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최근 편집: 2023년 7월 12일 (수) 16:52
폴라의 남편 그레고리는 집안의 가스등을 어둡게 만들어놓고선 “집안이 왜 이렇게 어둡지” 묻는 폴라에게 “그렇지 않아. 당신이 잘못 본 거야”라며 그녀의 예민함을 탓한다. 거듭되는 그레고리의 질타에 폴라는 점점 혼란에 빠지고, 그녀의 유산을 노린 그레고리의 수작임을 알 리 없는 폴라는 “정말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그렇게 예민한 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심리학 용어 ‘가스라이팅’의 유래다.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가스등[1]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2].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꾸린 '새말모임'에서 심리(적) 지배를 대신 쓸 새말로 제시했다.[3]

가스라이팅은 피해자로 하여금 자기 본연의 감정, 본능, 온전한 사리분별능력 등을 의심하게 하는 극단적인 효력을 갖고 있는 감정적 학대로서, 학대가해자는 이를 통해 엄청난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4] 학대의 핵심은 바로 권력과 통제다.[4]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이렇게 자기 인지능력에 대한 신뢰를 앗아가게 되면, 피해자가 학대관계에서 떠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진다.[4]

가해 방식

일반적으로 아주 서서히 발생한다. 실제로 초반에는 무해하게 보일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르며 이 폭력적인 패턴이 지속될수록 피해자는 혼란, 불안, 고립, 우울을 느낄 수 있으며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감각을 아예 잃게 될 수도 있다.[4]

꼭 계획적 모략이 동반되어야만 가스라이팅인 것은 아니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의 차이점은 소유권에 대한 내면화된 사고방식에 있다.[5]

  • 거부: 학대 가해자가 피해자의 말을 아예 듣기 자체를 거부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척 한다.
    • 예) 이제 그런 얘기 좀 그만해. 지긋지긋하다. 더는 듣고 싶지도 않아. / 무슨 소리야. 일부러 날 헷갈리게 만들려는 거야?
  • 반박: 학대가해자가 피해자의 기억을 무조건 불신한다. 피해자의 기억이 정확하든 그렇지 않든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한 기억을 반박할 때 '가스라이팅'의 효과는 더 심각하다.
    • 예) 언제 그랬다는 거야. 네 말은 완전히 틀렸어. 너 완전 잘못 기억하고 있어. 네 기억은 틀렸어.
  • 전환/쳐내기: 학대가해자가 화제를 전환하거나 피해자의 생각을 의심한다.
    • 예) 뻔해. 이거 또 ㅇㅇ(친구, 가족 등)한테 들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네. / 왜 네 멋대로 상상해서 그렇게 생각해?
  • 망각/부인: 학대가해자가 실제 발생했던 일을 일부러 까먹은 척 하거나 자기가 피해자에게 했던 약속을 부인한다.
    • 예)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 내가 언제 그랬어? 말 좀 지어내지 마.

피해 징후

가스라이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징후들을 인지하여 결과적으로 자신을 다시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가이자 심리분석학자로빈 스턴 박사(Robin Stern, Ph.D.)는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라는 징후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있다고 이야기한다.[5]

  • 사과: 나쁘게 여겨지는 모든 일에 대해 홀로 미안하게 느낀다는 것은 모든 책임과 의무가 모두 피해자에게만 짊어지워졌다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가해자는 계속해서 무죄로, 피해자는 영원히 유죄가 된다.
    • 나는 늘 가해자에게 사과하고 있다.
  • 결정 불가
    • 나는 간단한 결정조차 하기 힘들다.
    • 나는 뭘 해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같다.
    • 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며 뭘 해도 기쁘지 않다.
  • 변화: 쉽사리 눈치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이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그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가 시작되기 전과 후를 비교해본다면, 명백한 차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전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를 만나기 전의 나는 분명 지금보다 자신감있고 즐겁고 편안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 혼란
    •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고 하루에 몇 번씩 자문하게 된다.
    • 종종 혼란스러우며 내가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 내 언행을 자꾸 뒤돌아보며 후회하고 자책한다.
    •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지만, 나 스스로에게조차 뭐가 잘못 됐다는 건지 콕 집어서 말할 수가 없다.
    • 내 삶엔 복받은 점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왜 더 행복하지 않은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 나는 내가 "이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파트너인지 잘 모르겠다.
  • 폐쇄성
    • 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가해자의 행동에 대해 변명할 때가 잦다.
    • 친구와 가족들에게 더이상 설명하거나 변명하기 싫어서, 말하지 않고 숨기는 일들이 있다.
    • 가해자에게 의해 무시당하거나, 현실을 왜곡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이나 심각한 불안증 때문에 피해자가 사회에서, 혹은 친한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조차도 이전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주변 사람과의 상담이 차단된 이 단계에서는, 피해자에게 이런 상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 학대 가해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학대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통제권을 쥐게 된다. 동시에 가해자는 자신이 통제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피해자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떼어내어서 아무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시도한다.[5]

오해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위에 나타난 방법을 통해 피해자가 자신의 기억과 판단력을 스스로 의심하게 하며, 결정이나 판단에 있어 가해자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특정한 현상을 뜻한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설득, 단언, 강요, 속임수, 프레이밍, 우기기 등의 상황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이 종종 오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은 친밀하거나 가까운 관계를 매개로 하는 특정한 심리적 조작을 뜻하는 것으로 단지 타인이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주장을 강하게 하거나, 속임수를 내포한 화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가스라이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친밀한 관계의 A와 B 사이에서 A가 '너 때문에 내 인생이 괴롭다. 네 책임이다'라며 B를 반복적으로 비난하는 행위는 정서적 폭력일 수는 있지만 가스라이팅이 아니다.

여성에게 불리한 정책이나 결정에 대해 '여성들도 원한다.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강남역 여성살해를 가리켜 성차별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리는 '묻지마 살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가스라이팅이 아니다.

같이 보기

영화 가스등의 포스터.

링크

출처

  1. 김서령 (2016년 10월 24일).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가스등”. 《한국일보》. 
  2. 위키백과 "가스라이팅". 이유진(2017년 7월 13일) "대한민국이 바로 페미니스트 양성소" 한겨레
  3. “외국어 신조어 대신 쓸 새말 2”. 《한글문화연대》. 2020년 4월 9일. 2020년 9월 22일에 확인함. 
  4. 4.0 4.1 4.2 4.3 4.4 Feminist K (2016년 8월 18일).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1) - 가스라이팅이란 무엇인가?”. 《Feminists in Korea, Blog》. 
  5. 5.0 5.1 5.2 5.3 Feminist K (2016년 8월 23일).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2) - 이 학대수단에 대한 10가지 진실”. 《Feminists in Korea, Blog》. 
  6. “관계 속, 가장 잔인한 폭력 ‘가스라이팅’”. 《페미디아》. 2016년 8월 29일. 
  7. brollings (2014년 5월 29일). “What is Gaslighting?”. 《The National Domestic Violence HOTLINE》. 
  8. Shea Emma Fett (2015년 8월 27일). “10 Things I’ve Learned About Gaslighting As An Abuse Tactic”. 《Everyday Feminism》. 
  9. Feminist K (2016년 9월 6일).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3) -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마인드게임”. 《Feminists in Korea, Blog》. 
  10. Alex Myles (2015년 8월 15일). “Gaslighting: The Mind Game Everyone should Know About.”. 《Elephant Journal》. 
  11. Feminist K (2016년 9월 6일).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4) - 이 조작수법을 누가, 어떻게, 왜 하는가”. 《Feminists in Korea, Blog》. 
  12. Dr George Simon, PhD (2011년 11월 8일). “Gaslighting as a Manipulation Tactic: What It Is, Who Does It, And Why”. 《Counselling Resource》. 
  13. 노정태 (2015년 12월 9일). “북리뷰_ 상대방을 황폐화시키는 ‘폭력’”.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