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1940년 만 14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다.[1] 고향으로 돌아온 때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 되던 1948년이었다.[1] 1992년 3월 피해 사실을 공식 신고한 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투신했다.[1] 다음해, 김복동은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돼 피해사실을 증언했다.[1]
2012년 김복동은 세계 각국에서 전시 성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을 돕는 데에 나섰다.[1] 길원옥과 함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나비 기금을 설립했다.[1]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의 차별정책을 듣고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1]
2018년 9월, 수술을 받은지 5일만에 병상에서 일어나 빗속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4개월 후, 김복동은 숨을 거뒀다.[1]
기념
- 국경없는기자회는 김복동을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다.[1]
- 2019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여성운동상을 받았다.[1]
- 정의기억연대는 미국 워싱턴에 김복동 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중이다.[2]
같이 보기
-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 - 2019년 8월 개봉해 약9만명의 관객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