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밀렛

최근 편집: 2023년 6월 16일 (금) 12:58
인쇄용 판은 더 이상 지원되지 않으며 렌더링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브라우저 북마크를 업데이트해 주시고 기본 브라우저 인쇄 기능을 대신 사용해 주십시오.

케이트 밀렛(영어: Katherine Murray "Kate" Millett, 1934년 9월 14일 ~ 2017년 9월 7일) 또는 케이트 밀럿(케이트 밀레트)은 최초의 급진 페미니스트들 중 한명으로 저서로는 성의 정치학이 있다.

사상

케이트 밀렛은 최초의 급진 페미니스트들 중 한명이며 여성 해방을 위해 성별, 성적 지위, 성역할 및 기질 등 가부장제에 의한 남성 지배를 타파해야 한다고 보았다.

자유의지론적 급진적 페미니스트로써의 케이트 밀렛

케이트 밀렛은 여성 억압의 근원이 가부장제의 성별/젠더 체계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한 최초의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들 중 한 명이었다. 밀렛은 저서 성의 정치학(1970)에서 무엇보다도 남성-여성 관계는 모든 힘의 관계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남성들의 공적, 사적 세계의 지배가 가부장제를 구성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해방되고자 한다면 남성의 지배는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성의 지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 하에서 구성된 젠더, 특히 성적 지위, 역할 및 기질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밀렛에 의하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점들을 과장하여, 남성은 항상 지배적 또는 남성적 역할을, 그리고 여성은 항상 종속적 또는 여성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확정짓는다. 이 이데올로기는 매우 강력하여 남성들은 여성들에게서도 동의를 확보할 수 있다. 남성들은 학교, 교회, 가정 등의 제도를 통해 이렇게 하는데, 각각의 제도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을 정당화하고 강화해서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열등감을 내면화한다. 만일 여성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예속성을 떨쳐버리면 남성은 강제력을 동원할 것이다. 여성들은 가부장제 하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오히여 "여성적"으로 행동하는 편이 더 좋으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잔인한 처사를 당할 것이다.

밀렛은 모든 여성들을 굴복시키려는 남성들의 시도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남성의 완전한 통제하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뉴욕 주의 세네카 폴즈에서 1848년 시작된 여성 운동을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00년대의 여성 운동은 깊이 묻혀 있는 성별/젠더 체계의 뿌리에까지 도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을 완전히 해방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20세기의 가부장제 세력은 19세기 페미니스트들에게 빼았겼던 터전을 다시 회복했다.

밀렛은 1930년~60년 사이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을 극명하게 했던 가부장제 선도자들로 작가 D.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만 메일러를 꼽았다. 케이트 밀렛에 따르면, 남성들로부터 여성들이 성적 학대를 당하고 굴욕감을 느낄 정도로 창피당하는 관계를 묘사한 이들의 글을 여성들은 이상적인 성적 행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와 일치되지 못하는 자신을 성적 실패자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로 들 수 있는 글은 섹서스인데, 이 글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창피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매우 그를 즐기는 여성으로 나온다. 밀렛은 섹서스의 독자들이 허구와 실재를 구별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포르노 문학은 종종 광고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잡지 표지를 장식한 모델의 몸매는 모든 여성의 기준이 된다. 명확한 법령을 발표할 필요 없이 여성들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밀렛은 이 포르노 문학가들 외에도 신 프로이트 학파 심리학자들과, 파슨즈 학파의 사회학자들은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공격을 주도한 가부장적 그룹들이라고 지목했다. 비록 프로이트가 섹슈얼리티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 하는 마음이 초기에는 좀 더 나은 진보적 단계라고 여겨졌긴 하지만,밀렛은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스승의 글을 이용해 "두 성간의 몹시 불공평한 관계를 합리화하고, 전통적 역할들을 승인하며, 기질상의 차이점을 유효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유사하게 명망 높은 사회학자인 탈코트 파슨즈의 추종자들도 남성적 여성적 특성의 구분이 생물학적/자연적이며 엄격한 성별 이형성이 없다면 사회는 지금만큼의 기능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성의 남성에 대한 예속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밀렛은 가부장적 반응들에 대한 논의를 결론지으면서 낙관적인 어조를 택했다. 밀렛은 20세기 페미니스트들이 19세기 선배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다짐했다. 밀렛은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에서 새로운 사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확고한 노력을 보았다.

밀렛은 1970년에 양성적 미래를, 즉 별도의 남성적 하위문화와 여성적 하위문화의 통합을 기대하면서도 이러한 통합이 모든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함께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예를 들어 여성적인 순종은 긍정적인 성질로 찬양되어서는 안된다. 남성적인 공격성도 마찬가지다. 각각 개별적으로 긍정적인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적 오만과 여성적 비굴함을 결합시키는 것도 둘은 대립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기타

밀렛은 20세기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에서 새로운 사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확고한 노력을 보았으며 19세기 선배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다짐했다.

생애

1934년 9월 14일 태어나 2017년 9월 7일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