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김익용(1880~1922), 가명 옥진덕으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생애[1]
서북학회와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0년 한일합병 전에 간민교육회를 기반으로 간민회를 설립하는 데 관여하였다. 1918년 4월 28일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건설하면서 선전부장(또는 교통부장 연락책-확인 필요)을 맡았다. 러시아 적위대와 연합 군사 활동을 하였고, 1919년 8월 이동휘와 함께 상하이로 이동하여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장 겸 서무국장에 임명되었고, 임시정부의 공식 기관지 <공보>의 편집책임을 맡았다.
1920년 봄부터 공산주의자 그룹을 조직하였으며, 1921년 1월 한인사회당을 고려공산당으로 개편하였고, 1921년 5월에 창당을 선언하였다. 모스크바 국제공산당에 고려공산당 대표를 파견하였으며, 한형권을 임시정부 특사로 파견하여 모스크바로부터 차관을 얻어냈다. 이동휘와 김립은 이 차관을 임시정부에 감추고 고려공산당 자금으로 활용하며 공분을 사 1922년 2월 10일 상하이의 파오통 거리에서 오면직, 노종균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