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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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매년 12월 10일에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 수상자로 지정되기 전까지 생존해야 받을 수 있으며, 상을 거부하거나 사퇴할 수도 있다.

분야에 따라 노벨 경제학상, 노벨 문학상, 노벨 물리학상,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평화상, 노벨 화학상이 주어진다. 수학 분야는 없다.


1 노벨 경제학상

  • 2009년, 엘리너 오스트롬: 다수의 경제 주체들에 의한 공공 자산 활용에 대한 연구의 업적을 인정 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여성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다.

2 노벨 문학상

2.1 역대 수상자

3 노벨 물리학상

3.1 역대 수상자

  • 1903년, 마리 퀴리: 방사능의 성질에 대한 연구를 인정받아, 피에르 퀴리와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투안 앙리 베크렐과 함께 공동수상하였다.
  • 1963년, 마리아 괴페르트 마이어: 원자핵의 껍질 모형을 제안한 공로로 유진 위그너와 공동수상하였다.
  • 2018년, 도나 스트릭랜드: 초정밀 레이저광선 연구에서의 혁신적 성과로 아서 애쉬킨, 제라드 무루와 공동 수상하였다. 특히 도나 스트릭랜드는 마리아 괴페르트 마이어 이후 55년만의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주목 받았다.[1]

4 노벨 생리의학상

4.1 역대 수상자

5 노벨 평화상

5.1 역대 수상자

6 노벨 화학상

6.1 역대 수상자

  • 1911년, 마리 퀴리: 라듐을 발견한 공로로 상을 수상하였으며,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 1935년, 이렌느 퀴리: 인공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수상하였다.
  • 1964년, 도로시 크로푸트 호지킨: X선 결정학으로 생화학 물질의 구조를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수상하였다.
  • 2009년, 아다 요나트: 리보솜의 기능과 구조에 대한 연구로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시난과 토머스 스타이츠난과 공동 수상했다.
  • 2018년, 프랜시스 아널드: 단백질 효소 유도 진화에 대한 연구로 그리고리 윈터, 조지 P. 스미스와 함께 공동 수상했다.

7 성적 불평등 문제

1901년부터 2015년까지 114년 동안 869명의 개인과 23개의 기관이 노벨상을 받았다. 이 중 여성 수상자가 49차례 나왔으며, 마리 퀴리(프랑스)가 두 번 수상한 것을 고려하면 869명 중 여성 수상자는 48명(5%)뿐이다.[2]

1901년부터 2017년까지 수상한 892명 중 여성은 48명으로 5.4%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여성 수상자 중 30명은 문학상이나 평화상을 받았다. 여성들에게 과학 분야의 문턱이 높았다는 뜻이다.[3] 사실 이것은 여성을 배척하는 학계의 영향이 크다. 현대 과학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 과학자들은 모두 동료 남성 과학자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모욕당한 일화가 있을 정도다. 석탄과 탄소에 관한 5편의 논문으로 탄소 섬유와 흑연을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RNA에 대한 연구결과를 왓슨과 크릭에게 빼앗긴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킹스 칼리지 런던대학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구실 안에서 식사를 할 수 없었으며, 우주망원경의 필요성을 오랜 기간 역설해 허블 우주망원경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낸시 로먼은 학생 시절 수학을 택하자 여학생이 라틴어 대신 수학을 골랐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비웃음을 당했다.[4] 콜레스테롤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낸 도로시 크로푸트 호지킨은 학창 시절 별도의 방에서 시체를 해부해야 했으며 토론 클럽에 참여할 수 없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화학자간 연대 모임과 연구모임에서 배제되었다. 또한 결혼 후에도 성을 바꾸려 하지 않았지만 외압으로 인해 '호지킨 박사'가 되어야만 했다. 방사능 분야의 권위자 리제 마이트너의 논문을 접하고 원고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 백과사전 편집자는 리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여성이 쓴 것을 출판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표면장력을 발견하고 연구해 표면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아그네스 포켈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이상의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괴팅겐 물리학과에 다니는 남동생의 물리학 책으로 독학을 했으며, 가족을 돌보는 한편 부엌에 실험실을 만들어 홀로 실험했다. 베타 붕괴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과학자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우젠슝은 대학생 시절 학생회관에 출입할 수 없었고, 유전자 가위 기법의 개척자인 제니퍼 다우드나는 "불행히도 여성들은 종종 장벽과 괴롭힘에 직면한다. 여성인 과학자로서 나는 여성 동료들의 작업을 지원하고 강조하는 일에 일부러 나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성차별 속에서도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마리 퀴리는 남편의 성인 '퀴리'를 딴 '퀴리 부인'으로 불린다.

특히 1969년에 신설된 경제학상 분야의 경우에는 단독 여성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2009년 엘리너 오스트롬이 공동 수상한 것을 제외하면 여성이 단독으로 경제학상을 받은 적은 없는 셈이다.[3]

8 같이 보기

  • 필즈상 -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상.
  • 튜링상 - 전산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상.
  • 노벨상위원회에서는 "Women who changed science"라는 제목의 웹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세 가지 항목이 있는데, 각 항목의 이름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 Match with a laureate: 세 가지 질문에 답하면 그에 맞는 노벨상 과학 분야 여성 수상자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준다.
    • Browse their stories: 역대 노벨상 과학 분야 여성 수상자들의 설명을 읽을 수 있다.
    • Explore their connections: 역대 노벨상 과학 분야 여성 수상자들 간의 연관성을 마인드맵 형식으로 나타냈다.

9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