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호신법

최근 편집: 2022년 12월 15일 (목) 20:48

구자호신법(九字護身法)은 원래 중국 도교에서 입산수도할 때 삿된 것으로부터 몸을 지키려는 주술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에 흘러들어가 불교와 접합되면서, 주문만 빼고 다른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심지어 본산지인 중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해지고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역수입되었다.

원형

원형은 4세기 초 위진남북조 시대동진(東晉)의 벼슬을 맡았던 갈홍(葛洪)이 쓴 《포박자》(抱朴子)에 나온다. 포박자는 책의 이름이자, 또한 저자 갈홍이 사용한 이기도 하다.[1]

갈홍이 《포박자》를 쓰던 시대에 신선이 되어 불로장생하려는 이런저런 술법이 떠돌았으며 갈홍 자신도 이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또한 이런 술법을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신선이 됐다는 사람이 없음도 잘 알았다. 갈홍은 신선술이 그 자체로 요망한 거짓이란 말을 거부하고, 신선은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신선술의 핵심을 모르며 또한 속세에 쩌든 몸으로 술법을 시행하기에 신선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속세에서는 아무리 단약을 만들어보았자 부정 타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술법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먼저 속세를 떠나 명산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2] 하지만 산에 들어가도 이매망량 도깨비 등이 수행자를 괴롭힐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방책이 필요했다. 《포박자》 내편 『등보』(登涉) 부분에 이런 '방책들'을 적어두었는데, 구자호신법은 그런 방책들 중 하나다.

抱朴子曰:“入名山,以甲子开除日,以五色缯各五寸,悬大石上,所求必得。又曰,入山宜知六甲秘祝。祝曰,临兵鬭者,皆阵列前行。凡九字,常当密祝之,无所不辟。要道不烦,此之谓也。”
포박자(갈홍)가 말했다. "명산에 들어가려면 오색 비단을 5촌 길이로 바위 위에 얹고 마음으로 구하는 바를 깊이 바라며 갑자(甲子)에 따라 길일을 고르라. 산에 들어간다면 육갑비축(六甲秘祝)[3]을 알아야 하니, 그 주문은 "임병투자 개진열전행(臨兵鬭者/皆陣列前行)"으로 모두 9 글자이다. 언제나 당연히 비밀스러운 주문이며 피하지 못할 일이 없다. 도를 구함이 번거롭지 않다 함은 이런 것을 이른다."

육갑비축 9글자의 뜻을 번역하면 "병사로서 오신 투사들이여, 모두 진을 짜서 앞으로 가라"라는 뜻이다. 마지막 행(行)자를 대오나 대열을 가리키는 항(行)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이렇게 읽는다면 뜻은 "모두 진을 짜서 앞에 대열을 서라"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일본에 전파

이 주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불교와 결합되면서 그야말로 불교스럽게 변형되었다. 입산수도하려는 도인이 자신을 지킨다는 목적은 사라지고 그 자체로 불교의 호신진언인 듯이 인식되었으므로, 심지어 '구자진언'이라는 이름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 글자를 발음할 때마다 그에 맞추어 밀교의 불보살을 가리키는 수인을 맺었다. 나중에는 이마저도 번잡하다고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면서 그에 맞추어 마치 바둑판처럼 허공이 가로 세로로 선을 긋는 식으로 간략화되기도 하였다. [4]

일본에 전해지는 육갑비주 주문은 두 종류가 있다.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闘子皆陣列前行)
임병투자개진열재전(臨兵闘者皆陣列在前)[5]

위에서 설명했듯 《포박자》 원문 그대로인 것은 전자다. 일본 천태종에서는 전자를, 진언종에서는 후자를 사용한다. 진언종 쪽이 잘못된 주문을 받아들였거나, 혹은 주문 내용을 고쳤을 것이다.

일본에서 구자호신법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오기노 마코토의 만화 《공작왕》 때문이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진언종[6] 소속 승려라 당연히 진언종판 주문을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다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에서도 구자진언을 읊는다 하면 대부분 진언종판을 사용하게 되었다.

아래는 일본에서 9자 진언과 함께 수인을 맺을 때의 설명도다.

일본에서는 닌자들이 사용했던 주술로도 알려지면서 '인법'의 하나로도 취급되는 모양이다.

  1. 포박자(抱朴子)는 의미를 번역하면 '순박함을 안은 사람'으로 그 자체로 매우 도교적인 뜻이다. 《도덕경》에서는 몇 장에 걸쳐서 순박함의 덕을 칭송한다.
  2. 작은 산은 산신이 별 힘이 없어서 도움을 주지 못하므로 반드시 명산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祝자는 축과 주라는 두 가지 음이 있으므로 육갑비축으로 읽을지 육갑비주라고 읽을지 약간 혼란이 있다. 보통은 육갑비축이라고 할 때가 많다. 祝을 '주'라고 읽으면 남을 저주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므로, 여기서는 육갑비축이라 읽음이 맞을 것이다.
  4. 2006년에 방송된 애니메이션 《고스트 헌트》에서 주인공 타니야마 마이가 작중에서 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아마 이거 보고 알게 된 덕후들도 제법 있을 듯?
  5. 명나라 정통연간에 나온 《정통도장》에 실린 《포박자》에서는 '싸울 투' 자를 본자인 鬭로 쓰지만, 한국에서는 통상적으로 이보다 속자인 鬪를 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간화자인 闘자를 쓰므로, 여기서는 일본식 간화자로 썼다.
  6. 헤이안 시대 사람으로 당나라에서 정식으로 밀교를 전수받고 돌아온 밀교 고승 구카이(空海: 774~ 835) 대사가 창종한 일본의 밀교종파다. 구카이 대사는 일본에서는 매우 유명하며, 특히 고향 시코쿠에서는 반쯤 신 대접을 받으며 숱한 전설에 등장한다. 이 때문인지 일본 서브컬처에서 밀교를 등장시킬 경우 진언종을 모델로 하곤 한다. 만화 《데드 프린세스》에 등장하는 광언종(光言宗)도 작중 설정상 구카이 대사의 진언종에서 갈라졌다고 한다. 구카이 대사는 사후에 일본 조정으로부터 받은 시호 고보다이시(弘法大師, 홍법대사)란 호칭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