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This page was last edited on 29 March 2023, at 02:27.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은 1998년 대구광역시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사건

1998년 10월 17일 약 오전 5시 10분 경 당시 18세였던 피해자 정씨는 대구 달서구 옛 구마고속도로에서 25톤 트럭에 치여 숨졌다.

학교 축제기간이었던 전날 밤 대략 10시 30분에 만취한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려 학교를 나선 정씨는 약 7시간 후에 겉옷만 걸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다음 날 사고 현장에서 30여 m가 떨어진 곳에서 정씨의 속옷이 발견되는 등 성폭행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초동 수사

경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그해 12월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렸다. 속옷 또한 경찰이 아닌 유족이 나서서 사건 다음 날에 발견하는 등 경찰은 사건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국과수에서는 경찰의 결론과는 반대로 고속도로를 횡단한 점, 집 반대 방향으로 가려 했던 점, 혈중알코올농도가 0.13%로서 운동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인 점 등을 근거로 "흔한 보행자 교통사고와는 달리 사고 전 신변에 중대한 위협을 받아 매우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한다" 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이듬해 1월 "정씨가 차량으로 인해 깔아뭉개진 것은 사실이나 이로 인한 출혈이 없기에 교통사고 당시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는 부검 결과를 내놨고 3월에는 속옷에서 정액을 검출했지만 신원 확인에 실패했다.

유족은 여러 차례 검찰과 경찰, 청와대 등에 탄원하며 재수사를 촉구했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재수사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사건은 스리랑카인 K씨가 2011년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으로 입건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2010년 일명 DNA법이 시행된 덕분에 그동안 유전자 분석기술 등의 발전으로 정씨 속옷서 발견된 정액에서 DNA를 검출하고 이때 K씨에게서 채취한 DNA가 정씨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감정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판결

대한민국

1심

대구지검은 2013년 9월 4일 정씨를 집단 성폭행한 혐의(특수강도강간)로 스리랑카인 K(당시 46세)씨를 구속기소하고 스리랑카로 출국한 공범 2명을 같은 혐의로 기소중지한다. 이미 특수강간죄의 공소시효(10년)이 지난 상태로, 검찰이 고심 끝에 숨진 정씨의 학생증과 책 3권, 현금 3,000원가량을 훔친 특수강도죄를 추가해 특수강도강간 혐의(공소시효 15년)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 조사결과, K씨 등은 귀가 중이던 정씨를 자전거에 태워 구마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근처에서 차례로 성폭행했다. 사건 당시 산업연수생이던 공범들이 각각 2003년과 2005년 귀국한 것과 달리 K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 한국에서 개인사업을 해 온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나 2014년 5월 30일 대구지법이 증거부족을 이유로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특수강도강간은 강도가 성폭행을 한 것인데, K씨 등의 강도 짓 여부가 확실치 않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공소시효 15년인 특수강도강간 혐의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는다" 고 판시했다.

K씨는 성폭행을 뒷받침하는 DNA 증거조차 재감정을 요구하며 "현장에 간 사실조차 없다" 고 범행을 부인했다.

즉 1심 판결을 요약하면 "특수강도강간은 시효가 남았지만 증거부족으로 무죄, 특수강도 등 다른 혐의는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DNA 증거 등에 대한 실체적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다" 는 것이다.

2심

2015년 8월 재판부는 "피해자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의 유전자가 피고인의 것과 상당 부분 일치, 피고인이 단독 혹은 공범과 피해자를 강간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공소시효(10년)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 며 무죄를 선고했다. 범행 일부를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공소시효 때문에 처벌을 하지 못했다.

특히 특수강도강간죄에 대해 검찰은 "항소심에서 새로 추가한 증인 H씨의 진술을 확인해 보니 K씨 등 범인들이 성폭행이 끝나기 전에 피해자 가방을 뒤져 학생증과 책 등을 갈취했기 때문에 특수강도강간에 해당한다" 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가방과 지갑은 고속도로 위에서 발견됐고, 책은 갓길에 흩어져 있는 상태였으며 학생증이나 현금을 강취 당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2017년 7월 "일부 믿을 만한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진술과 DNA 감정서만으로 K씨가 피해자를 강간하고 소지품을 강취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부족하다" 며 원심을 확정했다. 이후 K씨는 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스리랑카

1·2심

검찰과 법무부는 스리랑카에 전담팀을 파견해 관련 증거·서류 등을 제출했고, 마침내 스리랑카 검찰이 범죄 사실을 인정해 K씨를 2018년 10월 현지 공소시효(20년) 만료 4일을 앞두고 재판에 넘겨진다. 다만 스리랑카 검찰은 정액이 몸속이 아닌 속옷에서 발견된 점을 감안해 강간죄가 아닌 성추행죄를 적용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 1·2심 재판부는 2021년 12월과 지난해 11월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 및 비판점

사고 당시 충분히 성폭행 사건으로서의 정황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단순 교통사고로 포장한 경찰의 무능과 직무유기로 인해 수사와 판결의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또한 이러한 사례들은 사회적 약자들은 어떠한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정당한 결과를 직면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는 데에 일조한다.

속옷에서 정액이라는 결정적인 단서까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의 무능으로 인해 영구 미제로 남을 뻔 한 사건이라는 점도 큰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이 사건이 재조명될 수 있었던 계기가 해당 사건의 가해자가 저지른 또다른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이라는 점은 당시 해당 가해자를 적절히 처벌하고 사회에서 격리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지 않아도 됐을 피해자가 발생하였음을 보여줘 공권력이 사건에 대해 올바른 처벌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 사람의 목숨과 유족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살인자 K씨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아 뻔뻔하게도 한국인 여성과 결혼, 한국에서 개인사업까지 하며 자신의 삶은 잘 살아가고 있어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한 사법체계는 잠재적 범죄 피해자인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전문가들은 스리랑카 1·2심 판결과 같이 3심에서 판결을 뒤집기는 어렵다고 본다. 또한 초동수사에서 유족들이 밝혀낸 성범죄 가능성을 도외시하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재수사하려다 보니 처벌까지 이어지기 어려워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출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