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This page was last edited on 9 June 2021, at 10:58.

논란

  • 페놀 유출 사건, 중앙대학교

두산전자 구미공장이 페놀 폐수를 방류하던 하수구로 1990년 10월부터 6개월간 페놀 페수 325t이 낙동강 상류 옥계천으로 흘러갔다. 1991년 3월 14일 구미공단 두산전자 원료 저장 탱크와 공장을 연결하는 파이프에서 페놀이라는 무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살균제, 구강마취제, 독감 치료제 성분으로 사용되지마느 최초 플라스틱이라고 부르는 베이클라이트 재료이며, 인쇄회로기판 기판을 만들때 즐겨 사용되는 기본적 유독물질이다. 페놀 자체는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 페놀 물이 염소 소독을 하는 취수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긴다. 염소와 페놀이 결합하면 클로로페놀 물질이 형성되는데, 매우 불쾌한 냄새를 유발하여 각 가정에서 이상 신고가 들어왔다. "밥에서도 냄새가 납니다." "빨래에도 이상한 냄새가 배요!" 라는 내용이다. 불명 부패물질이 유입됐다고 짐작하고 염소를 대량으로 투입하였다. 페놀은 애초에 취수사업소 수질 검사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다. 원인을 모른채 염소를 부어버렸다. 대량 염소는 당연히 대량 클로로페놀을 생산하였다. 불쾌한 악취는 코를 찌르도록 심각하게 변질되었다. 그 물이 대구 시민들 수도꼭지까지 다다랐고, 방류된 페놀은 낙동강 칠백리를 타고 영남 지역까지 전달됐다. 수돗물 페놀 수치는 허용치 22배, 세계보건기구 110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페놀 대란 이 일어났다. 대구·마산·창원·부산 등 낙동강에 물을 의지하는 모든 지역이 페놀 공포에 사로잡혔다. 일부 목욕탕이 휴업하고, 두부 페놀 수돗물로 만든 음식물도 폐기처분 됐고, 소식을 듣고 유산하거나 임신 중절을 한 여성들도 있었다. 생수가 불티나게 팔렸고, 동네 가게에는 생수 있다 생수 매진 팻말이 번갈아 매달렸다. 이때부터 식탁에 생물이 오르게 됐다. 문제는, 누출 이틀 후 두산전자가 사실을 발견하고도 관계당국에 이를 통보하지 않아, 논란이 더 커졌다 는 점이었다. 고의적인 방류가 아닌 과실로 밝혀졌고, 정부 다급한 수습책으로 웬만큼 가라앉나 싶었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 됐다. 당시 두산전자는 영업 정지 처분을 받는데 "수충 전선에는 이상이 있다" 는 이유로 스스로 20일 만에 영업 정치 처분을 풀어버렸다. 조업 재개한지 며칠이 되지 않아 다시 2t 페놀이 낙동강으로 방류되는 퐝당 사건이 벌어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공해추방운동연합이 공동으로 두산그룹 빌딩 앞에서 두산그룹 맥주를 깨부수면서 "맥주보다 깨끗한물을 달라" 시위를 벌여 호응을 얻었다. 학생들은 돌과 페인트를 들고 두산그룹 계열사 사무실을 습격하였다. 소비자뿐 아니라 슈퍼마켓연합회까지 두산그룹 코카콜라와 OB맥주 불매운동 을 선언하고, 맥주업계 1위를 지켜왔던 두산그룹 동양맥주는 조선맥주 크라운맥주한테 잠식당한다. 페놀 사태가 강타한 영감 점유율은 75%이르렀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동양맥주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반격 의지를 불태웠지만,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다. 1993년 조선맥주가 "지하 수백m 암반수로 만든 맥주" 로 두산그룹을 찌르면서 하이트맥주를 내놓았다. 조선맥주는 하이토진로로 개명하였다. 이에 우리는 물을 돈 주고 사먹는 클리쉐가 익숙하게 됐다. 페놀 사건에 두산전자는 모든 언론이 방류 사건으로 명명하여 대통령까지 비도덕성을 비판하였지만, 방류보다는 과실에 가까운 유출이다. 그래서 지금은 페놀 유출 이라고도 많이 불린다. 이전부터 페놀 325t을 소량으로 강물로 흘려보내 왔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는데, 두산전자는 뜻하지 않은 페놀 유출 사고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하였다가 여론에 비난을 받고, 모든 사고 원인을 제거하였다가 페놀을 낙동강에 고의적으로 유출시키고 말았따. 단순 실수뿐만 아니라, 대기업 환경에 대한 불감증, 수돗물을 막아놓고 기업은 밉더라도 공장은 결국 가동되어야 하며, 3000억 이상 차질이 생긴다"라는 당국 돈이 먼저다 정신 결합이었다. 돈 때문에 사람 먹을 물을 더럽히더라, 콜라니, 맥주니, 물로 먹고 사는 회사에서!라는 비난에 두산그룹 회장은 물러나야 하였고, 수백억 기부 약속을 감수하며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두산그룹은 오염 기업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각고 노력을 기울인다. 1994년에는 환경처 선정 "94년 환경 모범 기업"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다. 과장 승진 시험을 보려면 환경 과목을 공부하여야 하였고, 회셍서 컴퓨터를 켜면 "환경보전 강령" 이 먼저 떴다. 신문 기사를 보면 "두산그룹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 물에 관한 한시도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은 때가 없다." 라고 밝혔다. 아마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두산그룹한테 이라는 사사(社史)에서 뼈아프고 통렬한 단어였을지 모른다. 중앙대학교를 운영하는 두산그룹이 펼치는 대학 정책이 페놀만큼 강한 독성으로 대학이라는 강을 질식시키고 있는 부분이 몇 사람들 기우일까? 학생들에게 회계학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것까지는 넘어가더라도 일방적으로 돈 안되는 과들을 폐꽈시키고, 비판적인 학생들에 대하여 가차 없는 징계를 내리고,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를 통폐합 하는 기업식 구조조정을 대학가에서 강요하는 일이 낙동강을 타고 흐르는 페놀보다는 무난한 문제일까? 중앙대학교 김창인씨 자퇴 선언문에서는 "대학은 파는 상품을 생산하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는 상품이 아니다. 나는 결코 그들이 원하는 인간형이 되지 않겠다." 라고 밝혔다. 환경은 강물을 지키고, 사람을 지키고 우리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두산그룹은 "사람이 미래다" 라고 주장하였지만, 사람들이 판매하게 편한 상품 이어서는 안된다. [1]