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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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채성의 1980년대 모습.

1 개요

구룡채성(광둥어: 九龍寨城 까우룽짜이씽, 영어: Kowloon Walled City)은 영국령인 홍콩 내에 존재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이다. 사실상 양쪽의 주권이 모두 통하지 않는 무법 지대였으며, 현재는 철거되어 사라졌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엄청난 슬럼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는 '구룡성채'라고 불렀으나, 1993년 철거 당시 '구룡채성' 이라고 적힌 현판이 발굴되어 본래 이름이 구룡채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거된 이후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으나, 캐나다의 사진 작가 그렉 지라드의 저서 《City of Darkness - Life In Kowloon City》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작가의 공식 사이트는 여기로 들어갈 수 있다.

2 역사

구룡채성의 역사는 송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는 소금 무역을 담당하는 군사들이 묵을 수 있는 조그마한 기지로 사용되었으나, 19세기에 청나라가 영국과 전쟁을 하면서 구룡채성의 규모도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수비용 기지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군인, 관료 등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898년에 홍콩의 다른 모든 곳들은 영국의 것이 되었지만, 구룡채성만 유일하게 청나라의 소유로 남게 되었다. 원래 영국은 식민지 정부가 완전히 수립되기 전까지만 청나라의 소유로 인정한다고 했지만, 청나라가 끝까지 관할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주권 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구룡채성은 영국·홍콩·중국(청나라) 중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무법 지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1899년 12월, 그 동안 구룡채성을 비우려던 시도들이 계속해서 실패하자 영국은 구룡채성까지 식민지 영토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며, 청나라 관료들은 모두 구룡채성을 떠났다.

그 이후로 구룡채성은 고립되었고, 온갖 범죄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국인 피난민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했고,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도 국공내전이 일어나 광둥성의 피난민들도 모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무려 50,000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홍콩 식민 정부에서는 조금이라도 성을 비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거주민들은 '구룡채성은 홍콩의 영토가 아니다'며 반발했고, 영국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기 때문에 결국 손을 떼게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헤로인 판매, 성매매 등 다양한 범죄들이 활개를 쳤지만 정치적으로 무력했던 경찰은 차마 성급하게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중 몇 명은 범죄자들에게 뇌물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는 삼합회가 실질적으로 구룡채성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1974년이 되어서야 홍콩 경찰이 대규모 진압 작전을 벌이면서 쫓겨났다.

이 무렵부터 홍콩 정부는 구룡채성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고, 중국 정부에서도 이를 묵인했다. 마침내 1987년 1월, 홍콩 정부에서 구룡채성의 철거를 결정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하나 둘씩 떠났지만, 많은 주민들이 보상금이 너무 적다며 시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구룡채성은 너무 슬럼화되어 사실상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철거는 계속 진행되었다. 이리 하여 1993년 3월부터 시작된 철거 작업은 1994년 4월에 종료되었다. 현재 존재하는 구룡채성 공원은 1995년 12월에 개원되었다.[1]

3 생활상

전체적인 생활상은 이 인포그래픽을 통해 알 수 있다.

구룡채성 내부의 사진을 보다 보면 그야말로 사이버펑크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성 내부의 복잡한 통로들에는 하나하나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광명가(光明街)」, 「용진로(龍津路)」, 「노인가(老人街)」 등 다양하다. '광명가'라고는 하지만, 사진을 보면 역시 어두컴컴한 거리이다. 과거 이 거리에서는 헤로인, 아편 등의 마약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통로의 천장에는 수많은 전선들이 달려 있는데, 건물들 사이의 틈이 워낙 좁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민들은 무단으로 전선을 끌어오는 등의 방법을 이용해서 전기를 사용했고, 물을 사용할 때는 공동 수도 시설을 이용하거나 우물을 팠다.

공동 수도 시설을 이용하는 주민


성 안에는 5만명이 살았던 만큼 다양한 시설들이 존재했다. 구세군이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학교도 있었고, 구멍 가게와 식당도 있었다. 심지어 치과도 있었는데, 이들은 공식적인 면허가 없는 야매 치과의사들이었다. 이들의 진료는 대부분 비위생적이었지만, 구룡채성 안에 매우 많은 의사들이 있었고, 이들 중에는 홍콩은 아니더라도 중국 의사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잘 굴러갔다. 또한 성 내부에는 비밀 공장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법에 따른다면 이들의 영업은 불법이었지만 구룡채성에서 법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공장들은 장난감을 만드는 곳부터 시작해서 완자, 딤섬 등의 식료품을 만드는 곳도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공장들은 청결하지 않았지만, 이런 공장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 내부의 사람들은 음식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4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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