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중 원삼국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나라.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이 건국하였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압록강의 지류인 훈장 강 유역의 졸본(환런) 지방이었다. 이 일대는 산악 지대라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건국 초기부터 주변의 작은 나라를 정복하며 평야 지대로 진출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압록강 가의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5부 연맹을 토대로 발전했다. 그 후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쳤다.

부여처럼 왕 아래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고 그 아래로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를 거느렸다.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열어 사형에 처하고 처자는 노비로 삼았다.

풍속으로는 서옥제가 있었는데, 남자가 혼인을 한 뒤 일정 기간 처가에서 살다가 가족을 데리고 남자 집으로 돌아가는 혼인 형태였다. 건국 시조인 주몽과 그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겼고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치렀다.

태조왕 때 요동 지방으로 진출을 도모했고, 부전고원을 넘어 옥저를 복속하여 경제 기반을 확대했다. 왕권이 크게 강화되어 계루부 고씨가 왕위를 독점적으로 세습하게 되었다. 2세기 후반 고국천왕 때는 부족적 전통의 5부를 행정적 5부로 개편했고, 왕위 계승이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뀌었다.

3세기 위의 침입으로 큰 위기를 맞았으나 극복했다. 4세기 초 미천왕 때에는 중국이 5호 16국으로 나뉘어 혼란한 틈을 타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다. 중국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대동강 유역을 확보했다. 그러나 전연(선비족)과 백제의 연이은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등 큰 위기에 처하였다. 이를 극복하고자 소수림왕은 전진과 수교하여 대외 관계를 안정시키고, 불교를 수용하여 국민들의 일체감을 높였다. 또한 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였다.

소수림왕의 개혁으로 안정을 되찾자 광개토 대왕 때 정복 활동이 활발해졌다. 광개토 대왕은 백제를 압박하고 신라를 도와 왜를 물리쳤다. 거란과 후연 등을 격파하며 요동과 만주 일대를 장악했다. 광개토 대왕은 독자적 연호인 ‘영락’을 사용하며 높은 위상을 드러냈다.

장수왕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남북조와 동시에 교류하고 북방 유목 민족과도 폭넓은 관계를 유지했다. 적극적인 남진 정책으로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백제를 밀어내 한강 유역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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