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게토의 의미는 독일인들이 도시 내 (제한된) 구역에 유태인들을 몰아넣고 지역사회로부터 분리하던 공간을 말한다. 독일은 폴란드 내의 독일 부속 지역과 소련 내에만 적어도 1,000여 곳의 게토를 설립하였다.[1]
설립 목적
독일은 게토의 설립을 통하여 유태인들을 일시적으로 분리, 통치하고 궁극적으로는 베를린의 나치 정권이 유태인을 말살하고자 하는 계획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많은 게토들은 단지 일시적으로만 존재했을 뿐이었다. 어떤 게토는 실제로 단지 며칠 동안만 존재하였고 다른 게토들도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만 존재하였다. 1941년 말, “최종 해결(유럽 내의 모든 유태인을 살해하고자 하는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자 독일은 게토를 체계적으로 폐쇄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그 부속국들은 게토의 주민들을 인근 공동묘지로 끌고 가서 총살하거나 주로 기차를 이용하여 대량 학살 수용소로 이송하여 살해하였다. 독일 SS와 경찰 당국은 소수의 게토 유태인들을 강제 노동 수용소나 집단 수용소로 끌고 갔다.[1]
이름 유래
1516년, 베니스 시당국은 시내에 유태인이 거주하도록 마을을 건설하였는데, “게토”라는 이름은 이 유태인 마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16세기와 17세기 지방정부로부터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찰스 5세(Charles V)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부가 프랑크푸르트, 로마, 프라하에 이르는 많은 도시들에 이러한 유태인 마을의 설립을 명하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