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우회는 한국이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부터 1931년까지 민족해방, 무산계급 해방, 여성해방을 과제로 삼아 활동한 여성조직이다.[1]
활동
근우회는 여성문제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 야학실시, 문맹퇴치, 여공파업의 진상조사, 고아주학생운동 및 각종 항일학생운동 지도와 지원 등으로 활동하였다.[1] 일본에 항의문서를 발송하기도 하였다.[1]
규모
1929년까지 충청도를 제외한 전국 57개, 해외 3개의 지회를 조직하였다.[1]
해체
일제의 탄압과 여성운동자들과의 사상적 차이로 결성된 지 4년 만인 1931년에 해체되었다.[1] 구체적으로, 온건파와 급진파 간 갈등이 있었으며 1930년에 사회주의 계열 간부가 정치투쟁에 나섰다가 대거 검거되면서 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온건한 방향으로 투쟁 노선이 변경되었다.[1]
역사
- 1927년 5월에 민족주의 여성운동계인 김활란, 유영준, 유각경 등과 사회주의 여성운동계인 박원민, 정종명 등이 창립하였다.[1]
- 1929년 7월 근우회 제2회 전국대회[2]
- 1929년 11월 12일 재령지회 창립대회[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