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9일 (목) 01:33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접근이다. 지금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라고 불리는 학파는 대체로 논문집 The Adapted Mind[1]의 출판을 계기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문서의 설명은 이 학파의 견해를 따른다. 이 견해에 의하면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현대종합설인지심리학계산주의 마음이론을 기반으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설명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진화심리학의 주요 논의들을 다루는 입문서로는 데이비드 버스Evolutionary Psychology (Book)를 추천한다. 번역서 제목은 원래 마음의 기원이었는데 최근 개정판에서는 진화심리학(책)[2]으로 바뀌었다. 심리학진화론을 접목하고자 했던 다른 여러 시도에 대한 포괄적 역사는 Evolutionary Thought in Psychology - A Brief History[3]를 참고하면 좋다.

역사

진화심리학에 영향을 준 진화생물학의 주요 이론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2]

  •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의한 진화: 다윈과 월레스는 1) 유기체의 변이, 2) 변이의 유전성, 3) 차별적 번식 성공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진화라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였다. (1850년대)
  • 성선택(Sexual selection): 동성간의 경쟁(intrasexual competition), 이성간의 선택(intersexual selection)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공작새의 꼬리와 같이 특이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1850년대)
  • 현대종합설(Modern synthesis): 멘델의 입자유전과 다윈의 점진적 변이 사이의 외견상 불일치가 존재하였으나, 피셔 등의 집단유전학 연구에 의해 여러 유전자좌에서의 멘델식 입자 유전이 결과적으로 표현형 상의 점진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1930년대)
  • 동물행동학(Ethology): 콘라드 로렌츠, 니코 틴버겐 등은 동물의 행동에 대한 진화적 설명을 시도한다. 로렌츠의 각인(imprinting) 연구, 틴버겐의 "4 Whys" 등이 유명하다. 이기적 유전자[4]리차드 도킨스, 털없는 원숭이데스먼드 모리스 등은 티버겐의 제자다. (1950년대)
  • 포괄적합도(Inclusive fitness): 윌리엄 헤밀턴은 기존의 적합도(Classical fitness) 개념을 확장하여 포괄적합도 개념을 확립한다. 이 개념은 유전자 선택론의 기반이며 가족, 이타주의, 도움, 집단 형성, 공격성 등을 설명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 (1960년대)
  • 진화적 적응의 엄밀한 정의, 집단선택론의 몰락: 조지 윌리엄스는 진화적 적응을 "성공적인 번식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특정 문제에 대한 진화된 해결책"으로, 적응 가설을 "단지 우연에 의해서는 발생할 수 없는, 믿을 만하고,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설계 모음에 관한 확률적 진술"로 각각 엄밀하게 정의하고, 이에 기반하여 기존의 모호한 논의들(특히 집단선택론)을 효과적으로 공격/개선하였다. (1960년대)
  • 호혜적 이타주의, 양육투자 이론, 부모-자식 갈등 이론의 파생: 로버트 트리버스조지 윌리엄스의 이론으로부터 호혜적 이타주의, 양육투자 이론, 부모-자식 갈등 이론 등을 유도하였다. (1970년대)

진화심리학은 또한 인지심리학의 계산주의 마음이론과 모듈 가설을 수용하고 있다.

  • 계산주의 마음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 CTM): 인지(정서, 사고 등을 모두 아우르는 넓은 의미에서의 인지)란 정보처리(information processing) 혹은 계산(computation)이고, 는 정보처리를 위한 기관이라고 보는 견해
  • 모듈 가설(Modularity of mind): 마음의 상당 부분, 혹은 적어도 일부는 모듈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위에서 살펴본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의 이론들을 접목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정보처리 기관인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다.
  • 마음은 모듈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수가 매우 많을 것이다. (대량모듈가설, Massive modularity hypothesis)
  • 각 모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면 이 모듈들은 아무렇게나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맥락에서 잘 작동하게끔 특화된 메커니즘을 지닐 것이다(domain specificity). 예를 들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기 위한 모듈, 언어 습득을 위한 모듈, 사기꾼(cheater, free-rider) 탐지 메커니즘 등. 이러한 심리 모듈을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이라고 부른다.

이게 진화심리학을 이루는 기본적인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을 검증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자들은 신경학, 유전학, 발생학적 연구, 서베이나 공공기록물 수집, 고고학적/고생물학적 연구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주요 개념들

적응, 부산물, 노이즈

진화라는 과정은 세 가지 산물을 만들어낸다.[2]

  • 적응(adaptations): 가장 중요한 산물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적 적응이다. 진화적 적응은 유전성이 있고, 정상 발달하는 모든 개체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며, 특정한 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특성이다.
  • 부산물(by-products): 자연선택에 의해 직접 설계되지는 않았으나 진화적 적응에 관련되어 나타나는 부수적 특성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설계로 비유를 하자면 형광등의 밝은 빛이라는 특성은 의도적 설계의 결과이지만 형광등에서 발생하는 열은 의도적 설계가 아니지만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인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난생포유류의 탯줄은 진화적 적응이고 배꼽은 부산물이다.
  • 노이즈 또는 임의 효과(random effect): 노이즈는 돌연변이,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 발달 과정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한편, 제프리 밀러성선택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성선택에 의한 적응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과 달리 성별 차이 및 동성 내 개체별 차이가 대단히 클 수 있다. 이는 성선택에 의한 적응이 이성에게 보내는 값비싼 신호, 즉 적합도 지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5]

진화된 심리 기제 (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s)

진화심리학은 인지과학의 모듈 이론(modularity of mind)을 확장한 대량 모듈 가설(massive modularity hypothesis)을 기본 전제 중 하나로 삼는다. 인간의 신체가 간, 심장, 위 등 특화된 기관들로 구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도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특화된 단위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각 단위를 진화된 심리 기제(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s) 또는 진화심 심리 모듈(evolved psychological modules)이라고 부른다. 대량 모듈 가설에 따르면 다양한 적응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하나 또는 소수의 범용적 모듈이 아니라 각 적응 문제에 특화된 수많은 심리 모듈이 상호작용한다. 교과서나 입문서에서 빈번하게 언급되는 심리 기제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다른 사람의 마음 읽기 및 공감 능력과 관련된 마음 이론 기제(theory of mind mechanism)
  • 사회적 계약 관계의 이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과 관련된 사기꾼 탐지 기제(cheater-detection mechanism)
  • 근친 교배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근친 상간 회피 모듈(incest-avoidance mechanism)

강간의 자연사(A Natural History of Rape)[6]에서 공저자 중 한 명인 랜디 쏜힐은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진화된 심리 기제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다만 논란 중 일부는 책의 내용을 오독한 결과이며 상당수의 비판자들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진화적 적응 환경 (EEA)

어떠한 진화적 적응에 대한 진화적 적응 환경(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edness)이란 해당 적응이 진화하는 동안 존재했던 선택압의 집합을 말하며 특정 시간이나 장소를 뜻하지 않는다. 각 진화적 적응마다 서로 다른 EEA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인간의 직립보행이라는 적응에 대한 EEA에는 약 4백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환경 변화(대협곡의 생성) 및 이로 인한 생태 변화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서 '4백만년 전 아프리카'가 EEA인 것이 아니라, 해당 시기에 존재했던 특정한 선택압들이 EEA이다.

진화적 적응을 연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계(reverse-enginnering)이므로 각 적응의 설계 목적을 유추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미래인들이 인류의 유적지에서 병따개를 발굴하더라도 병과 병뚜껑을 찾지 못한다면 병따개의 설계 목적을 올바르게 알아내기 어려울 것이며, 이에 따라 병따개의 설계나 용도에 대해 통찰을 얻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진화적 적응을 연구할 때 EEA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근접원인과 궁극원인

다음을 참고할 것 근접원인과 궁극원인 근접 원인(proximate causation)이란 어떠한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환경적 또는 생리적 원인을 말하고 궁극 원인(ultimate causation)이란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오랜 시간 작용해온 진화적 원인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초콜릿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이 좋기 때문이며, 이는 근접 원인이다. 한편 초콜릿의 맛이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초콜릿에 영양(당)이 풍부하며 영향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생존 및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궁극 원인이다.

진화심리학의 주된 관심사는 행동에 대한 궁극 원인을 찾는 것이며, 진화심리학 서적이나 연구에서 말하는 원인이란 대체로 궁극 원인을 뜻한다.

생물학적 이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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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방법

문화권 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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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학 및 동물행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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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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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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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및 고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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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베이 및 공공기록물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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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견해들

페미니스트들의 비판

진화생물학 및 진화심리학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평가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7]

종의 기원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 출판된 직후인 1800년대 후반에는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기존의 남성중심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로 다윈의 견해가 널리 활용되었으나, 19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많은 페미니즘 이론가들에 의해 사회생물학진화심리학의 여러 주장들이 성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다시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려는 학자들에 의해 다윈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조류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랜디 쏜힐크레이그 팔머의 저서 강간의 자연사(A Natural History of Rape)[6]는 "남성에 의한 여성 강간을 정당화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실제로 남성편향적 서술이 다소 포함되어 있으며 진화심리학자들 사이에서의 비판적 평가도 존재한다.[8]

인지심리학자들의 비판

일부 인지과학/인지심리학자들은 진화심리학에 비판적 견해를 취한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모듈 이론의 창시자 제리 포더는 진화심리학 및 계산주의 마음 이론이 자신의 이론을 너무 과도하게 끌고 나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지언어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와 포더 사이의 다음 논쟁이 유명하다.

또 다른 굵직한 비판자로 노암 촘스키를 뺄 수 없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촘스키의 비판은 기본적으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비판과 유사하다. 스티븐 핑커, 레이 제켄도프 등과 언어의 진화를 놓고 2002년~2005년 사이에 벌인 논쟁이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참고로 핑커는 촘스키 및 포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촘스키 전통의 언어학자이자 고전적 인지주의에 가까운 인지과학자이면서, 이후(1990년대)에 진화심리학계의 거목인 존 투비레다 코스미데스의 영향을 받아 진화심리학에 대단히 우호적인 학자이다.

생물학자들의 비판

이와 유사하게 일부 진화생물학자들도 진화심리학에 비판적 견해를 취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심리학이 너무 많은 것을 적응으로만 설명하고자 한다(범적응주의)고 비판하고 있다. 굴드는 주로 리차드 도킨스와 치열한 논쟁을 주고 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잘 알려진 과학자이자 저술가라서 그런지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편이다. 이들 사이의 논쟁사를 정리한 책으로는 킴 스티렐니Dawkins vs. Gould를 추천한다. 국내에는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10]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며 관련 분야를 전공한 장대익씨가 옮겼으니 번역 품질이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문 자체가 공정한 척 하면서 사실은 도킨스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관점들

유전자 결정론

진화심리학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는 유전자 결정론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이 지금으로부터 약 10만년 전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으며, 현생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이 대단히 낮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에 따르면 농경, 산업화, 정보화 등 유사 이래 모든 변화의 원인은 환경과 문화의 영향이며, 현존하는 다양한 문화의 차이 또한 유전적 차이와 거의 무관하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다양하게 형성된 사회적/경제적 조건에 의한 차이도 극단적으로 좁은 유전적 동질성으로 묶어버리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인간의 사회적 조건은 유전적 형질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틀에서 가능한 것이며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 사회의 발전사조차도 유전적 형질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진화심리학의 주장을 극단화시킨다면 과거의 진화사회론으로의 회귀를 연상케 하는 탓인지 이들은 직접적으로 과거와 같이 노골적으로 이를 주장하지는 않으나 이들의 기본적 문제의식은 유전자 결정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궁극 원인과 근접 원인에 대한 오해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기술할 때 종종 두 층위를 오간다. 하나는 '아무개가 초콜릿을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달고 맛있기 때문. 마침 배도 고팠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이를 근접 원인이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초콜릿을 달고 맛있게 느끼는 혀가 진화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소화가능한 양질의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유도해야 생존 및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이를 궁극 원인이라 부른다. 다음을 참고할 것 근접원인과 궁극원인#오해

누군가가 '나는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하겠다'고 선언하고 초콜릿을 먹지 않는다면 적어도 '영양분 섭취'라는 궁극 원인의 측면에서는 '가치가 없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도덕적 가치(moral value)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진화적 가치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정확히는 포괄적합도)를 기준으로 평가될 뿐이다. 이는 인간이 마땅이 추구해야할 도덕적 가치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

근접 원인과 궁극 원인의 구분은 '초콜릿 먹기'와 같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례로 설명하면 별다른 오해를 사지 않는다. 하지만 성적인 행위, 도덕적 행위 같은 사례를 드는 순간 진화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 궁극 원인에 대한 설명과 근접 원인에 대한 설명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혼동의 결과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모든 인간은 냉혹한 손익계산자 기계로 만든다'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무가치한 것으로 환원한다' 등의 잘못된 비판으로 이어진다.

또한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궁극 원인은 프로이트 류의 '무의식'과 무관한 개념이다. 진화심리학은 각 개체 행동의 기저에 의식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진화적 가치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이 존재한다는 식의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시 초콜릿 예를 들자면, 각 개체에게 필요한 것은 '영양분이 부족해지면 배고픔을 느낀다',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은 맛있다고 느낀다' 정도이지, '양질의 영양분을 주기적으로 섭취하고자 하는 무의식'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으며 그러한 무의식이 진화되었다고 믿을만한 근거도 없다. 어떠한 진화적 적응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려면(이 경우 무의식의 존재) 많은 제약을 만족해야하기 때문이다.

설명과 변호의 혼동

어떠한 설명을 변호를 위한 것이지만 모든 설명이 변호를 위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범죄를 저지른 자의 변호사가 "그는 과음을 했다"는 설명을 하는 경우 이는 변호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물을 냉장고에 넣은 이유에 대한 물음에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다"고 설명을 하는 경우 이는 변호가 아니다. 즉, 어떤 설명은 변호가 아니다.

진화심리학의 연구는 다른 모든 과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다만 누군가가 어떠한 맥락에서 무언가를 변호하기 위해 이러한 설명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며 이는 실제로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진화심리학 뿐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모든 학문은 법정에서 변호를 위해 활용되는데, 그러한 이유로 연구 자체에 반대하거나, 연구의 신뢰성이나 연구자의 의도를 폄훼해서는 안된다. 인지언어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저서 빈 서판에서 아래와 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강간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전제는 강간이 일어나는 일을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강간의 원인을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은 질병의 원인을 연구하는 학자와 마찬가지로 존경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현상을 감소시키기 위한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신성한 계시로부터 진리를 깨우질 수 없으므로, 시간이 흐른 뒤 틀린 것으로 밝혀진 이론을 전개했던 연구자들도 비난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강간이라는 현상을 더 잘 이해했더라면 보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피해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교리를 강요하고, 증거를 무시하고, 연구를 중단시키는 자들이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다.[11]

출처

  1. Halifax Jerome H. Barkow Professor of Social Anthropology Dalhousie University, Nova Scotia; Halifax Leda Cosmides Professor of Social Anthropology Dalhousie University, Nova Scotia; John Tooby both Professors of Psychology and Anthropology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ta Barbara (11 October 1995). 《The Adapted Mind :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 Oxford University Press, USA. ISBN 978-0-19-535647-2. 
  2. 2.0 2.1 2.2 데이비드 버스 (13 June 2012). 《진화심리학》. 웅진지식하우스. 12–쪽. ISBN 978-89-01-14709-3. 
  3. Henry Plotkin (15 April 2008). 《Evolutionary Thought in Psychology: A Brief History》. John Wiley & Sons. 5–쪽. ISBN 978-0-470-77540-0. 
  4. 리처드도킨스 (30 September 2006). 《이기적 유전자(30주년 기념판)》. 을유문화사. ISBN 978-89-324-7111-2. 
  5. Geoffrey Miller (21 December 2011). 《The Mating Mind: How Sexual Choice Shaped the Evolution of Human Nature》. Knopf Doubleday Publishing Group. ISBN 978-0-307-81374-9. 
  6. 6.0 6.1 Randy Thornhill; Craig T. Palmer (February 2001).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es of Sexual Coercion》. MIT Press. ISBN 978-0-262-70083-2. 
  7. Kimberly A. Hamlin (8 May 2014). 《From Eve to Evolution: Darwin, Science, and Women's Rights in Gilded Age America》. University of Chicago Press. ISBN 978-0-226-13475-8. 
  8. Griet Vandermassen (10 February 2005). 《Who's Afraid of Charles Darwin?: Debating Feminism and Evolutionary Theory》.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ISBN 978-1-4616-4707-2. 
  9. 제리포더 (1 August 2013).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알마. ISBN 978-89-94963-87-7. 
  10. 킴스티렐니 (20 January 2002).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 몸과마음. ISBN 978-89-89418-10-8. 
  11. Steven Pinker (26 August 2003). 《The Blank Slate: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Penguin Publishing Group. ISBN 978-1-101-20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