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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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선호사상(男兒選好思想)은 보다 아들을 좋아하는 사상을 말한다.[1]

양상

N. E. Williamson은 남아선호사상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며 특히 그 중에서도 아랍동남아시아에서 이 사상이 강하다고 지적했다.[1]동아시아 중에서는 중국과 한국의 남아선호도가 가장 높은 경향을 보인다.[1]

대한민국

70년대까지만 해도 경상도 사람들의 남아선호사상이 매우 강하였지만, 80년대에 와서 많이 퇴조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농촌보다도 도시, 여자보다도 남자, 나이가 젊고 학력이 높은 층일수록 뚜렷하게 나타났다.[1] 이런 현상의 원인은 60년대 이후 활발히 전개된 가족계획운동에 있다고 보여진다.[1]

유래

한국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은 적어도 조선조중기부터 강하게 보급되었다고 할 수 있다.[1] 최재석 교수에 따르면, 신라시대에는 아들, 친손자, 딸, 사위, 외손자까지도 왕위계승에 포함되었음은 물론, 재산에 있어서도 남녀균분상속이었다. [1] 조선조 세종때까지만 해도 왕위계승을 제외하고서 재선에 있어서도 엄격한 부부별산제 및 남녀의 구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혈통을 잇기 위해 양자를 맞아들인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1] 그런데 조선조 후기에 들어오면서 유교의 보급과 당쟁의 심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직계가족과 문중 및 장자상속제가 확립되자 남존여비사상이 일반화되고 강력한 남아선호사상이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1] 조선조사회에서 남존여비사상이 얼마나 심하였던가는 칠거지악이나 삼종지도의 규법을 통하여 단적으로 알 수 있다.[1]

이러한 실정을 개탄하여 1890년대 독립협회에서는 첫째 남녀평등의 가치 아래 여성이 사회활동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외치고, 둘째 여성은 남성보다 행실이 정결하고 고상함으로 여성은 곧 남성의 교사라고 하며, 셋째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대학교의 설립 및 여성교육을 부르짖음으로써 남녀평등을 실현하고 강한 남아선호사상을 타파하려 하였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조선조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의 남아선호사상은 뿌리깊게 남아있는 실정이다.[1]

결과

대한민국의 남아선호사상은 선택적 여아 임신중절을 성행하게 하고 성비 불균형을 초래했다.

같이 보기

출처

  1.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鄭喆洙 (1985). 男兒選好思想과 女性의 役割. 社會科學硏究, 1, 97-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