도자에게 전쟁이 끝나면 아랍 땅을 돌려주겠다는 서한을 보낸다. 1917년 외무장관 밸푸어가 유대인 부호에게 전쟁에 협조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돕겠다는 서한을 보낸다. 영국이 전쟁할 때 로스차일드라는 유대인 부호가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압력을 가하니까 영국 정부가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것이다. 밸푸어는 제1차세계대전 당시, 밸푸어 선언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했고, 1948년 이스라엘 국가 건립이 선포되었다. 아랍 국가들은 즉각 반발하였다. 이때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다. 이어서 1956년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vs 이집트의 수에즈 전쟁(2차 중동전쟁), 1967년 이스라엘 vs 아랍국 연합의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1973년 이스라엘 vs 이집트, 시리아의 라마단 전쟁(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다.

원리주의 기독교인은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 국가가 완성되는 것이 미션의 완결이라고 보고 있다. 유대인이 미국 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다. 트럼프는“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전 세계 무슬림들이 이 발언에 반발했다. 예루살렘은 세계 종교의 원천지이다. 이것을 이스라엘 밑에 놓는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통곡의 벽(유대인들이 와서 통곡을 하는 곳), 알아크사 모스크(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 성묘교회(개신교) 등 여러 종교의 중요한 상징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Q. 왜 전쟁만 하면 이스라엘이 이기나?

A. 첫 번째는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 두 번째는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운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지면 뒤가 없다. 땅이 넓은 이집트, 시리아 등과 같은 아랍 국가는 이스라엘과 상대적으로 절박하지 않다. 반면 이스라엘은 국가 수호를 목적으로 싸운다. 아랍 땅을 다 점령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Q. 이슬람 분쟁의 실질적 원인은?

A. 빈곤과 저개발, 불평등한 사회 구조, 타자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분쟁의 씨앗이다. 내부 혹은 외부와의 분쟁이 싹트면 경제 몰락, 실업난이 생기고 결국 청년들은 민병대나 테러 단체로 들어간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사회 내에서 끊어야 한다. 정치적 타협이 돼야 사회 분쟁이 해결된다. 경제 발전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 이슬람권 국가의 큰 문제는 경제와 교육이다. 경제가 좋아지면 먹고 살기 바쁜데 테러가 웬 말인가.

국제적으로는 이슬람의 하나의 종교로 인정해야 한다. 적대시, 악마화, 비하하고 궁지에 몰리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지하드[9]

무슬림이 신앙이나 원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뜻하며, 작은 지하드와 큰 지하드로 나뉜다.

大지하드 : 스스로의 영혼을 정화하려는 내면적 투쟁

小지하드 : 큰 지하드와 달리 정책적인 것. 이슬람 공동체를 공격하는 외부에 항거하는 것 등. 테러리스트들은 코란을 잘못 해석하여 작은 지하드에만 의존한다.

지하드는 방법이 존재한다. 물리적 지하드는 최후의 수단이다.

만평전쟁[10]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건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을 신랄하게 풍자해왔다.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그려 테러 단체의 위협을 받아왔는데, 결국 12명이 숨지는 테러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만평 전쟁의 서막을 연 건 덴마크 언론이다. 덴마크 <율란츠 포스텐>에서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게재했다. 내용은 자살폭탄 테러범이 천국을 오자 무함마드가 “더 이상 천국에 처녀는 없다"며 막는 그림. 이슬람 만평가는 덴마크의 풍자에 대항했다. 모로코의 만평가는 평화를 그리는 이슬람의 반대 쪽에서 지우개로 지우고 있는 덴마크를 그렸다. 그동안 이슬람은 이렇게 만평에는 똑같이 만평으로 대응했다.

또 다른 이집트의 만평 “알 와탄”은 테러리스트만 바라보는 서구 시각을 풍자했다. 소수의 과격파만 보고 이슬람 전체를 규정하고 다수의 평범한 무슬림은 무시하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파리 테러 후 한 이슬람권 예술가는 손가락을 다친 프랑스인과 전신을 다친 시리아인을 그렸다. 당연히 파리 테러도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일이나, 그러나 더 많은 무슬림들도 테러를 당해 죽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의 피해 뒤에 가려진 이슬람권의 비극을 그린 것이다. 차이나는 클라스 54화에 출연한 자히드 후세인은 9.11테러 이후 파키스탄에 테러 단체들이 유입되어 테러 진압 작전 중에 고등학교 친구 셋을 잃었다고 말했다. 무슬림은 테러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차별받고 있다. 테러로 삶이 무너졌지만 무슬림이라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의 비극적 삶은 '테러의 종교'란 오명 뒤에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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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1.0 1.1 1.2 1.3 1.4 차이나는 클라스 54화
  2. 원래 모슬렘(Moslem)은 영어권에서 부르던 발음 방식인데, 지금은 이러한 발음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주로 반이슬람주의자, 특히 개신교측의 복음주의 색채가 강한 이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기 때문에 멸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
  3. 3.0 3.1 Tai-sik Jung; Lee,Chul-Woo (2008년 5월). “탈레반을 통해 본 예언자적 이슬람개혁운동에 대한 일고찰”. 《담론201》 11 (1): 69–97. doi:10.17789/DISCOU.2008.11.1.003. 
  4.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오은경 저
  5. 김정명, "이슬람 페미니즘과 여성 시각에서 새로운 종교 텍스트 읽기", 한국중동학회논총 제 36권 1회, 2015
  6. 차이나는 클라스 54화
  7. 차이나는 클라스 54화
  8. 차이나는 클라스 54화
  9. 차이나는 클라스 54화
  10. 차이나는 클라스 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