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집단 성 착취 영상 거래 사건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3일 (금) 16:36

1997년에 일어난 빨간 마후라 사건으로 알려진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은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가장 대표적인 성 착취 영상에 붙은 통칭이다. 당시 중학생부터 시작하는 각종 가해자들은 성착취 영상을 제작, 거래하는 등의 모방 성범죄를 저질렀으나 '10대들의 문란한 행위'로 치부되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똑같이 처벌되었다.

사건 개요

1997년 서울 모 고등학교 2학교 김 모군은 1학년 김모군과 한모군 등 5명이 피해자를 성폭행을 하며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였다.[1]

성폭행을 포함한 사건 개요입니다.

1997년 서울 모 고등학교 2학교 김 모군은 1학년 김모군과 한모군 등 5명과 피해자를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연립주택에 모은 후 번갈아가며 성폭행을 하며 이 과정을 가정용 8mm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였다.[1]

1학년 김모군과 한모군은 이 성착취 영상을 유출했고, 수 많은 남성이 이를 공유했다.[2] 피해자가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빨간 마후라'로 알려졌고,[2] 모방 범죄가 일어나고 그 성착취물들도 서울 전역에 퍼졌다.[3] 10대 가해자 남성들은 돈을 받고 성착취물을 팔거나, 팔아 오라고 강제로 협박하였다.[3] MBC는 중학생들도 대부분 성착취물의 존재를 알거나 본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3]

처벌

가해자와 피해자는 '음란한 영상을 함께 제작했다'는 이유로 모두 똑같이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았다.[2]

언론보도와 2차 가해

1997년 7월 11일 MBC 뉴스는 이 비디오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1]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뉴스로 알려지기 전엔 가해 남학생들이 다니는 인근 고교에서 알음알음 전파되던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전국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한 거죠." "앞에선 혀를 끌끌 차면서 뒤에선 이 비디오를 구하겠다고 모두가 혈안이 돼 있던 거죠. 영상을 보겠다고 달려든 '성인 남성'들은 끝내 가해자로 불려 나오지 않았습니다."고 분석했다.[2]

또 잇따른 언론 보도 속에서 피해자는 단 한 번도 '피해자'로 호명되지 않았다.[2] 김주희 연구교수는 "여성 청소년이 성적으로 착취당한 사건을 한낱 '10대들의 문란한 행위' 정도로 축소된 거였죠. 다들 '10대의 믿을 수 없는 일탈적 행동을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에만 열을 올렸어요"라고 짚었다.[2]

2차 가해 목록

  • 1998년 9월 24일 오전 1시 전남대학교 영화동아리는 인문대학 잔디밭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시민, 학생 등 3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당 성착취물을 상영하다 관람객의 항의로 중단했다.[4][2]
  • 노홍철은 2005년 7월 12일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선물한 8mm 캠코더로 이 사건을 포함한 성착취 영상들을 복제해 친구들에게 2만원을 받고 팔았다고 밝혔다.[5]
  • 2006년 영화 감독 이하는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주인공을 이 사건의 피해자라는 설정으로 각색했다.[2]
  • 2012년 싸이는 노래 77학 개론의 가사에서 이 사건을 90년대를 회상하는 의미로 언급했다.[2]

출처

  1. 1.0 1.1 1.2 박상후 기자 (1997년 4월 14일). “[충격 리포트] 음란 비디오의 주인공은 모두가 중,고생[박상호]”. 《뉴스데스크》. 
  2. 2.0 2.1 2.2 2.3 2.4 2.5 2.6 2.7 2.8 박지윤 기자; 김주영 기자; 문소연, 이동진 인턴기자 (2020년 4월 24일). “[뷰엔] 23년 전에도 존재한 n번방... '성착취' 악의 연대기”. 《한국일보》. 
  3. 3.0 3.1 3.2 조동휘 기자 (1997년 7월 12일). “충격 10대 제작 음란 비디오 제작 판매 루트 추적[조동휘]”. 《뉴스데스크》. 
  4. 천창환 기자 (1998년 9월 26일). “[주사위]전남대 축제서 '빨간마후라'상영”. 《중앙일보》. 
  5. 박재덕 기자 (2005년 7월 13일). “노홍철, '빨간 마후라'에 얽힌 놀라운 추억”. 《조이뉴스24》. 2019년 4월 5일에 보존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