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최근 편집: 2023년 5월 19일 (금) 14:08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책의 표지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 폭력의 시대, 타자와 공존하기>는 도서출판 여이연에서 2010년 출판되었다. 저자 임옥희는 <식민지 근대여성공간>,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등을 썼다.

책은 1부, 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자본, 국가, 인권, 교육, 가조고, 모성, 육체를 2부에서는 타자, 환대, 주름, 문학, 유머, 일상, 채식을 다룬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는 14장의 부제에서도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스페인의 망명화가 레메디오스 바로의 <채식주의 흡혈귀>라는 그림에서 따왔다.

Vampiros Vegetarianos by Remedios Varo

인간의 존재조건 자체가 타자를 삼켜야함에도 공존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의 정치'에 비유하고자 한다.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정치라는 것은 폭력의 시대에 공존의 가치가 결코 만만하지 않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은유다.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는 스페인의 망명화가인 레메디오스 바로의 <채식주의 흡혈귀>라는 그림에서 가져온 것이다. 바로의 그림을 보면 퀭한 눈, 홀쭉한 뺨, 빈혈에 시달리면서도 허기를 채식으로 달래고 있는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묘한 여유와 유머로 표현되어 있다. 뱀파이어들이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면서까지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이야말로 폭력적인 시대에 타자와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은유로 보고자 한다.

목차

14장 채식 :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정치를 위하여

1. 육식에의 불안

2. 신화적 상상력과 동물의 생

3. 채식과 거식 사이에서

4.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정치를 위하여

발췌

동물이 인간의 타자가 아니라, 인간이 동물이었던 신화시대는 어떠했을까? 도나 해러웨이 식으로 말하자면 신화적 상상력의 시대는 신/인간/동물의 경계가 모호했던 시대이다. 신과 인간 그리고 동물이 서로 이종결합을 하면서 동물에게는 신성이, 신에게는 수성(獸性)이 혼재했다. (...) 그 시절 인간은 동물을 신으로 경외했다. 악티온 처럼 인간으로서 동물을 사냥하지만 자신이 또한 사슴으로 변해 사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연어 사냥꾼은 자신이 나중에 연어가 될 것으로 상상한다는 점에서 사냥꾼과 사냥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신화시대의 정서는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도구적 이성에 의해 급격히 소멸된다. (..) 짐승 같다는 표현에서처럼 인간에게서 동물성을 보는 것이 모욕인 시대가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후반기에 이르면 동물은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더 이상 거리에서 동물과 마주칠 일도 없어진다. 동물은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이 시대는 동물을 무엇보다도 경제적, 물질적 용도에 복종시켰다. 동물의 시체는 부위별로 해체되어 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고기로 전환된다. (...) 이처럼 동물의 자취가 흔적없이 분해됨으로써 동물시체를 먹는 것에 대한 인간의 불편한 감정은 무의식으로 가라앉는다. 닭의 시체는 KFC치킨으로, 돼지의 시체는 베이컨으로, 소의 시체는 햄버거로 다가온다.

  • [1] <다이아나의 사냥>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Ovid's Metamorphoses)에서 따온 것이다. 사냥을 하던 악티온(Acteon)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샘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다이아나 여신을 놀라게 한다. 다이아나 여신은 사냥의 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처녀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를 본 악티온은 놀라 바로 도망을 갔지만, 자신의 알몸을 보았다는 것에 분노한 다이애나가 그를 수사슴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결국 수사슴으로 변한 악티온은 사냥개들에게 잡혀 먹힌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