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한문: 家父長制, 영어: patriarchy) 또는 부권제(한문: 父權制)는 가정의 우두머리인 가부장이 지배하는 가족, 사회 등의 권력체제이다.

1 설명

가부장제는 여성 종속과 남성 지배를 기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으며, 이는 성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 등 다양한 방향으로 나타난다. 즉, 남자가 여자보다 우수하므로 여자를 지배해야한다고 전제한다.

케이트 밀렛은 가부장제를 "한 출생 집단이 다른 출생 집단을 지배하려는 오래되고 보편적인 하나의 책략"으로 정의하며, 이를 '성 정치학'의 개념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생물학주의 급진 페미니스트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 억압의 토대를 여성의 출산 능력에 대한 남성의 통제와 지배로 특정하며 가부장제에 대한 개념화를 시도했다.[1]


2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별이분법

남성은 이성과 (신적인) 정신, 초월을 상징하며 자아이자 주체이고 문명을 상징한다. 반면에 여성은 감성과 몸(동물적 육체성)을 상징하며 타자이자 대상이고 자연과 땅을 상징한다. 남성을 상징하는 항목은 가치체계의 상위질서에 있는 것이며, 남성의 타자로서 여성의 상징은 이분법적 가치체계의 낮은/하위 질서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동시에 여성은 여성인 한 그러한 가치 질서를 따를 것을 요구 받아왔다.[2]

2.1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female)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벤담이 제안한 감옥 모델인) 파놉티콘의 수감자와 마찬가지로 남성에게 끊임없이 감시당한다고 느끼며, 남성에게 관능적인 즐거움을 주는 모습으로 보일 필요를 느낀다.[3]

임신 능력은 가부장제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 신체적 취약성(physical vulnerability)을 낳기도 한다. 가부장제는 일반적으로 임신이 불가한 인구에 의해 가임인구를 제어하는 체계에서 기반하였다. 여기서 여성과 가임인구는 정확하게 동일한 집단이 아니다.[4]

2.2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male)

가부장제에는 대가가 따른다. 남자들은 가부장제의 열매를 모두 챙기는 대신 그 제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여성을 지배하고, 착취하고, 억압하도록 요구받는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느끼는 증오와 공포,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 등을 혼란스러워한다. 이는 폭력을 영구화하는 남자들조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남자들은 정작 손에 쥔 이득을 포기하려 들지는 않으며, 가부장제가 다른 무언가로 변하면 자신에게 친숙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 불안해한다. 그래서 남성중심주의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무저항적으로 이를 지지한다.[5]

3 가부장제의 발현[6]

실비아 월비에 따르면, 가부장제는 6개의 층위에 따라 발현된다.

  1. 가구 생산은 여성이 남성의 생계를 부양받음으로 인해 여성의 종속이 유지된다.
  2. 경제적 수준인 유급 노동 내에서 여성을 배제하거나, 더 나쁜 일자리로 여성들을 격리시킨다.
  3. 국가는 자본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이며, 정책과 행동에서 가부장적 이해 쪽으로 체계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4. 폭력은 여성이 남성에게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행동이며, 대부분의 여성의 행동에 일정한 효과를 지니며, 국가는 개입을 거절함으로써 체계적으로 용서되고 정당화된다.
  5. 섹슈얼리티는 강제적 이성애와 이중 성규범을 조장한다.
  6. 문화는 종교, 교육, 미디어와 같은 다양한 활동 무대에서 가부장적인 시각에 맞는 여성에 대한 표상을 창조하는 일련의 제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4 한국의 가부장제

한국에서는 집단주의 문화와 함께, 시월드라는 여성 억압적 가족 문화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4.1 역사

가부장제가 언제부터 한국사회에 정착하였는지는 다양한 이견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고려 말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함께 들여온 「주자가례」에 따라 가부장적 유교철학이 사대부 사이에 확립되고 양반가를 중심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주자가례」란 중국 남송 시대 주희(朱熹, 1130~1200)의 저서로 가례(家禮), 즉 가정의 예법을 적고 있다. 이후 대표적으로 변화한 사회모습 중 하나가 혼인풍습이다. 고구려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 혼인 풍습은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으로 결혼 후 신랑이 신부의 집에 머물러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국의 혼례법인 친영제도(親營製度), 즉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시집을 오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또한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성리학적 명분론을 중시하는 사림세력의 성장과 함께 부계위주의 가족구성과 장자(長子)의 우대, 부계를 위주로 한 족보 작성 및 제사제도 등 오늘 날 가부장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관습들이 대부분 정착하게 되었다.[7]

한국 가부장제는 일제강점기에 더욱 심화되어 여성의 개화와 평등의 요구는 지연되고 억압당한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호주권이 더욱 강화되고, 창씨개명으로 여성이 부성 대신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된다. 천황제 군국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일제는 전통적 가부장제를 존속시켰고, 여성의 성을 혼혈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일부 여성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재상산기능을 상실하기도 하였다. 군사 정권이 성립되면서 한국 고유의 전통과 이른바 미풍양속을 계승하고 강화하는 정책을 실시하였고, 혈통 중심의 가족주의가 강화된 형태로 온존하였다. 이는 여성에게 전통적 현모양처 상을 강요했다.[8]

5 같이 보기

6 출처

  1. (사)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페미니즘의 개념들». 동녘. p. 15
  2. 김선희 (2012). 여성의 범주와 젠더정체성의 법적 수행. 이화젠더법학, 4(2), 1-21.
  3. 객체화에 대한 페미니즘의 관점들, 에반젤리아 리나 파파타키 씀, 전기가오리 출판, 17p
  4.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모임 여행자. 젠더여행자를 위한 번역책자. 
  5.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문학동네 출판
  6. 백수진 (2009). 가부장제와 한국의 저출산 문제. 여성연구논집, 20, 121-156.
  7. 趙玉羅, 장상, 이효재, 이문웅 (1986). 가부장제에 관한 이론적 고찰. 한국여성학, 2, 9-49.
  8. 이효재. (1996). 한국 가부장제와 여성. 여성과 사회, (7), 160-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