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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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金敬喜, 1888년 ~ 1919년 9월 19일). 사후인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생애

평양에서 세자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03년에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에 졸업하고 모교의 교사로 부임하였다.

김경희는 평양 3.1만세운동을 전개한 송죽결사대 초대회장이다. 1913년 9월에 조직한 숭의여학교 송죽결사대를 황애덕, 이효덕과 함께 조직, 선후배가 굳건한 독립정신으로 애국활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1913년에 결성한 송죽회(송죽결사대)에서 초대회장직을 맡으며 비밀결사활동을 하다가 1916년에 일제에 의해 교사직에서 강제 면직되었다. 면직된 후에는 평양시내 교회부인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여성계몽운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에서 기독교계 여성들을 이끌며 몸이 좋지 않은 가운데 죽음을 각오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투옥되었다. 이후 일본 경찰을 피해 상해로 망명하였다. 송죽결사대의 독립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면서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했다. [1]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1919년 7월에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귀국하였다. 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조직하였다.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병을 얻어, 1919년 9월 19일에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출처

“「독립유공자」황애덕 여사님”. 《LA 3.1여성동지회 다음블로그》. 

  1. 여성독립운동가사전. 심옥주. 천지당(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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