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그라드

최근 편집: 2022년 12월 30일 (금) 22:47
노비그라드
Novi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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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통치자노비그라드 주교
국가르다니아
지역폰타르 삼각주
위치폰타르의 북쪽, 트레토고르의 서쪽, 옥센푸르트의 북서쪽
상세정보
인구3만
특이사항자유 도시, 북부 왕국 최대 규모
상징
엠블럼
깃발
지도
The Witcher 3: Wild Hunt
이용 가능한 서비스환전, 고금리 대출, 이발, 면도, 장비 제작

위쳐 3에 등장하는 대도시이다.

개요

북부 최대의 자유도시. 닐프가드와의 전쟁을 틈타 북부 왕국들의 맹주가 된 라도비드 왕의 출입 통제를 받고 있어 처음 입장하려면 통행증이 필요하다. 인구는 약 3만 명으로 북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대도시이다. 200년 가까이 어떤 왕의 직접적인 지배도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름은 새 도시를 뜻하는 크로아티아어이며, 실제로 크로아티아에는 동명의 도시가 있다. 도시 자체는 폴란드의 그단스크를 모티브로 삼았으리라고 추측된다.

역사

정착

르다니아의 기마부대 병사들.

인간이 이곳에 오기 전에 노비그라드는 작은 엘프 정착지였다. 인간이 타고 온 배들이 폰타르 삼각주에 도착하자 도시는 버려졌고, 르다니아의 초대 왕인 샘부크(영어: Sambuk)는 곧바로 이곳을 새로운 나라의 수도로 만들었다.

인간이 처음에 이 땅에 자리잡았을 때부터의 혈통인 노비그라드 기득권층은 노비그라드 부근에 있는 베겔버드 영지에 거주하고 있다.

독립

'자랑스러운 베스티보르(영어: Vestibor the Proud)'가 통치할 때, 노비그라드는 7년 전쟁 기간에 테메리아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후 르다니아의 수도는 트레토고르로 옮겨졌고 노비그라드는 오랫동안 테메리아의 도시가 되었다.

베스티보르의 손자 라도비드 3세 때 상황은 달라졌다. 오랜 협상 끝에 타협이 이루어졌고, 노비그라드는 자유도시가 되었다.

폭력 조직과 마녀 사냥꾼

공식적으로 르다니아의 국왕은 '르다니아와 노비그라드의 왕'이기는 했지만 사실 진정한 권력은 유권자 대학 출신의 주교가 가지고 있었다. 1275년의 주교는 헴멜파트 주교이다.

그러나 노비그라드는 이미 범죄 조직들의 지배 하에 있다는 것으로 유명한 지 오래였다. 주교조차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1272년까지 이 도시는 사실 폭력 조직의 지배 하에 있었고, 나중에는 4대 세력들에 의해 통제된다.


종교

이터널 파이어.

서비스

비발디 은행

서점

표지판


남쪽 관문

사실은 동쪽이지 남쪽 끝이 아닌 이곳의 진실은, 이전 도시 계획관 탓이다. 그는 건축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지도도 볼 줄 모르지만 시장의 사촌이고 호화 파티를 연 사실 때문에 편애받았다. 혼란을 줄 정도로 부정확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은 그대로 이어졌고 이제 시민들은 그 부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주 1]



노비그라드 항구

해질녘 노비그라드 항구의 전경.

좋지 않은 부패의 소굴이자 노비그라드에서 가장 음침한 장소다. 어두워진 다음에는 문란한 아녀자와 불량배, 그리고 술 취한 선원만을 찾을 수 있다.[주 2]

항상 경비병이 득시글거려서 루팅하다가는 몇 대 맞고 누워버리는 다른 노비그라드 지역과는 달리, 새벽 즈음에 경비병들이 사라져서 각종 물품들을 루팅할 수 있다. 항구라 그런지 이곳저곳에 나무상자와 꾸러미가 널려 있으며 집들도 대부분 잠겨 있지 않아서 루팅할 아이템이 많은 편이다.

치안이 좋지 않고 피스텍 중독자나 술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버젓이 활보하는 곳이다. 루팅할 것도 많고 퀘스트 장소들도 많지만 대장간이나 상점처럼 NPC를 통한 서비스들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빠른이동 표지판을 기준으로 해안가를 따라 내륙 쪽으로 걷다 보면 사창가가 나온다.

성 그레고리 다리

삼백 년 전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들여 나자이르로부터 식량을 들여와, 끔찍한 기근으로부터 도시를 구한 노비그라드의 영웅의 이름을 딴 다리다. 이후 그는 성자로 추앙받았으며 이터널 파이어의 배심원들조차 이를 바꿀 수 없었다.[주 3]


영광의 관문

때때로 폭력배와 난봉꾼이 근처 술집에서 쫓겨난 뒤 이 관문 아래에서 밤 술주정의 끝을 맞곤 한다.[주 4]

근처에 가면과 옷 등을 판매하는 재단사가 있다. 말로는 수선을 해준다고 하는데 그런 거 없다.


옥센푸르트 관문

노비그라드와 옥센푸르트가 사나운 이웃 간의 분쟁에 휘말렸을 당시, 이 관문은 완전히 다른 이름 몇 가지로 불리게 됐다. 가장 오래 갔던 두 가지를 예시로 꼽자면 매춘부 관문, 흡혈마 관문이었다. 현재의 이름은 끝내 분쟁이 잦아들고 난 뒤에 선택됐다.[주 5]

아레트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관문이다.


유권자의 광장

이터널 파이어.

도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던 큰 변화를 일으켜, 시민들을 무척 부유하게 하고 도시의 황금기를 연 노비그라드 개혁가들의 모임 이름을 딴 광장이다.[주 6]



주교 관문

이 관문은 노비그라드의 아들인 이터널 파이어 주교를 기념하는 의미로 그 이름이 지어졌다. 추정컨대 이 이름은 여러 사람의 요청으로 지어진 것 같은데 이런 걸 요구했다고 기억하는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주 7]



주교 광장

노비그라드 최대의 광장으로, 비발디 은행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노비그라드를 돌아다녀 보면 알겠지만 노비그라드의 정 가운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퀘스트를 할 때 자주 지나게 된다.

주교 광장의 지도.

값비싼 보석만 취급하는 상인, 약초사, 갑옷 장인을 만날 수 있으며 서점도 있다. 서점을 끼고 있는 통로 쪽에 공고 게시판이 위치해 있다.

  • 갑옷 장인은 저녁에 퇴근하고 아침에 출근하기 때문에 늦은 밤이나 새벽에 찾아가면 만날 수 없다.
  • 서점 주인이나 팀 비발디와 궨트를 플레이할 수 있다.
  • 팀 비발디를 통해 대출을 하거나 환전을 할 수 있다. 대출은 고금리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 하는 게 좋다.

트레토고르 관문

노비그라드 상인들과 주교의 호의를 받고 싶었던 르다니아 왕가의 지원으로 세워진 성문이다. 건축에는 엄청난 금액은 물론이며, 역시나 싸지 않은 장인 건축가 안나 야예-핀코비츠 백작 부인과 그가 거느린 성별을 가리지 않는 숙련공들의 인력까지 들어갔다.[주 8]


르다니아의 수도인 트레토고르의 이름을 딴 관문이다.

항구 관문

관문 중 가장 장중하진 않지만, 북적대는 항구에 가까운 위치상 이 관문은 도시의 간판격이 됐다.[주 9]


부연 설명

  1. In truth demarcating the eastern and not southern edge of the city, the Southern Gate was given its inappropriate name by a one-time city planner who knew nothing about architecture and could not read a map, but had in his favor the fact that he was the mayor's cousin and thew lavish parties. Though confusingly incorrect, the name stuck and now the city's residents never think twice about its illogical appellation.
  2. A den of dirt and depravity and the shadiest part of Novigrad. After dark all one finds here are women of loose morals, hoodlums and drunk sailors.
  3. Bridge named after the hero of Novigrad who saved the city from a horrible famine three hundred years ago by sacrificing half his fortune to import food from Nazair. After this, he was declared a saint, something even the jurors of the Church of the Eternal Fire were unable to change.
  4. Toughs and hooligans often end a night of drunken escapades under this gate after being thrown out of the nearby taverns.
  5. In the times when Novigrad and Oxenfurt were embroiled in fierce neighborly disputes, this gate went through several completely different names, the Gate of Harlots and the Gate of Bloodsuckers being two of the longer lived examples. Its current name was chosen when this conflict was finally put to rest.
  6. Square named after a group of Novigrad reformers who enacted bold transformations that led to the city's rapid growth, enriching its residents considerably and ushering in the city's golden age.
  7. This gate is named in honor of Novigrad's own son, the Hierach of the eternal Fire. Supposedly this name was given to it upon popular request, though no one can be found who remembers requesting any such thing.
  8. Gate erected with funds from the Redanian royal family, who, wanting to earn favor with Novigrad merchants and the hierach, dedicated a significant amount of coin to its construction, as well as some no-less-valuable (wo)manpower in the form of the master architect Countess Anna Yaye-Pinkovitz and her skilled crew.
  9. Though not the most stately of gates, this one's location near the bustling port has made it the calling card of the 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