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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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옥
출생1901년 1월 11일
사망1988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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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임국영(林國英). 권기옥(權基玉)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남경 국민정부 항공서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언론 보도, 곧 〈중국 하늘을 날은 애국소녀의 얼- 최초의 우리 여류 비행사 권기옥 여사와의 인터뷰〉, 〈한국 최초의 여자 파일럿 권기옥씨의 슬픈 8ㆍ15〉(《주간여성》 1969년 8월 27일자) 등에서 권기옥을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밝히고 있다. 또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1978년 2월부터 24회에 걸쳐 《한국일보》에 연재된 회고록 〈나의 이력서〉이다. 여기에서는 권기옥을 한국 최초일 뿐만이 아니라 ‘동양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한국애국부인회 사교부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한편 권기옥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출판인이기도 하다.

생애

1901년 1월 11일 평안남도 평안에서 1남 4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1] 1916년에는 숭현보통학교를 졸업해 숭의여학교 3학년에 편입해 1919년에 졸업했다. 11살에 에 입학하여 1917년 5월 미국인 아트스미스의 평양 곡예비행을 구경한 순간 비행사의 꿈을 키웠다.[1]

권기옥은 교사 박현숙과 정일성의 영향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3.1운동을 준비하였고, 직접 거리에 나가 만세 시위를 하다 유치장에 구류되기도 하였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2] 1921년 중국어와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서양선교사가 경영하는 항주의 홍도여학교 중학과에 입학해 1923년 6월 졸업하였다. 졸업 후 상하이로 돌아와서 인성학교 교사로 5개월간 재직하였다. 권기옥은 이 기간 동안 비행사가 되기위하여 영어를 습득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1923년 12월 권기옥은 한국인 청년 3명과 함께 운남 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하였다, 당시 임시정부는 육군 항공대 창설과 비행사 양성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에 권기옥은 임정 요인인 이시영의 추천서와 중국인 혁명가 방성도(方聲濤), 운남성장 겸 독군 탕자오[唐繼堯]의 추천서를 받아 항공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1925년 2월 28일 항공학교를 졸업하고, 비행탑승 적성검사에 합격해 비행사가 되니, 조선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3][2] 이후 중국 공군대한독립군에서 복무하였다. 중일 전쟁에 참가, 총 7000시간을 비행했다.[2]

1926년 초 장가구에서 이상정(李相定)과 혼인하였다. 이상정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형이다. 10월 내몽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후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겼다. 1927년 전 운남항공학교 교장 유패천(劉沛泉)의 소개로 상하이로 가서 장제스[張介石]의 국민혁명군 항공사령부 소속 비행사로 합류하였다. 난징[南京] 국민정부 수립 이후에는 난징으로 이동해 국민정부 항공서(1935년 이후 항공위원회로 개칭) 1대 소속 부비항원(副飛航員)으로 활동하였다.

1936년 하반기 권기옥과 이상정은 ‘일본 밀정’이라는 모함을 받아 체포·수감되었고, 8개월 간 옥고를 치른 뒤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기여하였다.

1988년 사망하였다. [4]

업적

3·1운동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고 공채를 팔아 송금하였다. 임시정부는 1920년 9월 미국 국회의원 동양시찰단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대대적인 시위 행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평안남도 경찰부 청사에 폭탄을 던질 목적으로 독립단원들을 국내에 잠입시켰다. 권기옥은 숭현소학교 석탄창고를 은신처로 제공하여 독립단원들이 이곳에서 폭탄을 제조, 그 해 8월 3일 거사에 사용하게 하였다.

남경에 머무르면서 권기옥과 이상정은 김원봉을 비롯하여 의열단과 관련을 맺었고, 조선민족혁명당원들과 교류하였다. 일제 첩보 자료(『사상휘보』 4, 1935.9)에 따르면 권기옥은 “남경 국민정부 항공서 비행사이자 의열단 여자부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침략하자 1937년 11월 이상정과 함께 난징을 떠나 1938년 3월 충칭[重京]에 도착하였다. 민간인 신분으로 국민정부의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활동하며, 라디오 방송(일본어)을 듣고 내용을 기록하여 군에 제출하는 정보 수집 업무도 수행하였다. 1943년에는 김순애 등과 함께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하였고, 사교부장을 역임했다.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던 최용덕 등과 함께 중국 공군의 한국인 비행사를 활용하여 광복군 비행대 편성 및 작전계획을 구상하였다.

상훈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1988년 4월 19일 87세로 별세하자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2003년 국가보훈처가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같이 보기

  • 꿈의 날개 - 다음 웹툰
  • 박경원 - 민간인 신분으로 첫 비행사 자격증을 딴 여성
  • 이정희 - 다른 초창기 여자 비행사
  • 「한국독립운동과 권기옥의 비상」(윤선자,『한국근현대사연구』 69,한국근현대사학회,2014)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성들의 독립운동: 1932∼1945」(김성은,『역사와 경계』 68,경남사학회,2008)
  •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 권기옥」(김영주,『역사와 실학』 32,역사실학회,2007)
  • 「나의 이력서」 1∼24(권기옥,『한국일보』,1978.1.25∼2.28)
  • 「나는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권기옥,『신동아』,1967.8)

출처

  1. 1.0 1.1 정혜주 (2005년 12월 29일). “천황궁 폭파 위해 '날개의 꿈' 꾸다”. 《오마이뉴스》. 
  2. 2.0 2.1 2.2 정혜주 (2015년 12월 23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비행사는 누구인가”. 《오마이뉴스》. 
  3. [폴리뉴스] 국가기록원의 권기옥 지사 비행학교 졸업장 복원 기사
  4. 여성독립운동가사전. 심옥주. 천지당(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