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최근 편집: 2023년 6월 16일 (금) 13:13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은 자연현상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과학이다. 자연과학만을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학은 자연과학의 연구에 필요하여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순수한 이론에 따라 논리적으로 구축되는 학문이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는다.

1. 소개

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기반으로 자연에 관한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론과 그러한 방법론으로써 축적된 지식을 통칭한다. 근대화시대를 거쳐 시공간의 제약이 갈수록 줄어들며 어느 시공간에서든 통용되는 과학적 지식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2. 과학철학

2-1. 언명과 과학이론의 관계

기본적으로 어떠한 관찰이나 실험에서 도출되는 "관찰 언명"은 "단칭 언명"으로 특정한 시공간에서 발생한 특정한 상황의 언급인데, 소위 "과학적 지식"을 구성하는 과학법칙 혹은 과학이론은 "보편 언명"으로서 (특정한 종류의) 모든 시공간에 걸쳐 있는 모든 상황의 언급이다. 과학철학의 한 중요한 갈래는 이 단칭 언명과 보편 언명을 어떻게 이을 수 있는가에 관해 고찰한다.

이 고찰을 처음 전개한 귀납주의(inductivism)는 다음 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 한정된 단칭적 관찰 언명으로부터 보다 보편적인 법칙을 일반화하는 것이 정당하다 보았다:

  • 일반화의 기초가 되는 관찰 언명은 수적으로 많아야 한다.
  • 관찰은 다양한 조건 아래서도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 받아들여진 어떠한 관찰도 도출된 보편 법칙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

이걸 풀어서 설명하자면, 많은 수의 X가 다양한 조건의 변화 아래서 관찰 되었는데 관찰된 모든 X가 Y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X가 Y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귀납주의에는 크게 3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모순되는 관찰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다고 귀납을 정당화하기 위해 귀납을 사용하자니 순환적 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다양"하거나 "충분"하거나 "유의미"한 관찰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개연성이나 확률론으로 귀납 원리를 옹호할 수도 없는 것이, 자연에는 무한한 관찰이 가능하기에 결국 확률로는 모든 게 n 나누기 무한으로 0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칼 포퍼(Karl Popper)의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다. 반증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개념은 "Y 성질이 없는 X가 관찰될 경우 '모든 X는 Y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이다"라 볼 수 있다. 이 말인 즉슨, 귀납주의가 "모든 X는 Y다"를 복수의 단칭 언명으로 정당화하려 한다면, 반증주의는 관찰 언명으로써 보편 언명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반박할 수 없다는 데에 착안해 반대로 'Y가 아닌 X'를 찾아 "모든 X는 Y다"를 반증하려고 한다. 따라서 반증주의에서는 어떤 이론도 절대적인 참을 부여받을 수 없지만, 반증가능성이 높은지 혹은 반증에 의한 검증을 더 견뎌냈는지에 따라 더 나은 이론이라 인정 받을 수 있다.


후술할 반증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증주의가 과학철학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법칙이나 이론이 가치가 있는, 그리고 경험적인 정보 내용을 가지려면 논리적으로 가능한 관찰 언명에 의해 배제(반증)될 수 있는 성질을 지녀야 한다는 논리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론은 찰스 다윈 이래 수많은 검증 시도를 견뎌냈기에 현대적 종합(modern synthesis) 이후 생물학의 가장 기초적인 과학이론으로 인정 받으며 반대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설 등은 반증 가능한 가설을 애초에 제시하지 않기에 과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비슷한 의미로 포퍼가 "맑스의 역사 이론에 대한 해석,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 아들러의 심리학은 반증될 수 없기에 단지 과학적 이론처럼 위장한 것이다."라고 일갈한 적도 있다.


다만 반증주의에도 명확한 한계점이 존재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반증이 발견되었을 때 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관찰 언명이 폐기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더 거대한 이론이 폐기되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 모든 관찰자가 동일한 관찰 언명을 도출할 수가 없다. 이를 가류적이라 표현한다.
  • 실제로 과학사에서 반증에도 불구하고 후대까지 살아남아 빛을 본 과학이론이 존재한다. 지동설이 대표적인 예다.
  • 첫 번째 항목과 유사한데, 현대 과학에 들어와 검증이 복잡해지며 반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곤란하다.

2-2. 과학이론의 발생과 성장

귀납주의와 반증주의는 단칭 언명을 보편 언명과 관련짓는 방법론을 중요시했지, 과학자가 과학이론을 제시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후자는 아무래도 과학자에 초점을 두다 보니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철학보다는 사회학적인 요소가 강하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은 이에 관해 그 유명한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를 통해 패러다임(paradigme)론을 강조한다. 쿤에 의하면 하나의 성숙한 과학은 상응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되는데, 이 패러다임은 연구의 표준적인 방법론, 연구의 정당성에 관한 규범 등 어떻게 과학을 실행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당연히 이 패러다임의 수준에 따라 과학의 수준도 결정되는데, 통일된 중심 패러다임이 없는 학문은 전과학(prescience)이며 이 전과학의 과학자들이 문제풀이(puzzle-solving)에 대한 통일된 규격, 즉 패러다임을 상정하면 비로소 전과학이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 된다. 하지만 이 패러다임 내에서 해석할 수 없는 오류(anomaly)가 쌓이면 이 패러다임은 위기를 겪게 되고, 결국 혁명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한 전과학-정상과학이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논증을 통해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쟁적인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은 상이한 기준과 형이상학적 원리에 동의했으며 이를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이라 칭한다. 즉, 과학이론에 대한 판단은 개인이나 집단에 달린 문제로,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며 상대주의적이라는 것이다.


포퍼의 반증주의와 쿤의 패러다임론을 연결하려고자 한 임레 라카토스(Imre Lakatos)는 연구 프로그램(research programme)론을 제시한다. 라카토스는 한 연구 프로그램 내에서 행해지는 연구에는 그 연구 프로그램의 핵(hard core)이 명시하는 규약주의적인 요소가 있으며, 과학자는 이 핵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핵은 보조 가설(auxiliary hypotheses)과 초기 조건 등의 보호대(protective belt)에 의해 반증 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연구 프로그램과 패러다임은 유사하지만, 연구 프로그램은 새로운 현상의 발견을 유도하는 데에 성공하는가 아니면 계속 실패하는가에 따라 연구 프로그램이 진보적(progressive), 퇴행적(degenerating), 혹은 심지어 유사과학(pseudoscience)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연구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상대주의적인 패러다임과 명백히 다르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과학을 실천해왔다'와 별개로 '과학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과학을 실천해야하는가'에 관한 논의도 존재한다. 폴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의 아나키즘적 인식론에 따르면, "모든 방법론은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지지될 수 있는 유일한 규칙은 어떻게 해도 좋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과학자들로 하여금 임의의 규약에 따라 방법론을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주된 예로 들며 보다 자유로운 상황에서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다만 현대과학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며, 존 크리거(John Krige) 등은 "어떻게 해도 좋다는 것은 실제로 모든 것이 정체된다는 것을 뜻한다"며 그를 비판했다.

2-3. 참고도서

<현대의 과학철학> - A. F. Chalmers

3. 과학계의 젠더권력

편의를 위해 이 단락에서는 자연과학과 공학을 "과학"으로 통칭한다.


보통 남초 학문이라고 하면 과학을 떠올린다. 그리고 실제로도, 학부생이 아닌 교원 기준으로, 전세계적인 남초 학문이다. 과학계에 남자가 더 많이 종사하는 대표적인 이유로 유전적인 차이가 꼽히며, 심지어 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 총장이 명시한 이유기도 하다(가디언 기사 링크). 물론 서머스는 재임 시절 흑백차별, 성차별, 좌우이념 갈등 등 하버드를 분열시켰다는 평을 듣는 극단적인 인사지만, 분명 "여성은 태생적으로 과학을 못한다"는 통념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통념을 뒷받침하는, 공신력 있는 연구결과는 매우 적다. 전무하다 봐도 무방하다. 우선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등의 심리학자들이 양성간의 지적 능력 차이를 불신하는 것을 둘째 치더라도, 양성간 지적 능력 차이를 증명하는 절대 다수의 연구는 "평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졸업필수과목으로 과학을 듣는 고등학생이나 학부생이 아닌, 박사 혹은 그 이상 수준의 계 종사자의 능력과는 대단히 무관한 연구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과학계에서의 박사 학위 취득자 수는 양성이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학부 수준에서도 각 대학마다 심심찮게 성비 역전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홍콩대학교는 2012년 말 기준으로 자연대는 여초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계적으로 유의미(statistically significant)한 것과 실효적으로 유의미(clinically significant)한 것은 별개의 개념이다. 통계 수치는 계산 특성상 표본 집단이 크면 클수록 통계적으로 유의미해지지만 그렇다고 그게 실생활에서 뭔가 체감할 만할 차이를 이끌어낸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10년 3월 24일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실린, <Physical Activity and Weight Gain Prevention>이라는 논문은 일주일에 21시간 이상 운동하는 여성이 7.5시간 미만 운동하는 여성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체중이 적었다고 보고했다. 이를 두고 매스미디어에서는 여성이 매일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보도했지만, 실제로 논문이 보고한 수치는 3년 동안 0.15kg의 차이였다. 단순히 표본집단이 34,000명이었기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인 것일 뿐이었다. 당연히 0.15kg의 감량은 하루내지 이틀 굶어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효적으로는 무의미한 결과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아래의 TED 비디오는 양성간 능력차에 관해 이와 비슷한 논지를 견지한다.


So it's not really a case of Mars and Venus. It's more a case of, if anything, Mars and Snickers: basically the same, but one's maybe slightly nuttier than the other. I won't say which.


그렇기에 과학계가 남초인 이유에는 젠더권력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하며, 이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남성 전임자 혹은 남성 인사과가 앞서 말한 통념에 따라서든 동질감에서든 남성 과학자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에게 치우쳐진 가사/가정 노동이다. 전자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는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이 DNA 나선 구조와 X-선 회절에 관한 그녀의 연구 데이타를 도둑맞은 사건이 있다. 이 데이타 덕에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는 1962년에 노벨상까지 받았지만 1958년에 일찍이 죽어버린 프랭클린은 죽고도 한참 후에야 그녀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물론 그녀가 여성과학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초는 이 뿐만이 아니다. 후자에 대해 설명하자면, 현대 과학에서는 아무도 도달하지 않은 미시의 세계를 연구하지 않는 이상 엄청난 양의 데이타를 뽑아내 컴퓨팅 파워를 갈아넣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를 다시 분석하는 게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달리 말해 단순히 천재성 뿐만 아닌, 컴퓨터나 실험기구 앞에 진득하게 붙어있는 게 현대 과학자의 미덕인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전통적으로 남성보다 가정에 충실할 것을 요구받기에 과학자로서의 커리어에 흠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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