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8일 (수) 12:34

개요

개신교에서 교회에 나가지 않고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 출석여부와 관계없이, 이들의 종교 정체성은 기독교인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기독교 신앙은 가졌는데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 모순이 따로 없다. 그러나 단순히 모순으로 치부하기에 가나안 성도의 숫자는 상당 규모에 도달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가 2013년 1월에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사람들 가운데 10% 정도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를 그대로 적용해서 한목협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 수를 100만 명가량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2004년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종교 간 개종을 조사하면서 개신교를 거쳐 간 이탈자의 숫자를 758만 명으로 추산했는데, 그에 따르면 이 가운데 타종교로 개종한 198만 명을 뺀 숫자인 560만 명을 가나안 성도의 규모로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 중에서 무종교로 돌아선 비율도 있기 때문세 실제로 합리적인 숫자는 약 100만명 정도일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가나안성경에 나오는 지명으로 이스라엘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자, 거꾸로 뒤집으면 안나가가 되어 '안나가, 안간다'의 뜻이 연상되는 단어이다.

한국에서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 행위를 '냉담'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냉담하고 있다고 말하면, 신을 믿고 있지만 교회에 나가지는 않는 상태라는 뜻이다.

용어의 유래

언젠지 모르게 현상 유지를 원하는 기풍이 교회 안을 채워버렸고, 그러니 가나안의 소망이 "안나가"의 현상유지로 타락해 버렸다. 이상하게도 '가나안'이 거꾸러지면 '안나가'가 되지 않나? 오늘 한국교회에 특징을 말한다면 '안나가'는 부대다. 그들은 사회악과 겨루는 역사의 싸움에서 뒤를 빼고 금송아지 앞에서 절을 하고 둘러 앉아 노래부르고 춤추는 것을 예배라 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발가락인 아랫층 사회가 교회에서 빠져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내쫓긴 것이다.

처음 시작은 1971년 한국의 무교회주의 신학자인 함석헌이 한국교회의 모습을 비판하면서 사용하였다. 이후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중 종교인 인구 비율에서 개신교 인구의 감소세가 통계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이유를 찾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재발견한 용어이다.

발생 원인

가나안 성도의 발생 원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 : 속칭 개독교라고 일컬어지는 모습들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고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교회 내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있어서 회의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설교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세지가 사회적 상식에서 벗어나 있거나 말이 안 되는 수준의 것, 혹은 헌금 등의 강요로 인한 교회 내부의 맘몬화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 개신교, 특히 대형교회의 각종 병크들 : 사랑의 교회 건축문제나 각종 교회세습의 등의 문제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것. 자기 신앙은 유지하고 싶지만, 교회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교회에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
  • 개신교 교회의 새신자 코스의 문제점 : 의외로 상당수 가나안 성도들은 교회 정착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개신교 내부의 교인 수평이동이 워낙 심하다 보니 이 와중에 교회를 찾아서 헤매는 가나안 성도가 정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 상당수 교회들은 새로 들어온 신자에 대한 새신자 양육 시스템을 갖추고는 있지만, 한국 개신교 내에서 실제로 교회에 새로 나온 사람의 상당수는 수평이동이라는 점을 고려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새로 교회에 등록할 때마다 듣게 되는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신앙의 기반이 잡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만 여러번 듣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옮길 때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죄다 원죄와 예수 부활과 구원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교회들은 이 과정을 수료하면 사실상 방치에 가까운 상태로 교인을 내버려 둔다. 이는 성경에 대한 심화적인 지식을 알기 원하는 성도들이 교회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며, 신천지와 같은 이단이 성경공부를 미끼로 교인들을 포섭해 나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발생하는 가나안 성도는 목사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신앙에 열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내에서 이들의 열정을 받을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이기도 하다.
  • 교회 안에서의 분쟁 : 한국교회에서는 교회 내부의 분쟁이 벌어지면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지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래서 누가 담임목사가 되었는지, 그래서 교회가 다시 하나로 봉합되었는지, 아니면 둘로 혹은 셋으로 나뉘었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격렬한 분쟁의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깊고도 깊다. 가나안 현상이 전적으로 교회 분쟁의 산물은 아니지만, 이런 분쟁이 직간접적으로 끼치는 영향력은 매우 광범위하며, 이 과정에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인 회의가 들게 된다는 것. 즉, 교회의 분쟁 자체로 교회를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파급되어 나타나는 각종 병크들이 트리거가 되어 가나안 성도를 만들게 된다는 것.

가나안 성도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

기존 한국 교회는 가나안 성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믿음이 얕거나, 이리저리 교회를 옮겨 다니는 "교회 쇼핑족"쯤으로 보거나, 교회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떠났고 따라서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양’으로 치부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목협의 조사 결과 가나안 성도가 "신앙의 연륜"이나 "뿌리"가 시원찮아서 교회 내에서 조금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교회의 인식과는 달리, 오히려 교회 출석 이력이 10년이 넘고, 교사를 비롯해 각종 봉사 직분을 두루 거친 경우가 많으며, 교회 경험과 교회에 대한 참여도가 상당히 깊은 경우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다시 말하면, 지금 교회를 빠져 나가는 사람들은 교회에 정착하지 못한 주변인들이 아니라, 한때 교회의 중심부에 깊이 참여하고 있던 핵심층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발생한다. 또한 가나안 성도는 ‘어느 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도는 교회 쇼핑족’이라는 견해도 전혀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한목협의 조사 결과, 가나안 성도의 상당수는 교회를 떠나기 전 교회를 옮겨본 경험이 별로(이사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더더욱) 없었다. 즉, 가나안 성도가 급증하고 있다는 현상은 결국 한국교회 내부의 핵심층이 이탈중인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같이 보기

출처

  1. 맨발동무 (2013년 12월 9일). “함석헌의 한국기독교비판(2)”. 《한국교회사 자료 창고입니다. (개인 블로그)》. 2016년 12월 1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