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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혈성애국부인회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
- 1919년 3.1운동 직후인 3월 중순에 정신여학교 동창인 재령 명신여학교 교사 오현주, 군산 메리블렌 여학교 교사 오현관, 정신여학교 교사 장선희, 세브란스병원 간호원 이정숙, 정신여학교 출신 이성완, 정신여학교 사감 김영순을 중심으로 오응선, 차숙경 등이 '혈성단-혈성애국부인회'를 결성되었다.
- 1919년 4월에 기독교계통의 여학교 출신인 최숙자, 김희옥 등이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애국부인회 통합
경성 이정숙, 홍수원 정근신, 재령 김성모, 진남포 최매지, 평양 변숙경, 대구 유인경, 영천 김삼애, 부산 백신영, 경상남도 김필애, 진주 박보염, 청주 이순길, 전주 유보경, 군산 이마리아, 원산 이혜경, 성진 신애균, 함흥 한일호.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개칭
회장 김마리아, 부회장 이혜경, 총무부장 황에스터, 재무부장 장선희, 적십자부장 이정숙, 결사부장 백신영와 이성완, 교제부장 오현주, 서기 김영순와 신의경.
- 총무부 안에 통신부를 설치하여 국내외 소식전달을 공고히 하고, 적십자부[주 1]와 결사부를 만들었다.
- 교사,간호사,교회지도급여성 등을 중심으로 100여 명 이상의 회원을 모집하고 6천여 원의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냈다.
- 11월말 오현주의 배신과 밀고로 김마리아 등의 주요인물 9명을 포함한 52명이 검거되어 대구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김마리아와 황에스터는 징역 3년을, 장선희, 김영순, 이혜경, 김원경은 징역 2년을, 백신영, 유인경, 신의경, 이정숙은 징역 1년을 선고받으면서 조직이 와해되었다.
훈츤애국부인회
- 1919년 9월 훈춘에서 김숙경 등 여성 200여 명이 '훈춘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양의 대한애국부인회
- 1919년 7월에 임시정부를 돕기 위한 비밀결사조직으로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가 있었다. 오신도와 송죽회의 안정석, 김경희 등이 활동하였다.
- 1919년 11월에 임시정부의 권유로, 한영신 등이 6월에 조직한 평양장로교계 부인회와 박승일 등이 조직한 감리교계 부인회가 연합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대한애국부인회'가 결성되었다.
- 통합된 후 각 지방에 지회를 두고 군자금을 수합해 임시정부에 보내다가, 1920년 10월에 군자금을 송치하던 회원들이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1~3년의 형을 선고받으면서 해체되었다.
상해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 1919년 10월 상해에서 이화숙, 김원경, 이선실 등이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임시정부의 활동을 보조하다가, 1920년대 후반 임시정부의 활동이 축소되면서 부인회의 활동 또한 줄어들었다.
- 1943년 2월 충칭에서 각계 여성 50여 명이 애국부인회 재건대회를 가진후 김순애를 주석으로 방순희를 부주석으로 선임하여 군인위문, 여성 계몽교육 등의 활동을 하였다.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연설명
- ↑ 독립운동으로 투옥된 이와 해외망명한 독립지사 가족들의 생활구제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2년 12월 14일). 《6.25 전쟁 여군 참전사》. ISBN 978-89-89768-86-9.
- 심옥주; Ok-Chu Sim (31 December 2014). 《한국 여성 독립 운동 과 국가 보훈》. 정언. ISBN 979-11-85622-00-2.
-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2006). 《3.1운동기 여성과 서대문형무소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개관 8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서울 : 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