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돌봄 사회화운동

최근 편집: 2023년 3월 9일 (목) 20:43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고, 가사·돌봄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사·돌봄사회화공동행동’이 만들어졌다.[1]

가사·돌봄사회화공동행동(준)이 2021년 11월 30일 사무금융연맹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11월 한달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사회화 공동선언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연명을 발표, 공동선언문을 낭독 후, 해당 선언운동의 힘을 바탕으로 이후 본 조직을 출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1]

이들은 여성에게 집중된 가사·돌봄 일자리는 저임금·불안정노동 일자리로 구조화됐다고 비판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사·돌봄노동의 중요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지만, 시장화가 낳은 문제들은 전혀 해소되고 있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 국가책임 확대 공약은 허울뿐이었고, 공적 공급체계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는 전혀 확인되고 있지 못하다고도 덧붙였다.[1]

회견 참가자들은 “이제 더 이상 시장화 방식으로는 삶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공적 돌봄 체계 구축과 성별 분업 철폐, 가사·돌봄 노동자의 노동기본권보장을 중심으로 가사돌봄노동의 사회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며 “가사·돌봄혁명을 통해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해 나가고 평등과 연대의 대안사회로 나아갈 것을 선언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1]

홍석만 대선공투본 정책기획팀장은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의료의 사회화와 똑같다. 의료도 치료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의료행위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노동이다. 이들의 노동도 그 행위에 맞게 지불돼야 한다”며 “가사서비스의 시장가격으로만 평가된 금액이 무급 가사노동이 500조 원이 넘는다. GDP의 25% 정도인데, 이게 지불되지 않고 GDP에 포함시키면 GDP 자체가 무의미한 숫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1]

윤지영 변호사는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사회화는 시대적 흐름이다. 이러한 사실을 법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유아보육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아이돌봄지원법은 그간 가정에서 이루어진 돌봄을 사회화한 대표적인 법률이다”라고 한 뒤 “그러나 지금까지 법제화된 법령들은 굉장히 우려스럽다. 법과 제도는 가사·돌봄노동의 가치를 폄훼하면서 이용자의 편의와 비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가사·돌봄 노동자에게는 의무와 책임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1]

출처: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홈페이지

가사/돌봄 사회화 공동선언문

1. 재난과 위기의 시대, 가사/돌봄의 혁명이 필요하다


코로나 재난과 반복되는 경제·사회 위기는 가사/돌봄의 위기를 드러냈다. 경제적 어려움과 코로나 감염을 위한 방역조치는 가정(집)의 책임을 증가시켰다. 이로 인해 여성에게 가사/돌봄 노동이 전가되고 있고, 가정폭력까지 증가하고 있다. 여성들은 의료-돌봄의 최전선에서 온갖 헌신과 희생을 강요받고 있으며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은 건강과 생명, 삶의 위협을 겪고 있다.


이대로 살 수 없다. 성별분업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가사/돌봄, 가치로 매겨지지 않는 가사노동, 배제와 소외를 전제하는 법과 제도, 경제적 착취와 수탈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성장이 만들어내는 여성 불평등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야 한다. 바로 가사/돌봄 혁명이다.


2. 노동의 위계화와 성별 분업 체계로 유지되는 자본주의는 우리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여성의 역할로 규정되는 가사/돌봄노동이 생산노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지만 자본주의체제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가사/돌봄을 여성의 일로 규정하면서 이를 ‘사랑’, ‘모성애’, ‘집안일’로 부르며 무급노동을 강요했다. 이를 통해 자본의 비용을 절감했고, 자신들의 이윤을 증식시켰다. 여성이 임금노동자로 시장에 나왔을 때도 이는 변하지 않았다. 가치로 매겨지지 않는 집안일을 저임금노동으로 만드는 것은 자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듯 여성에게 전가된 가사/돌봄 노동은 자본의 위기를 흡수하는 완충제이자, 적은 비용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 결과, 가사/돌봄의 시장화는 복지의 축소로 이어졌고, 공공의 영역까지 자본의 이윤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사람보다 이윤이 더 우선되는 사회에서 공공의 가치는 약화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각자 도생해야 했다. N포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래조차 설계할 수 없는 사회, 노인·여성 빈곤의 확대, 권리 사각지대의 증가 등 삶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3. 가사/돌봄의 시장화는 여성의 저임금 노동과 낮은 질의 서비스를 재생산 할 뿐 삶의 위기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가사/돌봄의 시장화는 공공서비스의 확충을 가로막았다. 90%가 넘는 민간 중심의 가사/돌봄의 공급은 다수 이용자의 선택을 오히려 제악했다. 이용자는 지역사회와 분리된 ‘시설’에서의 생활을 강요당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했다. 반면에 소수의 부유한 자들은 가사/돌봄 서비스를 아주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받았다.


시장을 통해 공급되는 가사/돌봄으로 노인, 빈곤층, 아동, 청소년에게 필요한 가사/돌봄 서비스는 민간(자본)의 영리에 종속돼 축소되거나 그 질이 낮아졌고, 가사/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 역시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위태로워지고 삶은 더욱 심각하게 양극화됐다.


4. 가사/돌봄은 연대와 협력에 기반을 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가사/돌봄이 결여된 세상을 상상해보았는가? 그런 세상이 가능한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자녀 양육과 노인 요양뿐 아니라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인해 누구나 가사/돌봄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은 온다.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사/돌봄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이며 동시에 연대와 협력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는 노동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인식할 때 비로소 사회도, 인간의 삶도 지속할 수 있다.


5. 우리 모두가 가사/돌봄의 제공자이자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


가사/돌봄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면 이 책임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실제로 가사/돌봄 노동은 고립된 방식으로 완성될 수 없다. 우리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 아프면 의료/재활기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아픈 동료나 가족을 돌보기도 한다. 부모(또는 부양자) 돌봄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가사/돌봄 노동의 본질은 모두가 노동에 참여하면서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협업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자본주의는 성별분업과 위계화룰 통해 가사/노동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착취하고 수탈해왔을 뿐이다. 이 속에서 여성의 노동이 고립되고 권리로부터 배제당하며 불평등하게 살아온 것이다.


이제 가사/돌봄의 본래 의미를 ‘공동체적 협업’으로 되돌려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가사/돌봄의 수혜자가 될 수 있고, 제공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착취에 동원하는 생산노동시간을 줄이고, 가사/돌봄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6. 보편적 가사/돌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공급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사/돌봄의 국가 책임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국가(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은 민간(자본)의 주도성 인정을 전제로 국가(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가사/돌봄의 공공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보편적인 가사/돌봄은 필요한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선 가사/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적정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랬을 때 가사/돌봄은 평등을 기반으로 공유되고 사용될 수 있으며 보편적 권리로 실현될 수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은 가사/돌봄의 공적/사회적 공급체계 구축이다. 이제까지 개인과 가족, 여성이 부담하고 책임져왔던 가사/돌봄 공급체계를 국가와 사회, 지역이 책임지는 공급체계로의 전환을 통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권리를 누리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질 좋은 가사/돌봄의 실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7. 보편적 가사/돌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사/돌봄의 가부장적 성별 분업 체계를 철폐해야 한다


여성은 생산영역에서 임금노동을 하는 동시에, 가족‧삶의 영역인 재생산 공간에서도 노동(가사, 돌봄, 감정노동 등)하고 있다.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여성들은 가사/돌봄 노동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떠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형태로는 보편적 가사/돌봄을 실현할 수 없다.


우리는 가사/돌봄이 여성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깨지 못하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비정규직의 70%를 여성노동, 성별임금 격차, 서열화(위계화)되는 노동, 극단적인 저임금, 빈곤, 배제되는 사회보장제도 등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또한 가치화되지 못하고 있는 집 안에서의 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할 수 없다. 이는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의 착취와 수탈, 배제와 소외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8. 가사/돌봄 노동자의 적정한 임금, 안정된 일자리, 안전한 환경, 노동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


여성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핵심에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 논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가사/돌봄 노동은 무급노동으로, 시장화 된 가사/돌봄 노동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가사/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제약(박탈)을 정당화하고 있다. 가사/돌봄 노동자의 노동권이 사회적 논의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다수의 법제도는 가사/돌봄의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가사/돌봄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노동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가사/돌봄 노동자의 임금, 고용, 환경, 노동3권 보장은 기본적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사회구조와 법제도로는 보편적 가사/돌봄을 실현할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


9. 가사/돌봄 사회화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다.


코로나19 재난은 이 사회에서 가사/돌봄이 어떤 의미인지를 되묻게 했다.


의료·돌봄 노동자들은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코로나 방역을 지켰다. 급증하는 물량 속에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이어졌다. 학교가 문을 닫자 빈곤층 아이들은 굶어야 했고, 홀로 방치됐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고독사를 하고, 고립된 채 갇혀 지내야 했다. 장애인, 노인 요양 등 시설에 있던 사람들은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고,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한 채 갇혀 집단 감염을 겪어야 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심각해질수록 우리는 가사/돌봄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한다. 기후위기는 자연속에 존재하는 자원과 지구 생명을 ‘필요’이상의 생산과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무한정 약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또한 ‘필요’이상으로 소비함으로써, 지구 상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과잉 생산과 소비의 경제’는 이제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경제로 바뀌어야 하며, 가사/돌봄노동과 같은 ‘필수노동’ 중심의 경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기초가 될 수 있다.


가사/돌봄 사회화는 이를 바꿔내는 출발이다. 가사/돌봄의 공적 공급체계를 구축하고, 이용자와 제공자 모두가 안전한 환경에서 보편적 가사/돌봄을 실현하기 위한 평등한 분담체제, 민주적 의사결정과 운영의 주체성, 모두가 함께 돌보는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10. 가사/돌봄 사회화로 자본주의 철폐, 평등과 연대의 대안사회로 나아가자!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는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고,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다. 가사/돌봄의 사회화 선언은 바로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사/돌봄의 시장화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다.


우리는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서 여성의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강요하는 모든 법과 제도에 저항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에게 전가되는 가사/돌봄의 성별분업과 노동의 위계화를 거부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참여하고 주체가 되는 가사/돌봄 노동,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가사/돌봄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가사/돌봄의 사회화로 자본주의 철폐, 평등과 대안사회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