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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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9일에 김민식은 한겨레에 〈지식인의 진짜 책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해당 칼럼은 나오자마자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곧 칼럼이 삭제되고 사과문이 올라왔다.

1 가정폭력 옹호

해당 칼럼은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의 손찌검을, 아버지에 비해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지적 우월감을 갖게 된 어머니 탓이라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이것은 가정폭력이 결국 피해자의 탓이라는 가부장제의 시선을 내면화한 폭력적 관점이며,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분노와 상처를 상기시키는 내용이다. 이렇게 실제로 가정폭력을 행하는 아버지와 당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 같이 어머니를 희생양으로 몰고 결국에 아버지 쪽에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보통 딸은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들들은 생존을 위해서든 아니면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해서든 종종 아버지의 입장을 변호하는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2 소수자 혐오

이 칼럼에서는 어머니는 불편한 게 너무 많아서 책을 통해 끊임없이 답을 찾고, 문제제기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정상성으로만 가득한 세상에서 불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주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 들이다. 이들의 언어는 공적인 것으로 취급되지 않고, 그나마 책이라도 읽어 언어를 벼려야, 논리적으로 말해야 그나마 살아남는다. 결국 생존하기 위해 뭐라도 배우고 언어를 만들어야 하는, 책이라도 읽어야 하는, 소수자의 입장보다는 다수자의 입장을 이 칼럼은 대변하고 있다. 세상에 심지어 이런 사람들을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까지 칭하고 있다. 김민식의 논리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들은 세상에 불만이 많아 답을 구하려고 책을 읽고 선민의식을 가진 스스로 불행한 사람들인가? 아마 답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충분히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칼럼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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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진짜 책무
어려서 아버지에게 맞은 이야기를 책에 쓰면 사람들이 묻는다. “아버님께서 그걸 보고 뭐라 하지는 않으세요?” 아버지는 책을 읽지 않는다. 아들이 누적 판매량 20만 부를 돌파한 나름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아들 책도 안 본다. 아버지가 평생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마음 놓고 쓴다.
반대로 어머니는 책을 참 많이 읽는다. 팔순의 나이에도 아들의 새 책이 나오면 몇날 며칠이고 앉아 필사를 하신다. 기억력도 좋아 수십 년 전의 잘못도 잊지 않고 내내 곱씹는다.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과 너무 많이 읽는 사람이 같이 살면 누가 불행할까? 안타깝게도 더 불행한 건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말로 당해내지 못했다. 다독가인 어머니는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언어를 벼렸다. 말싸움을 하다 말문이 막히면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순순히 물러날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계속되는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지적 우월감을 감지한다. 당신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생각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말싸움 끝에 아버지가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면 어머니는 끝끝내 비참해진다. ‘내가 저렇게 수준 낮은 인간이랑 산다니.’ 책을 읽지 않는 아버지는 문제의식이 없고, 너무 많이 읽은 어머니는 매번 문제 제기를 하느라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나는 어머니가 안타깝다. 공부란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내가 책에서 배운 것을 타인에게 적용하면 그건 폭력이다. ‘너는 그렇게 살면 안 돼.’ 상대방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껏 이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응, 그건 네가 무식해서 그런 거야. 니체가 말이야. 이런 말을 했지.’ ‘도대체 니체가 뭔데 내 삶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야?’
평생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사는데 불편함이 없으니까 안 읽는 거다. 어머니는 불편한 게 너무 많다. 그 모든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끝없이 읽는다. 책을 읽어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면 좋으련만, 다독의 끝에서 지적 우월감만 얻었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바보는 아니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는지 아닌지는 대번 알아본다. 애정이나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충고나 조언은 조롱이나 멸시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아버지는 그걸 정서적 폭력으로 받아들이셨다. 더 똑똑한 어머니가 한발 물러나서 부족한 아버지를 감싸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옳고, 너는 잘못됐다.’ 상대를 계도의 대상으로 본 탓이다.
살기가 갈수록 팍팍해지는 탓일까, 책 말고도 세상에 재미난 게 너무 많은 탓일까? 사람들의 연간 독서량이 해마다 줄어드는 건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위험한 건 혼자 너무 많이 읽는 사람이다. 자칫 선민의식에 빠져 대중과 유리될 수 있다. 출세하지 못한 옛날 선비는 속세를 떠나 혼자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요즘 지식인은 산에 올라가 수양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망이라는 저잣거리에 세상을 조롱하는 글을 올리고, 이는 다시 의도를 가진 특정 언론에 의해 제멋대로 확대 해석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분노를 당긴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 마크 트웨인
‘이것도 몰라?’ 라는 말은 가르침이 아니라 조롱이다. 모를 땐 겸손할 수 있지만, 나 혼자 안다고 믿는 순간 오만해진다. 오만은 화를 부른다. 과도한 자의식을 장착한 엘리트의 독주는 독서 문화 함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껏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의 수준이라는 게 저 정도란다.’ 지식인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순간,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사라진다. 책을 읽어 내 자존감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자존감을 존중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것이 지식인의 진짜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