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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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1896년 1월 20일 ~ 1951년 6월 22일)은 작가, 소설가, 시인, 영화배우, 연극배우, 언론인이자 페미니스트이다.

김명순은 1917년 11월 단편 소설 「疑心의 少女」로 󰡔청춘󰡕의 현상문예모집에 당선하면서 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로서 등단한다. 이후 작품집 『생명의 과실』(1925년)과 『애인의 선물』(1928년)을 발간했고 1939년 종적을 감출 때까지 소설 23편, 시 107편(고쳐 쓴 글 포함), 수필, 평론, 희곡과 번역시, 번역소설 등 방대한 양의 문학 작품을 남겼다.

김명순은 비록 집은 부유했으나 기녀 출신의 어머니 아래서 서녀로 태어나 이른 나이부터 주위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강간당한 여성, 남성 중심 문단에서의 소외, 조국인 조선에서의 추방 등의 여러 문제로 다중 억압과 소외를 겪었다. 이러한 경험에서 형성된 그의 자기정체성은 식민지 피압박자에 대한 자각과 중첩되었다. 민족의식과 여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김명순의 실존적 자아는 분열되었으며 자기모순이 심화되었다.

김동인이 1939년 소설 ‘김연실전’ 발표를 통해 성폭행 피해자인 김명순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김동인은 '김연실전'을 통해 김명순을 세상에 다시 없을 악독하고 나쁜 여성으로 그려내었으며, 김연실의 모델이 김명순이 아니냐는 당시의 추측에 이렇다 할 응답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김명순을 모델로 삼아 김연실전을 썼다는 것이 거짓은 아니었다는 것이다.이로 인한 당시 사람들(주로 남성들)의 세찬 비난을 견뎌낼 수 없었던 김명순은 동경으로 도망치듯 건너갔다. 이후 생계를 위한 잡일로 생을 이어갔고, 1945년 해방 소식을 듣고도 돈이 없어 귀국하지 못했다. 생활고로 병들어갔고, 주변에서 김명순을 동경 시에서 운영하는 청산 뇌병원(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1]김명순의 최후는 기록되지 않고 있다.

나혜석과 같이 후려치기를 당하였다. 방정환(우리가 아는 어린이날의 그 방정환이 맞다)이 소설에서 후려치기를 시전하였다.[주 1]

나혜석, 허정숙, 이광수, 김일엽과 함께 자유연애론을 펼쳤다.

2017년 1월 30일 소설가 김별아가 장편소설 <탄실>을 출간했다. ‘탄실’은 김명순의 아명이자 필명으로 소설 ‘탄실’은 김명순을 기억하는 작품이다. “최초 여성 소설가이면서도 문학사에서 누락된 선배 작가를, 잊힌 사람을 복원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1]

1 부연 설명

  1. 소설 속 등장인물인 신여자 김양을 "계몽 강연 연설하러 갑네 부모님 잘도 속이고 외출해서는 황금정 사진관이나 들락거리며 옷장 속에는 일본 피임법 책을 숨겨 놓고 사는 자칭 고결한 독신주의자."라며 까내렸다.

2 참조

  1. 1.0 1.1 장슬기 기자 (2017-01-31). "최초 여성 근대 소설가, 문단의 성폭력 피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