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화(1897~?)는 수원만세운동을 주도한 사상기생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생애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향화의 본명은 순이였다. 15살 무렵 수원으로 시집을 온 그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해 친정 아버지마저 사망했다. 향화는 18살 때 기생이 된 후에 얻은 이름이다. 검무와 승무, 경성잡가, 서관소리에 능했으며 지식층과 교분을 통해 시대흐름을 파악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의 승하소식을 듣고 장례에 맞춰 1월 27일 20여명의 수원기생과 함께 깃옷 소복, 나무비녀, 짚신 차림으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통곡했다.
3.1운동 당시 경기도 수원 지역에서는 3월 16일부터 시위가 시작되었다. 당시 22살이었던 김향화는 선배 기생 서도홍과 함께 만세시위를 결의하고 수원기생조합 소속 기생 33명을 모았다. 기생들이 성병검사를 하는 자혜병원 옆에는 경찰서, 군청 등 식민통치기구가 집중돼 있던 수원의 중심가였다. 이를 노려 성병검사일인 3월 29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병원 앞에 다다르자 치마 속에 감춰온 태극기를 꺼내 만세를 불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7일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2008년 수원시가 건의했으나 건국훈장은 못 받고 서훈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유족이 확인되지 않아 표창장과 메달은 수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