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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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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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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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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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문재인


이름
  • 노무현
출생일
사망일
배우자
자녀
국적
소속
역임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며 제 13·15대 국회의원이다.

1 생애

  • 1946년 9월 1일 미 군정 조선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 1968년 군에 입대하여 제12사단 을지부대에서 육군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 1975년 4월 30세에 제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 1982년 부산 미국분화원 방화사건의 변론에 참여하였다.
  • 1985년 부산 민주시민 협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부산 본부 상임 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하였다.
  • 1988년 노태우 정권에 제 13대 총선에 출마하여 부산 동구에서 당선되며 5공비리특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 1990년 민주당을 창당하였고, 민주당 중앙당 기획조정실장으로 활동하였다.
  • 1998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 2000년 김대중 정권에 제 6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활동하였다.
  •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 2003년 제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 2004년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 되었고 찬성193표,반대2표로 가결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사건을 기각하였다.
  • 2007년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당적을 정리하였다.
  •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에 있는 부엉이바위에 뛰어내린 뒤 양산부산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

2 긍정적인 평가

과거 인권변호사 시절, 박정희 정권 때 무고하게 구속되었던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을 변호했을 때부터 국회의원이 되어 5공화국의 청문회에서 명패를 던지기까지 노무현은 일생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참여정부 때부터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만약 일본 탐사선이 독도에 온다면 공격하여 당파시키라"라고 해경에 지령을 내리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여 독도를 수호하였다.


3 비판

3.1 노동탄압

2003년 8월 구사대 폭력으로 인한 세원테크 이현중 사망, 9월 농민 이경해 할복, 10월 한진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자결,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 분신, 11월 세원테크 이해남 분신 등 2003년 하반기에는 수많은 노동자, 농민의 죽음이 이어져 '열사정국'이라 불렸다. 이에 대해 노무현은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2004년 10월 31일 기준 574억원, 가압류 금액은 781억원을 훌쩍 넘겨 손배가압류를 노동자 탄압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1]

철도노조 파업도 노무현 정권의 노동탄압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4.20 합의사항을 사실상 파기한 철도 구조개혁 법안을 상정하면서, 의견을 묻는 공청회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2] 1천이 넘는 구속노동자를 양산했고, 이랜드 대량해고 사태에서도 사측의 폭력행위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3]

3.2 의료민영화 추진

김대중 정부 말기 경제자유구역 안에 외국인 투자병원을 세우는 것을 허용한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 본격적인 의료사유화 정책을 시작했다.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핵심으로 하는 성장주의 의료서비스 산업화 노선을 채택하였다. 외국 영리법인 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고, 단계적 영리법인 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논의하였다. 이후 의료산업 선진화 위원회를 출범해 이해찬 총리에게 의장을 맡겼다. 이 위원회는 제주도 영리 의료법인 허용, 민간 의료 자본 활성화 방안등을 논의했다.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예외를 허용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의료기관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7년 5월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도해 영리법인인 경영지원회사 설립, 병·의원의 인수합병 가능, 보험회사의 환자 알선 허용 등이 포함된 의료법 전면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의료 민영화를 시도하였다. 이 안은 17대 국회와 함께 자동폐기되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2009년 외국인 환자를 소개, 유인, 알선하는 행위를 허용하도록 의료법과 시행규칙을 개정하였다.[4]

3.3 여성혐오 언행 등 전근대적인 여성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성혐오 발언 01.jpg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성혐오 발언 02.jpg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성혐오 발언 03.jpg

생전에 쓴 자서전인 「여보 나좀 도와줘」에 성추행강간을 경시하는 뉘앙스를 보였으며, 가정폭력을 하는 내용이 그대로 실렸다. 이는 6070대 남성의 전근대적인 여성관을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한다. 다만 위의 몇몇 인용문에서는 이러한 언행을 후회하는 모습도 보인다.

4 주요 발언

  1. 배일훈 (2020년 3월 29일). “노무현 정부 초기 노동정책 어땠나”. 《오늘보다》. 
  2. 문주현 (2013년 12월 27일). “참여정부는 달랐다고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마이뉴스》. 
  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2007년 8월 30일). “[성명]노동탄압 신기록 정권 노무현 정부는 더 이상의 노동탄압을 중단하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2020년 3월 29일에 확인함. 
  4. 구영식 (2014년 1월 17일). “민주당이 의료민영화 원조? 새누리당 지적 맞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