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최근 편집: 2021년 1월 21일 (목)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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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세기 말 백인정권 청산

오랜 인종차별 강압 통치의 역사가 있는 남아공은 1994년 4월 역사적인 총선을 치러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집권하고, ANC 지도자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이 됐다. 넬슨 만델라가 집권 후 마주한 문제는 과거 백인 정권 시절의 고문, 암살, 성폭행 등 반인륜 범죄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였다. 백인 정권에서 인종범죄를 많이 저지른 보안군은 조건 없는 사면을 요구했다.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고 평화적 권력 이양에 협조한 공이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완전 청산을 주장했다. 역사의 선례도 있었다. ‘나치 청산’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과 국제사회는 나치 인사들을 전쟁범죄자로 처벌했다.[1]

진실화해위

만델라와 ANC는 제3의 길을 가게 되는데, 1년이 넘는 끈질긴 협상 끝에 집권 ANC와 야당인 국민당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설치에 합의한다. 진실화해위는 정치적 동기로 일어난 범죄를 조사할 권한을 받았다. 그리고 사면권을 가졌다. 단, 사면을 청원하는 사람은 진실화해위에 나와 자신의 범죄에 대한 진실을 고백해야 했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그 장면을 전국에 내보낸다. 진실화해위는 그를 심사하여 사면 여부를 판단한다. 진실 고백과 사면의 맞교환 원칙이 진실화해위의 핵심이다.[1]

남아공은 수십 년에 걸친 인종차별이라는 ‘공동체에 거대한 사건’을 다뤄야 했다. 이 거대한 사건을 백인은 ‘자기방어’로 흑인은 ‘인종범죄’로 서로 달리 이해했다. 이런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구성원들이 공통된 이해에 도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1]

이것은 처벌과 보상을 결정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동체에 거대한 사건에서 대화는 회복의 근본 수단이다. 대화는 공통의 인식을 구축하는 토대이다[1]

진실화해위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하는 고백을 그토록 중요하게 본 이유가 이것이었다.[1]

진실화해위에서 당사자 간의 직접 화해는 거의 없었다. 고문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준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국민적 차원에서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통일된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처음으로 백인과 흑인이 공통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국민들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 알비 삭스(남아공 헌법재판소 초대 헌법재판관)[1]

백인 정권의 행위가 인종범죄였다는 공통의 인식을 구축하는 일은 공동체의 미래에 너무나 중요했고, 남아공은 과거에 대한 정의로운 응징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게 사면이었다. 진실을 고백하는 절차를 지켜본 백인들도 그것이 자기방어였다는 거짓 이야기를 더 고집하기 어려워졌다.[1]

출처

  1. 1.0 1.1 1.2 1.3 1.4 1.5 1.6 천관율 기자 (2021년 1월 19일). “‘사면’에 숨겨진 고도의 ‘정치 프로세스’”. 《시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