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창제도등폐지령

최근 편집: 2023년 4월 8일 (토) 20:33

해방 후 군정법령 제7호로 1947년 11월 14일 제정, 1948년 2월 13일부터 시행된 법령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 식민 정부에 의해 시행되었던 공창제도가 이 법령으로 폐지된다.

공창제 폐지는 해방 직후 좌우익으로 분열되었던 여성운동이 연대한 유일한 쟁점이었다. 좌익계열(건국부녀동맹)과 우익계열(전국여성단체총연맹)은 함께 공창제 폐지운동을 전개했고 미군정은 1947년 11월14일 공창제도 폐지령을 공포했다.

공창제 폐지는 한국 여성운동사 및 성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기점이었다.

일제 강점기 공창제 운영

공창제도는 일본 식민 정부에서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 병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일본인의 식민지조선 이주를 위하여 성산업을 이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공창제의 가장 주요한 대의명분은 성병 예방이었다. 식민 정부는 공창제를 집단화하고 일본인과 조선인 별거정책을 채택해 대규모 유곽을 설치하였다.[1]

  • 1908년 9월 <기생단속령>, <창기단속령>[1]
  • 1916년 3월 31일 경무총감부령 제4호<貸座敷娼妓取締規則>(대좌부창기취체규칙), 제2호<料理屋․飮食店․營業取締規則>(요리옥.음식점.영업취체규칙), 제3호<藝妓․酌婦․藝妓置屋營業取締規則>(예기.작부.예기치옥영업취체규칙), 제1호<宿屋營業取締規則>(숙옥영업취체규칙) 등 공포 및 시행으로 본격 공창제 시행[1]

공창제 시행 이전 일본의 성산업 이식 현황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서울에는 성노동자를 고용해 알선하는 대좌부업, 요리와 술을 제공하면서 성판매하는 특별요리점, '기차역 대합실'을 연상시키는 명칭이지만 성매매 공간을 빌려주고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대합 등이 생겨났다. 공창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도 일본군이 조선에 성산업을 이식하고는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용산구 일대에는 13-14개의 대합이 있었고 용산에 주둔한 일본군 사령부 병사들이 단골이었다고 한다.[2]

이후 부산, 인천, 원산 등 개항장에서 일본인 여성들 위주로 성판매가 이루어졌다. '집창촌'은 1902년 현재 부산 중구 부평동에 해당되는 지역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당시 "아미산하 유곽"으로 불렸고 1907년 "미도리마치 유곽"으로 이름을 바꿨고 현 완월동으로 이전했다. 현 인천 중구 선화동에도 "시키지마 유곽"이 개업했고 예기에 대한 성병 검사도 실시했다. 이 '집창촌'은 1960년대 초 숭인동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옐로우하우스로 이름을 변경했다. 원산에도 "신마치 유곽"이 생겼다. 서울에는 러일전쟁 직후 현 중구 묵정동 소피텔 앰버서더호텔 부근에 "신마치 유곽"이 설치되었다. "신마치 유곽"은 오사카 유곽 명칭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이 외에도 현 서울 명동성당 언덕 너머 영락교회 및 백병원 일대에 조선인 거주 지역으로는 최초로 '집창촌'이 설정되었다.[2]

공창제 시행 후 공창 설치 현황

공창제도등폐지령 제정까지의 경과

  • 1923년-1924년 혁청단,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연합회에서 공창제 폐지를 논의했고 구세군 사령관 야마무로 군페이가 '공창폐지와 그 선후책'을 발표. 기독교계 공창폐지운동가 오긍선을 비롯한 폐창운동가들의 논의 지속[1]
  • 1924년 목멱산인(木覓山人)이 <<개벽>>에 "공창폐지운동과 사회제도"에서 공창제를 식민지 지배와 결부해 비판.[1]
  • 1927년 5월 근우회가 '조선여성은 벌써 약자가 아니다. 여성 스스로 해방되는 날 세계가 해방될 것이다. 조선 자매들이여 단결하자'는 선언문 및 행동 강령 제시. 인신매매 및 공창의 폐지 내용을 포함.[1]
  • 1927년 김안서동아일보에서 도덕주의의 공창폐지운동 비판.[1]
  • 1927년 1월 기생들의 잡지 <<장한>>에 당사자 입장 항변하는 글 게재.[1]
  • 1934년 일본 전국경찰부장회의 폐창단행의 성명 발표, 창기취체규칙 철폐와 폐창이후 대책 검토
  •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조선 여성 대거 '일본군 위안부' 동원[1]
  • 1945년 해방[1]
  • 1946년 1월 미군(GHQ), 일본에 지시각서 "일본에 있어서의 공창폐지에 관한 건" 공포[1]
  • 1946년 3월 9일 조선부녀총동맹, 공/사창제 폐지결의안 제출. 일본과 마찬가지로 공창 폐지할 것 요청.[1]
  • 1946년 5월 17일 법령 제70호 <부녀자의 매매 혹은 그 매매계약 관계의 금지> 공포[1]
  • 1946년 8월 조선부녀총동맹을 비롯한 시내 14개 부인단체들이 연합해 "폐업공창구제연맹" 결성. 이 때 연맹 활동에 앞장 선 대표적인 공창폐지 운동가로는 대중소설가 김말봉이 있음.[1]
  • 1946년 9월 군정법령 제107호 <부녀국설치령> 공포.[1]
  • 1946년 12월 폐업공창구제연맹,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통해 폐창정책 입법안 추진[1]
  • 1947년 5월 3일 제65차 본회의에서 박현숙 의원 외 60명에 달하는 의원 연서로 제안된 공창제도 폐지 상정.[1]
  • 1947년 8월 7일 제125차 본회의에서 공창제도 폐지 관련 법안 채택이 타당하다는 심사보고 회정. 상정 가결.[1]
  • 1947년 8월 8일 제126차 본회의에서 공창제도등폐지령 통과, 군정장관에게 제출되어 최종 심의.[1]
  • 1947년 10월 30일 군정장관 대리가 공창제폐지령 및 담화 발표.[1]
  • 1947년 11월 14일 법률 제7호로 공창제도등폐지령 공포.[1]
  • 1948년 2월 12일 개정된 법률 제7호로 공창제도등폐지령 시행 선언.[1]

공창제도등폐지령 이후 경과

1948년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서울 묵정동에 잔류하고 있던 창기 280여 명을 퇴거했고 이 때 쫓겨난 창기들은 4명 제외 모두 "행방불명" 되었다.(조선일보 1948.3.31) 공창제도등폐지령 시행 이후 강제폐업을 당해야 하는 여성들은 창기연맹대표를 선출, 1948년 시청에 항의 시위하였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1][3]

사실상 공창 철폐 이후 사창이 급증했고, 행정당국은 성노동자에게 대안으로 직장 자리를 제시했으나 대부분 '풍기가 문란하여져서 생산능률이 전연 감퇴될 것'이라는 등 성노동자를 거부하였다. 결국 정부는 이들을 일정 장소에 수용하여 시내 여관 음식점 등속에 취직시켜주겠다고 하였는데 사실상 바 등 성노동 유관 산업에 재취업 시키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후에는 주둔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성산업이 확장되었다.[1][3]

당대 성노동자 발언, 시위 및 항의 기록

  • 1947년 12월 4일 "공창폐지대책강연회" 발언(부인신보 1947.12.6)

서울시와 보건후생부, 부녀국, 폐창연맹이 창기 5백여 명을 소집하여 강연회를 개최 했는데, 정부와 여성단체 대표의 연설이 끝나자 창기들은 발언권을 요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최△△: 우리도 물론 굴욕적인 생활에서 버서나는 것을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조건으로 불리한 우리들이 재생하기에는 강력한 대책이 요구된다. 이 대책의 수립 없이 법률만 제정하는 것은 공창에 가까운 일이다."

"△△: 우리의 과반수는 전재민이다. 공창 폐지를 이월에 한다는 것은 너무나 냉정한 말이다. 우리에게도 부채 문제 또는 부양가족 문제가 있는 것이다. 좀 더 기간을 연기하여 사오월에나 실시하기를 바란다."

△△: 우리나라 문화수준으로 보아 다른 문명국과 같이 흉내만 낼 필요가 없다만 정 그럴 생각이면 법률로서 우리의 부채 등은 일절 청산하고 생활 보장해달라"

  • 1948년 12월 창기연맹 대표 서울시청 방문, 후생 대책 마련 요청

당시 신문은 이들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면서" 격분했다고 기록하고 정확히 어떤 요청 사항을 전달했는지 등은 보도하지 않았다.(조선일보 1948.2.17)

  • 기타 시위 및 항의

"폐창(廢娼)이냐 폐창(閉窓)이냐? 사창(死娼)이냐 사창(私娼)이냐?" 등 구호와 함께 시위(부인신보 1948.2.17)

출처

  1.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1.23 박, 유미 (2010). “해방 후 공창제 폐지와 그 영향에 관한 연구”. 《역사와실학》 (41). 
  2. 2.0 2.1 홍, 성철; 홍 성철 (2007). 《유곽의 역사》 초판. 서울시: 페이퍼로드. ISBN 978-89-958266-9-0. 
  3. 3.0 3.1 박, 정미 (2017), 《잊혀진 자들의 투쟁 ― 한국 성판매여성들의 저항의 역사》 (역사비평118), 407–4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