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위키:포크 프로젝트/리브레 위키/느헤미야기

최근 편집: 2021년 11월 1일 (월) 22:59


개요

느헤미야기는 구약성경 역사서의 한 권이다. 전체 13장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바로 앞 책인 에스라기와 한 권으로 묶여 있었으나, 집필자 자체가 에스라기는 제사장인 에스라였고 느헤미야기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치 지도자였던 느헤미야였기에 두 권으로 나뉘었다.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의 뜻에 따라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며 모두가 신의 생명과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길 거부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가면서 타자를 억압하고 짓밟고 외면하는 삶을 살다가 신의 심판을 받아 바빌론의 침공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초토화되었으며 백성들 상당수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빌론이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려 보내겠다는 키루스 왕의 칙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지도에 따라서, 마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위키인 리브레 위키가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고 있듯이, 초토화된 채 70년간 방치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고, 다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를 세워 나가게 된다! 에스라기와 느헤미야기의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해서 2015년 4월 20일 현재 이 문서를 보고 있는 대부분의 위키니트들이 하고 있는 그것을 떠올리면 된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 베이스의 빈 땅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다시 쌓고, 신에게 예배드리는 성전도 재건하고, 아무튼 그렇게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하나를 다시 세워 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에스라기가 성전 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느헤미야기는 성벽 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 에스라기는 2015년 4월 기점으로 위키방 분위기를 생각하면 되고, 느헤미야기는 문서를 하나하나 만들어 쌓아 나가고 있는 위키니트들을 생각하면 된다.

내용

  • 1-4장: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실의 후원을 받아 유대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이스라엘에 돌아온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실질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성벽 공사를 진행한다. 성벽 공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과 섞이는 것을 막고, 예루살렘의 군사적 방비 태세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벽 재건 작업은 이미 현지에 눌러앉은 기득권 세력들과 이방인들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 5-6장: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70년간의 바빌론 포로 생활 가운데 몰아넣은 결정적인 원흉이었던 빈부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이 다시 발생한다. 이스라엘이 신의 심판을 받아 와장창이 되었던 결정적인 원흉은 바로 힘 있는 자와 부자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을 짓밟고 억압하면서 경제정의를 말살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만히 볼 수 없었던 느헤미야는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그리고 성벽 재건이 계속된다. 마침내 52일 만에 성벽이 완성되었다.
  • 7장: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 에스라기 2장과 동일하다.
  • 8-10장: 에스라가 율법을 선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신 사이의 언약을 갱신하는 의식을 진행한다. 먼저 에스라가 율법서를 읽은 다음에 이스라엘 민족이 죄를 고백하고, 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언약을 맺는다. 언약의 내용은 이방인과 절교할 것, 이방인과 통혼하지 말 것, 안식일을 지킬 것, 십일조의 첫 소산을 드릴 것 등이다.
  • 11-12장: 성벽 재건 후의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직분과 사역에 대해 소개한 다음 성벽을 봉헌하는 예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 13장: 모세의 율법을 낭독함으로써 성벽 봉헌 예식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여러 가지 개혁적 조치들을 취한다. 예를 들면 이방인들과 여전히 교류하는 대제사장을 책망하고, 레위인들에게 줄 십일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을 시정하고, 안식일 준수가 해이해진 것을 바로잡고, 이방인과 통혼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이를 맹세하는 등의 조치가 있다.

에스라기와 느헤미야기를 보면 이스라엘 남자들이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정말 극도로 혐오하면서, 이방인 여자와 결혼한 이스라엘 남자들의 명단을 대놓고 공개하는 조리돌림을 시전하고 있다. 따라서 이 명단에 올라온 남자들은 무려 2500년이 넘도록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대해서 배타적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라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이는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 여자와의 결혼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 정체성에 심각한 해악을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에는 신앙 정체성을 제대로 확보하는 것이 정말 큰 문제였기 때문에, 다원적 사회 속에서 소수인 신앙공동체가 신앙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이방인을 배척하게 되었다. 실제로 느헤미야 13장의 기록을 보면 혼혈로 태어난 아이들 중 절반이 다른 나라 말은 하는데 정작 자신들의 언어인 유다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정도로 주변 민족에 대한 문화적 동화가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갓 독립해서 다시 민족정체성을 찾아가는 느헤미야나 에스라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이는 후대에 비유대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유발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고, 유대인들이 자신들만 잘났다는 선민의식을 갖고서 이방인들을 멸시하는 병크를 터트리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 이방인과의 결혼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신학자들에 따르면 이는 이러한 이방인과의 결혼이 신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경시하고, 공동체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짓밟으며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것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신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원흉이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신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바빌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권력자와 부자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을 짓밟고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경제정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당연한 것으로 수용되지만, 당시에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근동 사회에서 그렇게 권력자와 부자들이 노농빈(노동자, 소작농, 빈민)을 짓밟고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유입시킬 우려가 있었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방인과 결혼한 남자들 명단을 까서 더블로 조리돌림을 시전한 것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신약시대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꼭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결혼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하곤 하는데... 이는 이러한 역사와 시대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문자적으로 텍스트를 받아들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2]


참고문헌: 김근주, 구약의 숲, 대장간, 2014, pp. 280-283

  1. 사실 구약성경의 다른 인물들은 이방인과도 결혼을 잘만 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하갈과, 유다는 다말과, 요셉은 아스낫과, 보아스는 룻과 결혼을 했다. 이는 여자 쪽에서 이스라엘의 신을 믿기로 했거나, 남자 쪽에서 신앙 정체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2. 당장 신약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의 제자였던 디모데는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만 교우였고,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교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걸 엄격하게 지킨다면 이 문서를 집필 중인 위키니트는 태어날 수조차 없었다!

틀: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