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3일 (금)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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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1990년부터 1999년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한국의 페미니즘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1]

80~00년대 한국의 선택적 여아 임신중절

90년대는 남아선호사상과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한 페미사이드가 유행한 시기였다. 당시의 성비는 최소 108에서 최대 117 수준으로, 셋째아이상 성비는 최소 143에서 최대 207이었다. 셋째부터의 여자아이는 2명 중 1명 이상이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성감별 낙태는 성별을 알 수 있는 월령인 12주령 이후에만 이루어질 수 있고 당시의 의료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이 시기는 더 늦어지므로, 여성의 재생산권을 인정하자는 운동인 낙태죄 폐지 운동과는 무관하다. 12주 미만 태아의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성감별 낙태는 행해질 수 없다.

기타

  •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되면서 정치의 개념이 확대됐고 운동의 개념도 달라졌다.[1]
  • 서태지가 등장했다.[1]

출처

  1. 1.0 1.1 1.2 이세아 기자 (2017년 10월 28일). “고대생들 이대 난입 사건부터 강남역 시위까지”. 《여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